최규호변호사의 법조이야기(43)-현장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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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호변호사의 법조이야기(43)-현장검증
  • 법률저널
  • 승인 2008.11.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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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법원시보로 있을 때 현장검증을 한 번, 검사 시보로 한 번, 변호사 하면서 검증을 2번을 해봤다.


법원시보에서의 현장검증은 충주지원에서 인근 주덕면 무슨 리로 간 것이었다. 재판부는 단독판사님이라 한분이었고, 운전기사와 일반직원이 한분 움직였다. 나도 물론 동승했다. 차량은 법원 관용차인데, 지원장님 차량 외에 공무용으로 한두 대가 더 있고 그 중 한대를 사용하였다. 차량은 준중형차였다. 나와 판사님이 뒷좌석에 타고 움직였다.

차량에서는 약간의 긴장감도 흘렀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기 때문일까. 판사님들은 재판도 부담스럽지만 현장검증은 더 부담스러워 할 것 같다. 재판은 한나절에 수십 건을 처리할 수 있지만 현장검증은 한나절 동안 한 건 밖에 할 수 없고, 또 재판은 그나마 법정 안에서 하니 상황 제압이 어렵지 않은데 현장검증은 통제가 안 되는 경우가 왕왕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이웃 주민 간에 토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땅을 빌려주었는데 계약기간 종료 후 임차인이 자신이 지은 건물의 매수청구를 임대인에게 하여 그 건물의 시가를 산정하기 위한 검증이었다. 그런데 양 당사자 간에 감정이 너무 격해져 있었고, 현장에서 양 당사자가 마주치자 심한 말싸움이 오갔다. 이를 판사님이 진정을 시키고 분위기를 가라앉히는데 쉽지 않았다. 자꾸 이러면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라는 말까지 해서야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법정에서는 워낙 위축되는 분위기라 사람들이 눈치를 보지만,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교통사고 사망사고 현장검증에서 피해자 유족들이 가해자를 폭행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경찰이 말리기도 벅차다.

현장에 양쪽 변호사도 참여했고, 변호사의 말을 귀담아 듣고 현장의 건물 상황을 직접 보고, 촬영을 하고, 직원이 검증조서에 그와 같은 사항을 기재를 한다. 사진촬영을 하는 것도 물론이다. 현장 검증은 오래하지는 않는다. 20분 내외에서 끝났던 것 같다. 사건 기록에는 그 건물이 농기구 만드는 공장으로 나와 있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그것과 달리 조그마한 대장간 수준이었다. 그리고 방 2칸짜리 주택을 신축했다고 임차인이 주장했으나 사실은 건물 창고 내에 방을 꾸민 정도여서 건물가격 산정에는 고려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검찰 시보에서 현장검증(사실은 변사자 검시다)은 내가 있던 서울서부지검에서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간 것이었다. 원인 불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검사님이 직접 검시를 하고자 결정을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한 번 갔었는데, 역시 검찰청 관용차로 이동했다. 병원 영안실(시신안치실) 입구에 차량이 서자 사건 발생 관할 경찰서 경찰 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님을 따라 내려서 시신 보관실로 이동했다. 한쪽 벽면에 로마시대 지하 무덤처럼 벽으로 관이 길게 들어갈 수 있도록 많은 칸이 있었다. 그 중 한 칸을 빼내어 검시 대상 시신을 꺼내었다.

 

시신은 맨 몸에 비닐로 아래위가 덮여있었고 40대 중년의 남자였다. 검시를 한 것은?특별한 외상이나 타살 의혹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만약 타살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부검을 하고 수사를 해야하는 것이고, 없다면 자살이나 자연사로 보아 부검 없이 유족을 찾아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 위 망인은 가정이 있는 가장인데 밤 늦게 퇴근하고 화장실에서 쓰러져 갑자기 숨진 것이다. 심장마비나 기타 질병으로 숨졌을 것으로 보이고,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검사님은 시체를 뒤집고 여기 저기 육안으로 살폈다. (위 사체에 대해 부검을 지시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육안으로는 타살가능성이 보이지 않지만 혹시 모를 타살 가능성을 고려해서다.) 위 사체에 대한 처리를 담당 경찰에게 지시하고 곧바로 다시 지검으로 돌아왔다.

변호사를 하면서 두 번의 현장검증을 했는데, 그 중 한번은 서울 모 대학병원 옥상에서 이루어졌다. 정신병동(개방병동)에 입원한 19세 환자가 옥상에서 추락하여 사망(실족사인지 자실인지 불명)한 사고로서, 정신병자를 수용한 병원은 옥상 높이를 높게 유지관리하여 질환자의?추락사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주장이었고, 과연 옥상 높이가 제대로 됐는지를 확인하고자 검증을 한 것이다. 재판부는 단독재판부가 아니라 합의부(3명의 판사로 이루어진 재판부)인지라 재판장과 좌우배석 등 세분의 판사님이 오셨고 기사 한분과 일반직원이 따라왔다. 5명이 이동을 하다 보니 승용차 한대로 부족해서 (무리해서 탈 수 있지만 판사님들 예우상 곤란하다) 봉고버스를 타고 오셨다.

 

나와 상대방 변호사님은 각각 따로 이동해서 현장에서 만났다. 옥상에서 실제 높이를 자로 측정하고, 추락한 곳의 사진을 촬영하고, 병실에서 옥상까지의 예상 가능한 동선을 모두 확인하였다. 현장에 망인의 어머니, 이모가 왔지만 얌전한 분들이라 병원 측에 일절 항의를 하지는 않았다. 현장을 보더니 재판장님은 옥상 벽에 걸터앉을 수 있는 넓적한 구조물이 있어 여기에 앉아 있다가 실족한 것 같다라는 취지로 말씀을 하시고, 우리에게 유리한 심증을 내비치셨다. 위 검증은 약 30분 정도에 걸쳐 이루어졌고, 역시 판사님들은 봉고버스를 타고 돌아가셨다.

위 병원 현장검증에 대해 내 의뢰인들은 매우 만족감을 표시했다. 재판장님이 현장으로 와서 직접 봤다는 것에 대해 속 시원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 뭔가 매우 억울해하고 있었는데 그런 점을 재판장님이 직접 와서 봐주었다는 것에 대해 일단 시원하다는 반응이다. 통상 당사자들은 같은 생각을 한다. 판사가 서면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관련 현장을 직접 방문하면 더 없이 좋아한다. 그러나 판사들은 현장 검증을 매우 부담스러워하고, 증인신문보다 더, 훨씬 싫어하는 것이 현장검증이다. 웬만해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역시 현장검증이다. 증인신문도 각 사건마다 한두 명 정도만 받아들이는데, 현장검증은 워낙 받아들여지는 비율이 적고, 또 그런 것을 아니까 변호사들이 잘 신청을 안 한다. 신중하게 신청한다.

 

나는 사진이나 서면으로만 사건을 파악하기보다 현장을 직접 가보는 것이 실체 파악에 훨씬 낫다는 생각이고, 판사들 역시 동의하리라고 본다. 다만 사건이 워낙 많다보니 꼭 필요한 사건 아니면 현장에 가지 않겠지만, 그래도 궁극적으로는 좀 더 많은 사건에 현장검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 역시도 폭행사건 등을 맡았을 때 의뢰인들의 말과 현장 사진만으로 사건을 파악할 때보다, 내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면 말이나 기록, 사진에 없던 새로운 사실들을 훨씬 많이 파악하게 되고, 변론 진행에 있어 훨씬 큰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현장을 가보려고 한다. 모 유명 감정평가법인의 직원들이 의뢰인을 폭행하였다는 사건을 맡았을 때도, 해당 폭행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물론 그 법인 상담실이었는데, 일단 그 법인이 얼마나 크고 유명한 법인인지, 위치한 사무실 빌딩이 얼마나 웅장하고 럭셔리한지 등을 처음 알았다.(유명로펌 이상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던 사무실도 둘러보았다. 이런 것은 사건 파악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고, 내가 느겼던 생각(이런 명품 법인 사람들이 의뢰인들을 폭행할 정도로 자제력이 없지는 않다)을 재판부에 서면과 사진 자료로 전달했다. 이런 인상은 재판부에게도 전달이 되어 심증 형성에 당연히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내가 현장을 가지 않았다면 감정평가법인에 대해 막연히 추측만 하였을 것이고 위와 같은 럭셔리한 분위기는 몰랐을 것이다.

 

/최규호 변호사 공학박사, 법무법인 세광 http://cafe.daum.net/pass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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