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호 변호사의 법조이야기-법조경력과 법률지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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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호 변호사의 법조이야기-법조경력과 법률지식(2)
  • 법률저널
  • 승인 2008.11.2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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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이야기


법조경력과 법률 지식(2)


4. 사실판단과 실체법적 지식
막상 실무에 들어오면 실체법적 지식 보다는 사실 판단이 더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A와 B가 서로 투자하여 동업을 하였는데 갑자기 나중에 A가 B한테 ‘자신이 창업하면서 준 돈 2억원은 투자한 돈이 아니라 빌려준 것이니 돌려달라’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한다고 하자. 투자했다는 내용을 뒷받침할만한 투자약정서도 없고 반대로 빌려주었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차용증도 없다. 여러 정황과 간접증거들로만 위 사실관계를 입증해야 하고 판사는 판단해야 한다. 대부분의 소송들은 이런 식이다.

 

위 사례에서 법리는 뻔하다. 양쪽 변호사는 숨가쁠 정도로 자기에게 유리한 간접증거, 정황증거를 장황하게 제출하고 판사는 두 변호사가 하는 말이 어느 쪽이 거짓말이고 어느 쪽이 진실인지 가려내기 위해 고민을 한다. 대부분의 소송은 이런 식이고, 법리가 사용되어도 간단한 법리가 사용된다. 교과서에나 나올 듯한 복잡한 법리는 드물게 등장한다. 이렇다보니 변호사를 오래하게되면 잘 안쓰게되는 법리들을 잊게 된다. 그렇다고 일년에 한 번씩 사시 공부할 때 봤던 실체법들을 복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그러면 좋겠지만 최소 1주일 정도 걸리는 양이라 거의 불가능하고, 그런 변호사도 없을 것이다) 판사들은 그래도 변호사들이 써내는 수백건의 서면에서 다양한 법률적 쟁점을 제기해서 다른 법조인에 비해 법적 지식을 유지, 확장하는데 유리할 것이다. 검사는 검사 재직 중에는 수사와 처벌에 관한 형사법과 일부 민사법을 제외하고 나머지 법에 대해서는 다룰 일이 없다.

 

따라서 서서히 다른 법률에 대한 지식이 고갈되어 갈 것이다.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한 분야(예를 들어 파산, 이혼, 상속, 교통사고, 의료, 회사법, 기업인수합병 등)를 전문적으로 들이 판 변호사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실체법이고 절차법이고 다 잊게 된다. 또한 법조인들은 워낙 바빠서 밀려오는 사건을 처리하기에도 숨이 찰 지경인데, 여유있게 지금 필요하지 않은 법지식을 복습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법학 교수도 마찬가지다. 법학교수는 자기의 해당 전공 분야에 대해서는 해박하고 잘 알지만 그 외의 분야는 점차 잊게 된다. 예를 들어 형법 교수라면 민사법이나 행정법을 잊고, 헌법 교수라면 민법이나 형법을 잊는 것이다.(일본의 어느 유명한 법학교수는 매년 초에 자기가 공부했던 법학 교과서를 일독한다고 한다. 그래서 매우 출중한 실력자가 되었다고 한다.)

 

마치 의사와 비슷하다. 의대에서 내과, 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이비인후과 등 다 배우고 의원을 개업했을 때, 주로 오는 손님이 감기 환자라고 한다면(사실 그럴 것이다) 비뇨기과나 산부인과, 안과 등에 관한 지식은 점차 잊게 된다.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지식만 머리에 보관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법조인들은 매우 실용적인 사람들이라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매우 뛰어나고 거기에 필요한 것들은 어떻게든 준비해서 일을 처리하지만, 현재 필요치 않고, 앞으로도 쓰일 가능성이 희박한 내용이라면 신경을 쓰려하지 않는다. 이런 습성으로 사법시험을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힘을 낭비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꼭 해야 하는, 필요한 것들만 하는(대신 죽어라하고 독하게 하는) 것이 법조인들의 성향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없다.


5. 법조경력과 소송 실무 지식
법조경력이 쌓이면 좋은 점도 있다. 다양한 사건을 경험해볼 기회가 생겨서, 나중에는 어떤 사건이 와도 다 처리해본 경험이 있어 어렵지 않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시 공부할 때나 연수원에서 배우지 않는, 소송 실무에 관한 것들은 법조 경력에 비례해서 늘어나므로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은 점점 많아진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의료 사건이 들어왔을 때, 과연 이 사건이 얼마의 기간이 걸리고 얼마의 노력이 필요할지, 1심에서 끝날지 2심, 3심까지 갈지 등에 대해,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에 대해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지만 경험이 없다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 이런 판단은 소송을 할지 말지를 결정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여기에서 언급한, 잘 안쓰이는 법리들이 사건을 좌우하는 예는 많지는 않으나 가끔 있는 편이다. 통상 80%의 소송에는 그러한 법리들이 필요치 않고 일반적인 법리와 소송 기술적인 실무 지식으로 해결이 되고, 나머지 소송들은 대법원 판례를 찾아본다거나 하는 등으로 실체법적 지식이 소송 향방을 좌우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소송 중에 산재사고에서 목을 다쳤는데 그로 인해 목 장해와 파생장애로 팔 장해가 왔을 때, 노동능력 상실률 산정에 목 장해만 포함할지, 아니면 팔 장해까지 포함할지가 문제인데 이런 때는 판례를 찾아보아야 한다.

6. 맺음말
이 말을 하는 것은 단지 법조경력이 많으면 법에 대해 더 잘안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나중에 법조인이 되었을 때, 법조인이 되는 과정에서 공부했던 내용들이 두고두고 법조 실무에 필요하니 잘 공부해두고 오래오래 기억 속에 저장하라는 말이 하고 싶어서이다. 일단 법조인이 되고나면 그런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거나 복습할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규호 변호사 공학박사, 법무법인 세광 http://cafe.daum.net/pass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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