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흥수 칼럼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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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흥수 칼럼 30
  • 법률저널
  • 승인 2008.08.2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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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
 
1.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이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증거하였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인류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인류의 죄의 대가를 치루기 위하여 당신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절반의 이유에 지나지 않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인간의 죄를 청산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허물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영이,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한복음 16장 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전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오히려 유익한 까닭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성령이 올 수 없으나 십자가를 지심으로써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실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히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기를 원하고 원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성령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무의미하게 하는 것이다.
 
2.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한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행치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가? 오직 성령충만을 입은 사람이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예수님은 보혜사 곧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른 모든 말이 생각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고린도전서 3장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야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오직 성령충만한 사람만이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할 수 있다. 힘으로 능으로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왕, 선지자, 제사장과 같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성령을 부으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나아오는 자마다, 구하는 자마다 성령을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   누가복음 11장 12절에서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하물며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의 삶의 비결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기도할 때 누구에게나 성령충만이 주어지는 것이다. 새벽기도야말로 하나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부어주시는 시간이다.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왕같은 제사장이요, 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며,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베드로 전서 2장 9절). 신약시대의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은 구약시대의 왕과 같은 존재요, 선지자와 같은 존재요, 제사장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복음의 빛을 해처럼 환히 비추게 된다.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기 위하여는 반드시 새벽에 기도하며, 그날 일용할 지혜와 총명의 영, 재능과 모략의 영, 지식과 하나님을 경외함을 즐거워하게 하는 영을 받아야 함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3. 나는 새벽기도를 한 날과 새벽기도를 하지 않은 날의 차이를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새벽기도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번번히 새벽기도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 새벽기도하는 삶을 항상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벽기도를 하지 않은 날은 아침을 굶기로 작정하였다. 아침을 금식하니 한 달 정도는 11시 이후에는 현기증이 오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점심과 저녁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오히려 전보다 더 맛있게 밥을 먹게 되었고, 아침을 자주 굶었지만 체중은 2 내지 3 킬로그램이 늘어났으며, 한달이 지나자 아침을 굶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그 결과 새벽기도는 역시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때 중요한 체험을 하였다. 새벽기도하지 않은 날 아내가 정성껏 아침식사를 준비하여 주면, 아내의 정성에 못이겨서 아침식사를 하고마는 날이 대여섯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예외 없이 승용차를 통하여 나를 징계하셨다. 승용차의 키를 꼽은 채 차에서 내려 문을 닫아버려, 집으로 다시 돌아와 스페어 키를 가져와야 했던 일, 터널을 지나면서 헤드라이트를 켰는데 터널밖에 나와서 라이트를 끄지 않고 주차시킨 후 퇴근시간에 나와보면 배터리가 나가 있어서 고생했던 일, 접촉사고로 곤욕을 치룬 일 등등. 그때마다 새벽기도도 안 하고 아침을 먹은 날임을 기억하고는 몸은 성가셨지만 마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징계하시고 간섭하신다는 생각에 한없이 감사할 수 있었다.

 

4. 그러다가 우리나라의 도덕적 위기를 직감하고 강한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공중도덕의 마비, 문란한 성도덕, 사치와 향락풍조의 만연! 전통적 가치나 도덕을 대신할 생명력 있는 가치관과 도덕의 확산없이 그대로 방치할 경우 우리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나 자신이 확실하게 새벽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새벽기도하지 않는 날은 아침뿐만 아니라 저녁까지 굶을 작정을 하게 하셨다. 그 후 거의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마침내 내가 바라고 바라던 항상 새벽기도하는 삶이 이루어지고 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자에게 좋을 것으로 채워주심이라”는 시편 107편의 말씀은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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