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은 정의에 반한다? -유재복 판사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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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은 정의에 반한다? -유재복 판사의 세상보기
  • 법률저널
  • 승인 2008.06.0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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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복 판사의 세상보기

 

유재복 대전지법 금산군법원 판사

 

오래전 어느 변호사의 글이 기억난다.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는 두 여인 중 참 어머니를 가려내기 위하여 ‘아이를 칼로 잘라 반쪽씩 나눠 주라’는 솔로몬의 결정(열왕기상 3:16-27)에 대하여 ‘최악의 조정’이라고 단정 짓고 섣부른 조정으로 ‘친모의 현명한 대응’이 없었더라면 아이를 죽일 번하였다는 독특한 해석을 한 글이었다. 그 분은 ‘오판이 조정보다 차라리 낫다’는 생각으로 조정이란 매우 ‘위험한 결정’이라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조정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변호사는 적지 않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판결에 자신이 없는 판사가 조정을 권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양보를 전제로 한 조정이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것’이라는 정의 관념에 어긋난다는 것인지….


물론 단돈 1원이라도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라’는 판결이 정의로울 수는 있다. 판결을 통한 정의실현이 판사의 본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판을 하다보면 반드시 그것이 옳다는 생각이 안 드는 사건이 적지 않다. 특히 소액사건에서는 더 그렇다. 무엇이고 모르면 스트레스다. 법을 몰라 하루라도 빨리 재판을 끝내주기만을 기다리는 당사자가 있는가하면 법정 외에서 사실상 당하는 괴로움이나 불이익으로 인하여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종국적 마무리를 바라는 당사자도 있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조정을 성사시켰다. 네비게이션을 사서 5개월간 아무 하자 없이 잘 사용하였다. 겨울철 추위로 액정이 손상된다는 생각으로 관리차원에서 밤에 방안에 보관하기 위하여 거치대와 단말기를 승용차에서 떼어내어 가지고 나오다가 단말기를 주차장 바닥에 떨어트려 터치패널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회사에 수리를 맡겼고, LCD와 패널을 함께 교체하는 바람에 예상외의 수리비가 나왔다.

 

그러자 구매자가 거치대에 조임 볼트가 없어 잘 빠지게 만든 것은 설계상의 하자라며 구입비와 구입비 상당의 위자료와 수리기간동안 사용 못한 손해를 합한 돈을 청구하였다.


증거로 제출된 내용증명이나 소장이나 변론시의 진술내용을 토대로 판단하건데, 그 사이 신제품의 가격이 거의 절반으로 하락하다보니 수리비가 너무 비싸다 여기고 분쟁을 일으킨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구매자가 그간에 회사를 상대로 벌린 소란행위이다.

 

수리비를 내고 단말기를 찾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제품상의 하자를 내세우며 회사 측을 괴롭혀 온 것이다. 원만한 타협을 바라며 조정에 회부하였더니, 이미 다른 제품을 구매하여 쓰고 있다며 금전보상을 기필코 받아내겠다는 구매자의 완강한 태도로 인하여 도저히 타협이 안 되었다. 그냥 재판을 계속할까하다가 회사 측에 수리비를 면제하는 조건으로 수리한 단말기를 되돌려주라며 조정을 권하였더니 회사는 응하는데 오히려 구매자가 거부하였다. 겨우겨우 설득하여 조정을 성사시켰으나 무언가 찝찝하다.


억지 쓰면 이익을 준다? ‘우는 아기 젖 더 준다’는 속담이 있기는 하다. 단정 지을 수야 없지만 구매자가 액정손상이 걱정되었더라도 단말기만 떼어도 될 것을 거치대까지 함께 떼어 들고 나오다가 주차장 바닥에 단말기를 떨어트리고는 그 책임이 단말기가 잘 빠지게 설계한 회사에 있다고 우기니, 무언가 ‘방귀 낀 놈이 성내는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회사로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트집 잡고 시비 거는 구매자가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가 수리비 청구를 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때려잡는 식으로‘ 한 조정제안이었는데 회사는 달갑게, 오히려 구매자가 못 이기는 체 받아들이니 정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히 헷갈리기는 하다.


판사는 공평해야 하고 분쟁해결은 정의로워야 하지만 세상사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본다. 사람은 태어날 적부터 공평하지 못하게 태어난 존재라서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꾸려가는 세상사도 반드시 공평하고 올바르게 결딴나는 것은 아닌 성 싶고, 판사는 공정하여야 하지만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이 꼭 정의로운 판가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세상사는 묘한 것이고, 판사노릇도 쉬운 것은 아니다. 여하튼 조정은 얽히고설킨 분쟁의 원만하고 최종적인 해결이라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만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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