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건 2- 최규호 변호사의 법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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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건 2- 최규호 변호사의 법조이야기
  • 법률저널
  • 승인 2008.06.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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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호 변호사의 법조이야기

 

그때 그 사건 - 2

(재판은 정치다)

 

4. 전관의 개입
법무사는 자신이 법원에 근무하면서 모셨던 판사가 고위(거의 최고위층이다) 법관을 지내고 개업해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것을 알고 찾아가 이 사건을 맡겼다. 그 변호사는 이 사건 관할 지역의 법원장도 역임한 사람이고, 담당 재판장과도 같은 법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 변호사가 재판장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사건처리하는 과정에서 재판장이 상식적으로 도를 넘었던 것은 분명하다.

 

재판장은 사건 막바지에 이르러 조정기일을 잡았다. 사건 심리는 거의 끝났고, 이제 판결 선고만 남은 상태인데, 조정기일을 잡으면서 나보고 의뢰인 본인들을 꼭 데려오라는 것이다. 조정 당일 나와 의뢰인들은 변론준비절차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재판장과 상대방 법무사가 함께 방으로 들어오더라. 재판 전에 둘이 만나서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는 법리에 어긋난다.

 

그 둘은 조정 결과에 대해 미리 의논을 다 마친 상태였다. 조정 내내 법무사는 입도 벙끗 안한다. 재판장 왈, ‘내가 판결을 할 것이라면, 이 사건은 원고 패소 판결을 할 것이다. 물론 상급심 가서 바뀔 수는 있겠지만 나는 원고 패소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러니 원고들은 피고가 법적인 책임은 없지만 도의적 차원에서 돈을 준다고 하니 받아라.’라는 말을 했다. 조정 기일에, 판사가 재판 결과를 미리 얘기하고 조정을 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이 사건에서 자신이 정말로 원고 패소 판결을 할 의사가 있었는지도 불분명하고, 내 생각에는 거짓말로 보인다. 우리의 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나는 조정에 반대했다. 판결로 가자고 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나에게 ‘변호사님은 빠져라. 패소하면 원고들의 손해를 당신이 책임질 것이냐?’며 내 입을 막고, 바로 의뢰인들에게 말한다.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끝내느니 조금이라도 줄 때 받아라’라고. 법무사가 제시한 금액은 청구금액 1억원 중에서 1/4 수준인 2400만원 정도였다.

 

 재판장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만약 법무사가 100% 승소할 것이 분명하다면 자기의 피같은 2,400여만원을 내놓을 리가 없다. 그것도 법적 책임이 없는데 단지 도의적인 이유로? 어림없는 얘기고, 법무사가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말이다. 아주머니들은 어찌할 줄 모르더니 울음을 터뜨리고는, 그 제안에 합의했다. 그 아주머니들은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로부터 원망을 들은 것은 물론이다. 바보 같은 결정을 했다고.

 

조정의 폐해를 정면으로 받은 것이 바로 이 사건이었다. 재판장은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피고는 수 십쪽에 달하는 복잡한 내용의 준비서면을 재판 이틀 전에야 제출했다. 그런데 재판 당일 재판장은 ‘피고가 준비서면을 잘 써냈어요. 정리를 아주 잘 했어요’라며 칭찬을 한다. 이런 법은 없다. 어이없는 일이다. 변론기일에 한쪽이 낸 서면을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5. 후속 고민
이 일을 두고 나는 여러 고민을 했다. 대법원에 그 판사에 대한 징계를 요구할까라는 생각도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러나, 나는 법인에 몸담고 있는 상태라, 자칫 다른 변호사님들에게 피해가 갈까 우려되어 참기로 했다. 만약 나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다면, 이 일은 대법원에 진정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 변호사님들과 점심식사를 하다가, 이 일을 내가 얘기했다. 조정의 폐해를 언급하면서 판사들의 정치적인 재판을 비판했다. 그러자 한 변호사님도, 판사들을 욕하면서 판사들이 조정을 엉터리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사들은, 변호사로부터 청탁이 들어오면, 판결문에서 편파적으로 편들기는 어려우니 조정으로 끌어가서 거기서 편파적으로 진행을 한다. 판결문은 기록으로 남고, 상급심에 가서 깨지면 본인에게 불이익이 많으니 함부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정은 기록으로도 안 남고, 조정실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녹음할 수도 없어 아무런 기록이 남지 않는다. 어떤 말을 해도 사후에 문제 삼기가 쉽지 않다.


6. 의외의 결과
이 사건은 나에게 또 한가지 경험을 하게 하는데, 나는 두 아주머니로부터 착수금 400만원을 받고 일을 했다. 성공보수는 20% 정도 약정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정이 엉터리로 되는 바람에 나는 한 아주머니로부터는 아예 성공보수를 받지 못했고(달라고 해도 안줘서 결국 소송 냈다가 내가 스스로 취하했다) 한 아주머니로부터는 150만원 정도를 받은 것 같다.

 

그런데 두 아주머니 외에 비슷한 피해자가 한 명 더 있어서(피해액이 5천만원 정도다) 그 분한테는 착수금 없이, 승소금액의 50%를 받기로 했다. 그 분은 역시 같은 날 조정되어 1,000만원을 받는 것으로 조정이 되었는데, 나는 그분한테 성공보수를 450만원 받을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주력했던 두 분 아주머니보다 그 뒤 한분의 소송에서 나는 훨씬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 만약 나머지 한분을 대리하지 않았다면 이 소송에서 너무나 큰 손해를 봤을 것이다.  나는 이 소송 때문에 서울에서 버스로 2시간 이상 걸리는 시골지역에 6번 가야했다. 물론 제출된 서류는 10여회에 이르며 기록은 수백 쪽에 이르고, 형사소송도 같이 제기했으므로 나에게 일은 산더미 같았다. 이 사건은 내가 변호사를 하면서 당한 가장 슬픈 기억이다.


7. 재판은 정치다
모든 판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년의 나이든 판사의 경우에 재판을 정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친한 변호사로부터 청탁이 들어오면 자기 나름대로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한다.

 

결국 사익을 위해 공익을 희생하는 것이고, 그 반대편 당사자가 피해를 보는 것이다. 재판은 한쪽의 이익은 곧바로 다른 쪽의 불이익이 되는 것이고 10원이 저쪽에 더 가면 10원이 이쪽에 줄어든다. 젊은 판사, 여판사 중에는 그런 비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이지만 경력이 어느 정도 된 남자 판사일수록 그런 비율이 높아진다.

 

그래서 나는 법정에 가서 판사가 젊거나 여자라면 일단 안심을 한다. 위 내가 피해를 본 사건도 담당 판사는 부장판사였다. 물론 아래에 배석이 있었고 주심도 배석이었지만 개의치 않고 자신의 정치를 밀어붙였다. 결국 우리 의뢰인들은 1억원 훨씬 넘는 손해를 봤다.


대형 펌은 사건이 들어오면 담당 판사와 가장 친할 것 같은 펌 내 변호사를 물색해서 전화를 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모든 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함이다. 그런데 대형 펌은 워낙 변호사가 많다보니 어떤 판검사가 걸려도 펌 내 변호사 중에 그 판검사와 친한 변호사가 꼭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전화를 하여을 때,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편의를 보고 결론에 있어 도움을 받는다. 대형 펌에 가는 사건은 승소확률이 높은 사건이 가지는 않는다. 매우 승소확률이 낮은 사건들이 간다. 왜냐하면 쉬운 사건은 굳이 비싼 돈을 들여 대형 펌으로 갈 필요 없이 싼 돈으로 변호사나 심지어 법무사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펌에 가는 사건은 그만큼 승소가능성이 낮은 사건이란 뜻이다. 그런데 사건 자체가 갖는 승소확률보다 실제 대형 펌의 승소확률이 높은 것은 대형 펌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러한 친분관계 활용도 한 몫 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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