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과 뉴딜(New Deal) 정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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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과 뉴딜(New Deal) 정책(1)
  • 법률저널
  • 승인 2008.02.2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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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의 숲에서 거닐다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걸쳐서 미국 대공황과 뉴딜 정책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단순히 역사 적 사실만을 보지 말고, 시장과 정부와의 관계라든가, 국가의 역할, 정부관의 관점에서 글을 읽어보라.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정책적 차이점도 유의하면서 읽기를 바란다. 저번 주에 읽어 보았던 환경정책과 연관시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1929년 초 공화당 출신인 허버트 후버(Herbert Clark Hoover)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미국의 경제는 역사상 유례없는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후버 대통령은 개인주의와 자유방임주의 철학에 토대를 두고 시장문제에 대해서는 불간섭을 원칙으로 하였다. 1929년 10월 29일 뉴욕 시의 증권가에서 주식가격이 폭락하고 있었음에도 후버 대통령은 이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대공황은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1931년 유럽은행들이 파산하기 시작하였고, 영국은 금본위제를 폐지하였다. 이에 유럽인들이 미국 증권을 팔려고 내놓았고 미국 은행으로부터 유럽의 금이 빠져 나갔다. 후버 대통령은 자유방임주의 정책에서 정부 개입주의로 방향을 바꾸었지만 이미 시기를 놓쳐 버렸다.
  1932년 봄 수백만명의 실업자가 길거리에 넘쳤다. 대도시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자선 단체가 나눠주는 구호품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 농민들은 농산물의 가격 폭락으로 ‘농장 휴업(firm holiday)’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디트로이트에서는 실업자들이 경찰과 충돌하여 상당수가 사망하였다.
  미국 사회는 공산혁명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고,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유산 계급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32년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되었고, 정권은 민주당으로 넘어갈 것의 확실하였다. 민주당은 해군 차관 출신의 혁신주의자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를 후보로 지명하였다. 공화당은 후버 대통령을 다시 공천하였다. 물론 승리는 민주당 후보 루즈벨트였다. 루즈벨트가 당선된 1932년 11월부터 대통령에 취임한 1933년 3월에 이르는 4개월 동안, 미국의 경제와 사회는 최악의 상태에 있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스트를 연상시키는 ‘은색 셔츠단(Silver Shirts)’이 나타나 대중을 선동하였다. 은행의 파산도 절정에 이르러, 지방 은행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다. 예금주들은 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몰려들었다. 루이지애나와 뉴욕에서는 은행의 파산을 막기 위해 주지사가 대출 업무와 예금 업무를 중단시키는 ‘은행 휴업(bank holiday)’을 선포하였다.
  공식적인 실업자 수만도 전체 노동력의 3분의 1인 1700만 명에 이르렀다. 생산은 1929년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루즈벨트는 취임과 동시에 종래의 자유방임주의적 정책을 버리고 적극적인 정부 개입주의(interventionism) 정책을 도입하였다. 루즈벨트는 그의 정책을 ‘뉴딜(New Deal)’로 불렀는데 이는 미국 사회의 재편성을 의미하였다. 재편성의 추진자는 시장이 아닌 정부였고, 그것의 실현 방법은 국민 생활 전반에 대한 국가 통제(state control)였다.
  루즈벨트는 개혁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전국의 은행들에 대해 4일간 휴업을 명령하였다. 빈민들을 돕기 위해 연방 정부 돈으로 구호 사업을 벌이고, 청년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삼림 보호와 홍수 방지 사업에 정부 돈을 투자하였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한 금주법(the prohibition law)을 폐지하였다.
  농업의 위기는 과잉 생산에서 오는 농산물의 가격의 하락 때문이라고 보고서, 정부는 농업 생산을 줄여 농산물의 가격을 올리려고 하였다. 1933년 농업 조정법(Agricultural Adjustment Act)은 농민들이 생산을 줄이는 대가로 정부가 그 손해 부분을 보상해주는 법이었다. 농업 조정법이 시행되자, 농민들은 목화를 뽑아 버리고, 600만 마리의 돼지를 죽였다. 수백만 미국인들이 굶주린 상태에서 이러한 행태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었지만,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의 상승으로 이득을 보게 되었다.
  정부는 인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농민들을 돕기 위해 1933년에 금본위 제도를 폐지하였다. 인플레이션은 농산물 가격을 상승시키고, 농민들의 부채를 경감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폐를 발행하고, 은화(銀貨)의 무제한 주조를 허용하였다. 다음 주에 계속된다.
그림은 후버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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