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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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률저널
  • 승인 2007.11.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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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엽기적인 대한민국

 

2007년, 오늘의 한국은 엽기적이다. 엽기적이다 못해 제대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다.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가 삼성의 관리대상 1호 검사라고 폭로되었다. 삼성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가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찰청 고위직 검사라고 밝혔다. 임채진 내정자 본인은 단 돈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오리발이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안양 소재 베네스트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없냐는 노회찬 의원 등의 인사청문회 질의에 대하여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는 대한민국 검사의 총수가 되겠다는 자가 하는 명백한, 후안무치한 거짓말이다.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에는 맞다, 아니다, 기억나지 않는다, 모른다 등 네 가지가 있다. 맞다와 아니다(또는 틀리다) 및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세 가지 유형의 대답은 경험을 전제로 나올 수 있는 답변자의 대답태도이다. 자기가 직접 경험을 했기 때문에 맞다와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고, 시간이 많이 지나 기억나지 않을 경우에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른다는 자기가 경험한 바가 없기 때문에 알지 못하여 대답할 수 없는 경우에 사용하는 용어이다. 위 용어는 법조인에게 있어서는 사법연수원에서 배우는 첫 번째 단추라고 할 수 있고,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동안에 저절로 습득된 가장 보편적인 업무지식으로 밥 먹자라는 말보다 더 많이 매일 사용하고 있는 기본용어이다.


변호사인 나는 변론기술상 구태여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의뢰인들에게 수사과정이나 증인신문과정에서 불리한 이야기가 나오면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대답해도 무방하다라고 조언한 바가 몇 차례 있음을 고백한다. 아마도 모든 변호사들이 그렇게 변론과정에서 행동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피의자에게는 묵비권이 있으므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거짓말을 할 권리까지도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조언하는 것은 변호사의 직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증인으로 증언대에서 선서하지 않는 한 피의자나 피고인이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거짓말 한 것을 처벌하는 법은 없다. 또 그럴 권리가 피고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그게 법을 잘 모르는 일반국민들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변론기술을 익히는 학습이기도 하다.


위증죄는 객관적 사실에 반한 사실을 진술할 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반할 사실을 진술할 때 성립하는 범죄이다. 즉 증인의 증언이 객관적 사실에 배치된다고 하더라도 증인이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고 그 기억대로 진술한 것이라면 위증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처럼 위증 여부는 기억에 반한 사실을 고의적으로 거짓 진술할 때 성립한다.


따라서 노회찬 의원이 임채진 내정자에게 베네스트 골프장에서 삼성의 장충기 및 이우희씨와 골프를 함께 쳤느냐는 질문에 임 내정자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은 “골프를 친 사실이 있음에도 없다”고, 즉 “아니다”라고 대답하면 곧바로 위증죄가 성립되기 때문에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답변하면서 위증죄를 피해가는 수법으로 사용되는 답변 기법이다. 나도 골프를 치지만 골프를 함께 치면 적게 잡아도 다섯 시간 동안 동반자들끼리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된다. 열여덟 번에 걸쳐 티 업 하는 것을 구경하며, 굿 삿이니 낫 베드니 오비니 몰간이니 하면서 동반골퍼에 대한 칭찬 및 위로의 덕담을 주고받고, 거의 20리길에 달하는 필드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거푸집에 모여 커피나 음료수를 함께 마시며, 골프가 끝나면 함께 발가벗고 사우나실에서 목욕을 하고,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이다. 필드에 머무는 시간은 다섯 시간 정도이지만, 라운딩을 시작하기 전부터 라운딩을 마친 후의 뒤풀이까지 합하면 여덟 시간 가까이 함께 동반하게 되고, 이는 교제를 위한 운동으로서 최고라고 찬사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까닭에 함께 라운딩하는 골퍼들은 금새 친해지고, 특히 필요에 의해 맺어지는 라운딩의 경우에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이가 되는 것이 골프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까닭에 고위직 인사들끼리 함께 골프를 치고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주 “바보”이거나 “치매”에 걸린 경우에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답변이 “함께 골프를 쳤다”라는 말보다 더 확실히 골프를 쳤음을 시인하는 말이 된다고 보는 까닭이다. 대한민국의 검사를 바보로 알아도 유분수지, 대한민국에서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는 머리 좋기로는 검사나 판사, 변호사를 따라갈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법조인들은 연예인이나 과학자처럼 창조적인 뇌의 발달은 부족할지 몰라도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내는 머리만은 최고라고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조인들은 퍼즐을 맞추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평생 동안 아주 사소한 단초에서 전체를 그려내는 작업을 하는 직업에 종사해왔기 때문이다. 아주 적은 거짓말에서 진실을 찾아내고, 하나를 보면 열을 상상해내고 추리해내는 직업을 평생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기에 그러한 훈련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뒤처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검찰고위간부로 출세하는 자는 그러한 능력이 다른 검사에 비해 더 월등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남의 일도 아니고 자신이 그렇게 함께 웃고 떠들고, 농담하며 함께 골프를 친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함께 쳤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만일 치지 않았다면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각종 비리가 폭로되는 대선후보는 여전히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고, 노회한 은퇴자가 다시 대선후보에 발벗고 나서 달걀세례를 받고, 그만그만한 범여권 후보들은 단일화를 하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발버둥치고, 외국어고등학교의 입시문제지가 교사에 의해 학원가로 유출되고, 본질이 아닌 외곽 때리기에 여념이 없는 언론이 있고, 한국은 참으로 엽기적이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연은 예쁘고 귀엽기만 한데, “엽기적인 그남”은 왜 이리 추접스럽고 악취만 나는 것인가? 삼성비자금이라는 본질은 진정 찻잔의 태풍으로만 남아 있다 사그러지게 될 “엽기적인 태풍”이란 말인가? 정말 엽기적이다, 엽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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