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정(情)과 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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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정(情)과 뇌물
  • 법률저널
  • 승인 2007.11.0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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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장 마리 구스타프 르 클레지오는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불어를 구사하는 작가”라는 칭찬을 받고 있는 프랑스 소설가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 그는 스물 세 살이던 1963년, 처녀작인 “조서(調書)”에서 문명사회의 폭력에 희생되는 왜소한 인간의 무력함에 관한 조서를 썼는데, 그 작품으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젊어서부터 불란서 문단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이다. 그 후에도 수많은 문제작들들 발표하였는바, 소설로 열병, 홍수, 물질적 법열, 섬, 사막, 하늘빛사람들, 황금물고기 등이 있고, 평전으로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등이 있다. 지난 9월부터 이화여대 불문과 초빙교수로 서울에 머물고 있는 르 클레지오는 시월의 마지막 날 열린 “파주북시티국제출판포럼 2007”에서 한국문학의 매력으로 情을 꼽았다.


그는 “단합의 힘, 공유의 느낌이 바로 정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으로 프랑스어에는 적당한 대응어가 없지만 가족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말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원수단”이라고 정의하면서 “한국문학에서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정이 인간을 연결시키고 응집시키며 모욕에 저항할 수 있도록 한다.”고 주장하였다.


외국어로 쉽게 번역될 수 없는 情의 실체는 우리 한국인에게 있어 과연 무엇일까?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는 나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여든 다섯이 넘으신 늙은 권사님이 한 분 계신다. 그 분은 내가 주일날 따뜻하게 손 한 번 잡아주는 것에 기쁨을 감추지 않고 감격해 하신다. 지난주 만났을 때는 나에게 “한 주일 내내 내 얼굴이 떠올랐다.” 하시며 내 손을 잡고 놓을 줄을 모르셨다. 돌아가신 내 어머님 연배에 가까우신 분이라 그 분을 보면 어머님 생각이 나기도 하여 어쩌다 아내에게 빵을 구으라 해서 가져다 드리거나 차를 대접하거나 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늙으신 권사님들은 교인들이 아는 체 인사만 해도 좋아하시는데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면 더없이 좋으신 모양이다. 아마도 많이 외로워 그러시는 것 아닌가 싶다. 따님이 선교사로 외국에 나가 있는 이 할머니 권사님은 교회 마당에서 나를 발견하시면 두 손을 높이 들고 아이처럼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향해 뛰어오시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고프신 게다.


내게 있어 정의되는 정은 “사람 고픔”이다. 억압받고 살아왔던 많은 이들이, 가난했던 많은 사람들이 사람 고픔을 겪으며 저절로 생성된 것이 정이 아니었을까? 누군가를 뜨겁게 갈구하는 사랑과는 다른, 은근하고 수줍은 겸손, 누군가가 자기편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신뢰, 그래서 서럽고 슬플 때 눈물 펑펑 쏟으며 마음을 내려놓고 싶은 자에 대한 의지, 그러한 심적 상태가 바로 한국인의 정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고프기에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이 고프기에 사람에게 무한정 관용을 베풀 수 있는, 그래서 작은 관심과 보살핌에도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가까워질 수 있는 애틋한 감정의 몰입, 이게 바로 정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정이 지닌 긍정의 힘은 르 클레지오가 정의한 바대로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의 응집을 가져오고 모욕에 저항할 수 있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부정적 측면 또한 대단히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친 응집은 경계의 벽을 무작정 허물고, 모욕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집단이기주의로 표출될 수 있는 무서운 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정이라는 포장하에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공과 사의 구별이 모호해지는 가치혼돈이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의식과 현실을 지배한다. 그렇게 많은 뇌물 스캔들이 밝혀져 처벌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뇌물이면 모든 것이 통용될 듯한 사회는 계속되고 있다. 까닭에 그러한 관행이 부정한 정치자금의 유입으로 나타나고, 신성해야 할 대학입시의 부정입학을 위한 미끼로 이용이 될 뿐만 아니라, 공무원을 구워삶아 부정한 인허가와 특권이 남발되고, 일부 언론기관의 입을 틀어막아 진리와 진실이 은폐되거나 왜곡되고, 종교기관의 탈선을 부추겨 신성이 인성에 굴복되고, 금융기관의 돈줄이 꼬여 금융시장의 폐해를 가져오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학의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연세대학교 정창영 총장이 임기 중 불명예사퇴하였다. 그의 부인이 한 학부형으로부터 자녀에 대한 치의학과 편입학 청탁 명목의 부정한 돈 2억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방우영 연세대학교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그의 사표를 즉각 수리하였다. 돈에는 눈이 없다. 까닭에 먼저 본 놈이 임자라는 속된 말이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명예와 양심이 있는 학자라면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정말 안 된다. 어떻게 그 100여년 쌓아온 학교의 전통과 명예가 무너질지도 모를 비리를 단돈 몇 푼에 후안무치하게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보이지 않는 밀폐된 방에서 한 마리 쥐새끼처럼 음모를 꾸미는 인면수심의 사회지도자들이 여전히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세상, 세상은 결론 없는 진행 중이다. 그렇게 얻어진 돈으로 돈 귀한 줄 모르고 개미처럼 허리띠 졸라매며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을 깔보았을 것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방만하게 진행되는 대학의 편입학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거의 모든 대학이 올바른 학사관리를 하고 있지만, 간혹 잘못된 이익 추구의 편법으로 악용될 수도 있는 대학편입학제도에 대한 본질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에서 법무팀을 맡았던 김용철 변호사가 그가 개설하지 않은 그의 통장에 삼성의 비자금 50여억원이 불법입금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그러한 삼성의 비자금이 정치권을 비롯하여 많은 곳에 로비자금으로 사용되었다고 고해성사하였다. 이 사건이 또 다시 유야무야될지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또 다시 삼성의 비자금이 위력을 발휘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비자금이 옷을 벗고 실체가 밝혀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BBK 주가조작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경준씨가 14일게 미국으로부터 강제송환될 것이라 한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인 이명박씨를 죽이는 열쇠가 될 것인지, 그의 무죄를 증명하는 면죄부가 될 것인지 사뭇 정치권은 초긴장상태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출마가능성이 점차 높아가고 있다고 야단들이다. BBK 주가조작처럼 최근 들어 재벌 2,3세들의 주가조작사건이 일반화되어가는 추세에 있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아주 나쁜 놈들이다. 돈맛은 알아가지고, 땀 하나 흘리지 않고 밀실에서 음모협잡을 통해 주가조작을 위한 작전을 짜고, 이를 여론에 적당히 흘려 개미군단들이 꿀을 찾아 달려들게 만든 다음 단물만 빨아먹고 빠져나가는 놈들은 지독히 나쁜 놈들이다.


나는 이틀 후가 기다려진다. 주일날, 나를 아껴주시는 할머니 권사님 손을 따뜻하게 맞잡을 수 있는 정에 넘치는 그 순간이...... 그대는 지금 이 순간, 누가 기다려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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