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이 가을에 읽은 한 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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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이 가을에 읽은 한 편의 시
  • 법률저널
  • 승인 2007.10.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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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가을이다. 금년처럼 무더웠던 여름, 금년처럼 비가 많이 내린 여름도 없지 않나 싶다. 기상 관측 사상 수십 년만의 폭염이었다고도 하고, 금년처럼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린 적이 없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어쩌랴, 지금은 틀림없는 가을이다. 하늘이 맑고 푸르다. 나뭇잎이 어느새 여름 내내 힘겹게 살아왔던 삶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서서히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나뭇잎을 보며 가을로 접어드는 변화하는 세상을 본다.


이 가을에 인간 본질을 묻고 있는 시 한 편을 본다. “꼬부리고 앉아 생각하는 사람을 옆에서 보자, 그는 묻고 있다. 말은 너무 늦다. 그는 본능으로 묻고 있다. 그의 머리와 가슴속에는 무수한 갈고리가 혹은 엄청나게 큰 하나의 갈고리가 걸려 있다. 로뎅만이 아니다. 고뇌에 처해보라. 인간은 태아 적부터 물음표로 포즈를 잡는다. 삶의 준비다. 시작이다. 진행이다. 인간은 배가 고파도 추워도 꼬부린다. 묻고 있는 거다. 물어야할 때 묻고 싶은 거다. 말은 너무 늦다. 몸이 먼저 말한다. 물을 필요가 없을 때 우리는 몸을 푼다. 쫙 펴고 눕는다. 죽음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  정숙자 시인의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에 수록된 “로뎅은 묻는다” 전문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의 조각품인 “지옥의 문”에 조각되어 있는 또 다른 조각품이다. 지옥의 문 앞에서 왜 사람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신곡의 저자 단테를 생각하며 조각한 작품이라고 알려지기도 한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을 넘는 인간을 바라보기 위해 아주 불편한 포즈로 앉아 있다.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실제 앉아 보면 대단히 불편하다. 편히 앉지 못 하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앉아 있게 될 때 인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편하면 저 시인의 말처럼 쫙 펴고 눕게 되고, 그건 죽은 인간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태아 적부터 물음표로 포즈를 잡는다. 물을 필요가 없을 때 우리는 몸을 푼다.”라는 부분에 이르면 무릎을 치게 된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무언가를 묻고 있는 것이라니, 그 아이가 뱃속에서 생각하는 것은, 이 험한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하는 심각한 고뇌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요즈음은 사람들이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말은 너무 늦다고 말하는 시인은 몸은 본능으로 묻고 있다고 대답한다. 문제는 몸이 말하는 본능에 지나치게 충실한 현대인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인은 몸을 통해 인간은 사유의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깨달았는데 반하여, 많은 현대인들은 사유의 세계로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몸으로 건너뛰기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몸이 하는 언어가 가장 정직한 언어일지 모른다. 몸으로 하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진솔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스킨십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손을 잡는다. 영어 속담에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하고, 눈에 보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자연히 멀어지게 마련이다.


어제는 고등학교 동창생 몇이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한 반이었던 친구가 한 명이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 이야기가 나왔다. 오십년 가까운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담임선생님께서 학기말 통신표를 나눠주시며 다정히 내 이름을 불러 주시며 새 학년이 되어도 공부 열심히 해라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던 기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친구 중에 다른 친구가 그 담임선생님의 연락처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교직에 계셨던 그 친구의 어머니하고 연락이 된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수소문해서 담임선생님의 연락처를 알게 되어 전화를 드렸더니, 어쩌랴, 선생님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계셨다. 1학년 때 반에서 일등을 했었기에, 혹시라도 기억을 하고 계실지 모른다는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록 담임선생님이 마지막에 내 머리 쓰다듬어 주시며 해주셨던 격려의 한 말씀 - 2학년 때 공부 열심히 해라 - 을 가슴에 품고 나는 살아왔는데, 정작 담임선생님은 나를 기억하고 있지 못하셨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실망도 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선생님과 연락을 하고 싶다는 내면의 꿈틀거림을 풀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20대 초반에 학교에 부임하여 우리 학급을 맡았던 담임선생님은 이제 70대 중반으로 접어들어 있었지만, 건강하시다고 하신다. 멀리 떨어져 있기에 당장은 뵐 수 없지만, 언제 시간을 내어 한 번 선생님을 방문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담임선생님은 일상이었을지 모른다, 수많은 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일이. 하지만 여덟 살 먹은 어린 나에게는 대단히 사랑받는 느낌이었고, 수십 년 동안 내 가슴 속 깊이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다라는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살 수 있도록 하셨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정숙자 시인은 “로뎅은 묻는다”에서 “인간은 배가 고파도 추워도 꼬부린다. 묻고 있는 거다”라고 실토한다. 맞다. 인간은 배가 고플 때도 추울 때도 틀림없이 몸을 꼬부린다. 마치 한 마리의 누에가 나방이 되기 위해 제 몸을 꼬부려 움츠러들듯 몸을 꼬부린다. 하지만 세상이 점차 풍요로워지다보니 몸을 꼬부리는 사람이 사라져가고 있다. 모두들 당당하게 몸을 펴고 또 편다. 그런데 정숙자 시인은 말한다. “물을 필요가 없을 때 우리는 몸을 푼다. 쫙 펴고 눕는다. 죽음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물을 필요가 없을 때 몸을 풀고, 쫙 펴고 눕는 순간 인간은 죽는다라고 말이다. 정신이 죽어도 몸이 펴지겠지.


나는 지금도 몸을 꼬부리고 생각한다. Auguste Rodin의 철자가 “로뎅”이 맞는지, “로댕”이 맞는지를...... 인간은 이처럼 사소한 것인가? 정숙자 시인의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을 이 가을에 사서 읽기를 권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우수도서로 선정한 시집이니 독자에게 한 번쯤 권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아니 이 가을에 한 번쯤 사색에 잠겨보자고 권하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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