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양식산과 자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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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양식산과 자연산
  • 법률저널
  • 승인 2007.09.1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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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자란 탓인지 생선이 식탁 위에 오르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하다. 아내도 매끼 식탁 위에 생선 한 토막이라도 올려놓으려고 애를 쓴다. 요즘 간혹 김치 한 접시 달랑 올라오는 식탁을 접할 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맛있게 먹으려고 애를 쓴다. 최소한의 노후보장을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아내에게 잘 보여야 할 판이니 말이다.


까닭에 생선회도 기회가 주어지면 종종 먹는 편인데, 어줍잖은 일식집이나 횟집에 가면 자연산을 먹을 것인지 양식산을 먹을 것인지 꼭 물어본다. 그리고 가격표를 보여주는데 당연히 자연산은 양식산에 비해 월등히 비싸다. 체면을 차려야 할 손님께 식사대접을 하기 위해 찾을 경우에 식당 종업원으로부터 그런 주문 요청을 받으면 난감해질 때가 많다. 가격 때문에 쩨쩨하게 양식산을 고르는 것처럼 느껴져 손님이 대접이 소홀하다고 느끼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의식의 뒤편에는 자연산이 양식산에 비해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할 것이란 선입감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그럴 때 나는 어김없이 “양식산 주세요”라고 주문한다. 수십 년을 먹어온 생선회이지만, 내 혀는 자연산과 양식산의 맛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내 눈도 양식산과 자연산을 구별할 줄 모른다. 더 나아가 식당 주인이 추천하는 자연산이 진짜 자연산인지 믿을 수 없기도 해서이다. 내가 주문해 내게 보여준 자연산이 주방에서 양식산으로 둔갑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식당 주인에게 활어를 공급해주는 활어업자가 양식산을 자연산이라고 사기를 쳐서 공급할지도 모르고, 그 활어업자는 어부로부터 양식산을 자연산으로 공급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두리양식장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호언에 의하면 시중에 자연산이라고 유통되는 활어의 90%는 양식산이라고 한다. 실제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쇠고기도 굳이 한우를 먹어야겠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한다. 그리고 수입쇠고기를 사먹는 문제에 전혀 거리끼지 말라고 충고한다. 한우는 비쌀 뿐만 아니라 온갖 양념으로 요리되어 나오는 고기가 수입우인지 한우인지 구별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음식점에서 굳이 한우불고기나 갈비를 주문하면서 이거 속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그리고 모두들 미국, 미국 하고 떠들어대는 그 미국에서 미국인들이 맛있게 먹는 쇠고기를 수입해오는 것인데, 굳이 한우를 먹어야겠다고 고집부릴 필요도 없다는 말을 꼭 첨가한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내가 의심이 많은 사람인가 하고 한편으로 자문도 해보지만, 비싼 자연산을 먹겠다는 특권의식, 한우만을 먹어야겠다는 고리타분한 국수주의적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싶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추스른다. 남들이 다 먹는 양식산, 수입우를 기꺼이 함께 더불어 먹어야겠다는 보편적 사고라고 나는 스스로를 자위한다.


자연산도 진실이고, 양식산도 진실이다. 한우가 진실이듯, 수입우도 진실이다. 모두가 진실인데, 많은 이들은 이들을 어느 한쪽이 진실이 아닌 양 호도하기도 하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데 망설이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신정아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거짓 예일대박사학위, 동국대교수임용, 광주비엔날레위원장, 변양균 전 청와대정책실장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밝혀짐으로써 거짓이 진실을 덮을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됨으로써 세인들의 입방아는 무섭게 방아를 찧고 있다. 이제 그녀의 나이가 서른다섯이라니 임용당시에는 이제 서른을 갓 넘긴 아주 앳띤 나이의 여자였을 터, 그 여자에게 놀아 난 한국의 자칭 지성인이라는 나잇살 먹은 사람들의 체신이 창피 수준을 넘어 후안무치의 지경에 이르렀음을 본다. 여의도에 집이 있는 홍기삼 전 동국대총장의 오피스텔이 신정아의 오피스텔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고 한다. 변양균 전 청와대정책실장의 서울 거주 호텔이 80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나는 종교를 믿지만 종교계나 종교지도자는 믿지 않는다. 예술가의 작품은 믿지만 그 예술가는 믿지 않는다. 그들도 나와 다를 바 없는 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명색이 시인인 나는 발표된 시와 그 시를 쓴 시인이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깊이 체험하고 있다. 그럴 듯한 시를 써 많은 이들에게 작품을 통해 감동을 주는 시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의 사적 행동은 시단에서 말석이라도 차지하기 위한 온갖 추태를 벌리고 있음을 수없이 목도했기 때문이다. 어찌 문단뿐이랴? 음악계도, 미술계도, 종교계도, 학계도 다 마찬가지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양식산이 양식산으로 있는 한 진실하다. 그리고 양식산으로 떳떳한 대접을 받으니, 그것으로 자족하면 된다. 그런데 양식산이 스스로를 자연산이라고 떠벌리는 순간 그는 자연산이 아니라고 지탄을 받을 뿐만 아니라 양식산으로서도 대접을 받지 못한 채 뚝뚝 썰려 잡탕국의 재료가 될 뿐이다. 나는 자연산을 먹고 이빨 쑤시고 나오는 사람을 별로 부러워하지 않는다. 다 되돌아보면 한세상일 뿐이다. 그런 생각들은 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절감하게 된다. 내 나이도 이제 50대 중반을 넘어섰으니, 젊어 선배님으로 모시던 분들이 나이 70이 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을 쳐다보니 하나같이 똑같아진다는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높은 관직에 있었거나, 깊은 학문을 쌓았거나, 많은 부를 쌓았거나,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다 똑같아진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아하, 인생이라는 게 별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양식산을 먹은들 어쩌랴, 그날 맛있게 먹었으면 행복한 것을.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으니, 일생을 착하게 산 사람은 나이가 들면 더욱 빛이 난다는 사실 말이다.

 

종교계여, 학계여, 가정이여, 세상이여, 우리 하나만 약속하자, 우리, 착하게 살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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