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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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아니나 다를까?
  • 법률저널
  • 승인 2007.09.0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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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아니나 다를까,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억류된 인질사태가 해결되자 국내에서는 그 뒷이야기로 팥죽 끓듯 한다. 김만복 국정원장의 현지에서의 진두지휘가 자칫 잘못되었다면 커다란 국가 안보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음지에서 양지를 향해 묵묵히 일해야 하는 국정원의 직책상 외부 언론에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의 모습이 공공연히 노출된 것은 심히 잘못되었다는 비판이 언론에서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러한 비판을 공공연히 하는 언론기관이 앞 다투어 국정원장의 사진을 담은 동정기사를 대서특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 언론이 국가 안위를 걱정하고, 국가정보기관의 동정을 감추어주는 것이 국가안보에 맞는 일이라고 판단했다면 비판에 앞서 그의 동정사진을 신문기사나 방송화면에서 먼저 지워야 옳다. 자기들이 앞 다투어 그의 사진을 크게 싣고, 그의 하루 동선을 한 말과 행동에 따라 보도하면서, 그의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되지 않느냐는 허언을 늘어놓고 있으니, 언론이야말로 얼마나 이중적 위선자들인가 말이다.


되돌아보자, 원래 국가정보원 원장이라는 자리가 그러한 자리가 아닌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최일선에서 생명을 걸어야 하는 공무원이 바로 국정원의 구성원이 할 일이다. 그들은 국익을 위해 스파이 노릇도 해야 하고, 적성국에 위장침투도 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살인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디 젊잖게 말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인가 말이다. 탈레반은 총을 들었고, 실제로 두 명의 한국 인질을 살해하였다. 그것도 총을 한 사람에게 십수방씩 쏘아대는 잔인한 모습으로. 그들은 또 다시 새로운 인질들을 살해하겠다고 공언하였고, 그 인질들은 아깝고 소중한 우리 한국인이었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 국정원장이 발벗고 나서서 현장에서 지휘를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의 그러한 행동에 대하여 우리 언론이 앞장서서 비판을 하는 것을 보면 본말이 전도되어도 참으로 정신없이 전도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의 언론들이 그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보도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위해 그가 한 행동은 최선의 행동이었다고 오히려 방어하고, 그의 행동을 감싸고 돌아야 하는 것이 맞는 대응법이라고 본다. 내심으로야 그의 행동 중 일부가 경솔했을 수도 있고 그의 노출이 위험을 자초할 수 있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더라도 대외적으로는 한편이 되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옳다. 그가 한국 국정원장실에서 전화로 지시를 내리다 인질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면 국내 언론은 또 뭐라 하겠는가? 팔짱만 끼고 있다가 이런 참혹한 결과를 내었다고 정말 방방 뜨지 않겠는가? 결과를 보고 사후약방문을 쓰는 놈들은 제일 나쁜 놈이다. 누가 그 짓을 못하겠는가?

 

지난주에도 언급했듯이 이게 바로 내부의 분열, 내부의 적들이 진짜 외부의 적 앞에서 사분오열 찢어지는 참을 수 없는 비극이 아니겠는가? 정말 한국인은 월드컵 축구경기 앞에서만 하나가 되는 얕은 지성인들인가? 지성이 감성을 관조하며, 지성이 현상을 초월하는 정중동의 겸손과 절제, 자제와 상대방 존중의 호혜성은 진정으로 발휘될 수 없는 기대무망함인가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된 지 수삼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승자와 패자의 세대결은 화합을 모른다. 입으로만 하는 승복은 진실로 승복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와 달리 거꾸로 가고 있음에 한국인의 한계를 본다. 끼리끼리 모여서 작당하고, 끼리끼리 또래를 만들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정치 행태야말로 정치 모리배들의 추잡한 짓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에 호의적인 언론들은 이명박 후보의 포용력 없음을, 이명박 후보자측 지지자들의 교만과 무례를 꼬집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정치판에서의 승자는 교만해야 하고, 승자는 전쟁의 전유물로 취득한 권한을 독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 독식이 민주주의적 절차에 부합하는 법의 허용이기 때문이다. 왜 죽어라고 싸워 이겼는가? 전리품을 독식하기 위해서 아닌가? 패자는 자신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깊이 되돌아보고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5년 후를 기약하는 것이 순리이다. 평창이 마치 다시 4년 후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고 밝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게 세상의 순리고, 그렇게 될 때 올바른 길로 세상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대자동차가 10년만에 노사분규 없이 임금협상에 합의하였다. 임금투쟁을 위해, 정치투쟁을 위해 지난 10년간 임금협상시마다 줄기차게 파업해온 그들의 모습에 국민이 지겹게 식상하고, 환멸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피부로 절감한 노조의 어쩔 수 없는 양보와 정몽구 회장의 횡령죄 등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앞둔 사업자측이 여론에 떠밀려 대폭적으로 노조 의견을 수용한 결과 빚어진 산물이다. 그렇지만 일단 무분규 합의에 대하여는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도 역시 지켜볼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로 끝날지 정말 다르네라고 평가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도 많이 속고 살다보니 신뢰가 좀처럼 생기지 않으니, 이 역시 한국병인가?


대통합민주신당의 예비경선주자들이 다섯 명으로 압축되었다. 왠지 그들이 어설퍼 보이는 건 이미 뚜벅뚜벅 큰 걸음을 내딛고 있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위상이 크게 대비되어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중 한 명의 후보자가 결정되면 또 상황은 달라지리라 본다. 그게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집단적 아우라에 익숙한 한국인의 내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바른 지도자가 한 명 나서는 것은 오합지졸의 군대를 정예강병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큰 힘이 있음을 안다. 진정한 지도자란 자기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사리사욕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오직 전체를 위해 전체를 조합하고 재편성하여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용병술의 귀재여야 한다. 아픈 곳을 보듬어 주고, 부족한 곳을 보충해 주며, 넘치는 곳을 조절할 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러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란다. 자기에게 패한 자를 감싸 안지 못하여 발목 잡혀 있는 어중간한 모습이 아닌, 단호하고 소신 있는 지도자를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프가니스탄 인질이 석방되자마자 한국 기독교계는 또 다시 위험한 지역에 대한 해외선교를 멈출 수 없다고 호언한다. 하나님, 아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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