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어디, 청소부 없어요?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어디, 청소부 없어요?
  • 법률저널
  • 승인 2007.08.31 11: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더위가 꺾일 줄 모른다. 엄청난 자연의 폭력 앞에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다. 냉방용가전제품이 날개 돋힌 듯 팔리고, 빙과류의 매상고가 천정부지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게릴라성 집중 호우는 우산장수를 살찌게 하고, 물난리를 겪는 사람을 양산하고 있다. 사시사철이 있는 우리나라는 자연 친화력이 높다. 더울 만하면 시원해지고, 시원해질 만하면 추워진다. 까닭에 사시사철 변하는 계절이 한편으로는 대단히 편리하기도 하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만큼 사람을 다양하게 성장시켜 세상을 복잡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계절과 사람의 성품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계절이 주위 환경을 결정하고, 주위 환경은 사람을 결정한다. 까닭에 사계절이 있는 우리는 열대지방이나 한대지방 사람들보다 사는 방식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사철의 옷을 갖추어야 하고 생활용품을 갖추어야 한다. 한 집에 냉방과 온방을 함께 시설해야 하니 건축비가 비싸게 들 수밖에 없다. 모든 조건이 좋은 반면 모든 조건이 나쁘다. 사람들의 심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열대지방 사람들은 조금은 게으른 편이다. 더위 앞에서 노동을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뜨거운 태양은 비를 몰고 오고, 풍부한 농작물의 재배를 가능하게 하여 의식주가 해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싼 모피 코트를 입고 폼을 잡아야 할 이유도 없고, 멋진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설쳐대야 할 이유도 별로 없다. 덥고 땀이 나기 때문이다. 가벼운 티나 남방 하나, 반바지 하나면 충분하다. 한대지방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겨울양식만 준비하여 칩거에 들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슨 욕심을 크게 부릴 필요가 없으니 여유롭게 사는 것인데, 우리 눈에는 게으른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편견이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신의 적 중 누가 가장 무서울까?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적이 가장 무서울 것이다. 어느 누가 공격해 오지도 않는데도 스스로의 자존을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공격하는 자는 필망한다. 도박에 미친 자, 알콜에 미친 자, 사이비 종교에 미친 자, 마약에 미친 자, 부정과 불의에 미친 자는 결단코 망하고 만다. 자기가 자신을 공격하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은 면역체계의 붕괴를 필연적으로 가져오고, 그러기에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다음 무서운 적은 내부의 적이다. 조금 전까지 자기편이던 자가 등을 돌리고, 동지의 등에 비수를 꽂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부의 적을 너무 많이 양산해 놓고 있다. 정치권이 그렇고, 노사관계가 그렇고, 학벌사회가 그렇고, 지나친 지역연고가 그렇다. 모두가 편을 갈라, 내 편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살벌한 세상에서 우리는 끼리끼리문화를 두려워하면서 흠모한다. 아니 맹신하면서 그 폐해 앞에 스스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왜 이렇게 혼탁할까? 2007년 8월의 마지막 날을 한 마디로 축약하라면 나는 어쩔 수 없이 “혼탁하다”라는 말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상생이라는 말은 구두탄일 뿐이다. 모두가 입으로는 상생과 화합을 부르짖으면서 호시탐탐 상대방의 숨통을 조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찾고 있다. 살쾡이 같다. 하이에나 같다. 국내문제만 보아도 그렇다. 이명박 후보로 확정된 한나라당 사람들은 여전히 편이 갈려있다. 지난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라고 멋진 제스처를 보였던 모습은 간 곳이 없다. 나는 마키아벨리주의자는 아니지만 정치는 잔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힘이기 때문이다. 승자의 포용과 아량은 패자를 승복시키기보다는 패자의 간덩어리만 키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승자는 독식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전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패자는 깨끗이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왜냐, 졌기 때문이다. 죄 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진 죄이다. 최종적으로 가장 무서운 적은 외부의 적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의 적, 아니 자기를 무너뜨리는 자기자신이 가장 무서운 적이겠지만, 진정으로 망하고 마는 것은 외부의 적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이다. 우리도 35년의 일제식민지배를 겪어보지 않았는가? 다 빼앗기고 만다. 그런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속을 좀 차리고, 서로 더불어 살아가야 할 것 아니겠는가마는, 언감생심, 그것은 다 쓸데없는 목마름일 뿐이다. 결국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무너뜨리고, 내부에서 서로 살생부를 만들다가 결국 외부의 적에게 목을 내놓은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민주신당의 경선을 지켜보면서 왜 저리 도토리 같은 사람들까지 다 나와서 설쳐대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기야 도토리도 도토리묵 만드는데 쓰이지 않느냐고 강변하면 할 말이 없지만, 어디 도토리묵만큼 제 몸도 못 이기는 놈이 있는가 말이다. 젓가락질을 하면 제 몸이 몇으로 갈라져 도통 저 놈 몸뚱아리는 왜 저 모양이냐는 핀잔을 듣기 십상밖에 더 되는가 말이다. 도토리묵은 주체성이 결여된 변종이 되기 십상이다.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가 곤두박질쳤다가를 반복하고, 전국토의 반을 태웠다는 그리스 산불은 폭염에 시달리는 우리를 겁먹게 한다. 탈레반에게 억류된 열아홉 명의 인질들이 석방된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지만,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손에는 무기가 쥐어져 있고, 이라크 저항군의 손에도 무기가 들려있다.


전쟁광들이 양산되고 피해자들도 양산되고 있다. 전쟁의 폐해는 적어도 3세대를 간다. 한 번 일으킨 전쟁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본인과 아들과 손자 세대를 거쳐야만 그 상흔이 치유되고 흔적이 사라지게 된다. 남북정상이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결국 전쟁의 후유증이 삼 세대 째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역사의 순리일 뿐이다.


사계절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우리, 내가 적이고, 내부가 적이고, 외부가 적이다. 모두가 적인 세상에서 평화와 상생, 절제와 관용의 덕을 부르짖는 건 무망한 일인가? 하늘이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진노하고 있는 것, 그 형태가 저렇게 무더운 폭염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구온난화의 뒤편에 있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모습, 욕심으로 덕지덕지 채워져 있는 인간들의 모습,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세상에 어디 멋진 청소부 없어요? 아, 아, 마이크 시험 중, 주민 여러분, 혼탁한 오늘, 집단분리수거가 이루어지거씁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