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와 로스쿨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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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와 로스쿨 도입
  • 이기수
  • 승인 2007.05.0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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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고려대 법대 교수/한국법학교수회 회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오랜 진통 끝에 타결되었다. 나는 한미 FTA 협상을 둘러싸고 노정된 사회갈등과 국론분열 현상을 우려의 눈길로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우려의 눈길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미 FTA에 대한 내 입장을 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국내 각종 뉴스 매체는 한미 FTA에 관한 보도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나는 도대체 한미 FTA가 체결되면 어떻게 된다는 건지 알기 위해서 관련 보도를 꼼꼼히 추적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내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한미 FTA가 체결되기까지 내 입장을 정립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뉴스 매체를 통해서 전해지는 보도만으로는 한미 FTA의 체결을 찬성해야 하는 건지, 반대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무리도 아닌 것이 한미 FTA가 체결되기까지 TV 뉴스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거라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이들의 격렬한 시위 모습과 우리나라와 미국을 오가며 협상에 임하는 우리나라 협상대표단의 결연한 표정뿐이었으니 말이다. 신문의 사설이나 시론이라는 것들도 대개가 찬성하는 이와 반대하는 이들의 신념이나 주장만이 실려있을 뿐, 그 신념이나 주장이 대체 어떤 구체적 사실이나 통계에 근거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데에는 인색했다. 겨우 근거를 대는 시늉을 하더라도 그저 자기에게 유리한 증거만 일방적으로 나열했을 뿐, 상대방 주장에 대한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반박 따위는 없었다. 어떤 뉴스 매체도 국민이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료나 통계를 제시하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한미 FTA는 체결되었다. 이제 각종 뉴스 매체는 한미 FTA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 각종 주장들을 경청하면서 나는 무슨 데자뷰 현상 같은 걸 체험하기 시작했다. 각종 뉴스 매체는 대처 방안에 대한 자기들의 신념이나 주장을 국민이 받아들일 것을 강요할 뿐, 국민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상세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려는 노력 따위는 도외시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는 한미 FTA로 우리나라 법률시장을 개방해야 할 터이니 법조계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로스쿨법안이 빨리 통과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보도가 신문지상과 TV 뉴스 프로그램에 연이어 나타났다. 로스쿨제도가 도입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법률시장은 국제경쟁력이 강한 미국의 대형 로펌들에 의해 정복될 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대형 로펌이 들어오는 법무서비스 분야는 어디일까. 아마도 기업 M&A 등 몇몇 특화 분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야는 우리 국민 대부분이 경험하는 법무서비스와는 관련이 없는 분야이다. 그렇다면 법무시장 개방에 대비해서 체질개선을 해야 할 분야가 있다면, 그건 기업 M&A 등 특화된 분야일 것이다. 그러니 한미 FTA로 인한 법무시장 개방에 앞서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요구하려면 그들 분야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국내 몇몇 대형 로펌들에게 주문할 일이지, 돌연 로스쿨제도의 도입 문제를 꺼낼 일이 아니다.

 

로스쿨법안의 조기 통과를 요구한 이들 보도들은 로스쿨제도의 도입이 우리나라 법률시장의 경쟁력을 제고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로스쿨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있지 못한 것은 지금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형태의 로스쿨제도가 과연 우리나라 법률시장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지에 대한 심각한 회의가 있기 때문이고, 로스쿨을 졸업하면 변호사자격증을 갖게되는 미국과는 달리 1200명 정도로 인원을 한정하여 변호사자격증을 주려고 하는 등의 문제가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서 대처 방안을 목소리 높여서 주장할 뿐이지만, 기실 문제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꼴이고, 문제를 잘못 파악하고 있으니, 내놓는 해결책도 엉뚱한 것이다.


로스쿨법안의 조기 통과를 촉구하는 일련의 보도들을 접하면서 혹시 다른 분야에서도 객관적 자료와 통계를 무시한 채, 저런 일방적인 신념과 주장에 기초한 처방들이 난무하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가 나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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