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야만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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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야만의 시대
  • 정재웅
  • 승인 2007.04.2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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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웅 변호사/대구지방변호사회


2~3년 전부터 형사사건에 있어서 항소가 남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온정적 이유 등에서 항소심에서 2개월이나 6개월을 감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원심파기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자제하라는 대법원 지침이 있어왔고, 이러한 추세는 대법원의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형사 항소심 사건에서 원심파기판결을 받는 경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게 되었고, 항소심은 변호사 및 피고인들의 무덤이 되어왔다.


이런데다가 최근에는 대법원 지침이 ‘원칙적 항소기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필자는 그 이유와 근거가 피고인들의 항소심에 대한 감형의 기대치를 낮춤으로 써 항소방지효과를 가져오고, 온정적 일부 감형으로 인하여 법원과 변호사가 유착할 가능성이 높아 이러한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사법청결성을 유지하는 것 등으로 생각한다.

 
첫째, 이러한 항소심에서 원심파기를 실질적으로 제한한 이러한 지침은 헌법 제103조의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는 법관의 독립성, 헌법 제101조의 심급주의, 형사소송법 제338조의 피고인의 상소권보장과 동법 제368조의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 등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제반 헌법, 법률규정에 어긋나는 지침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대법원의 재판제도의 합리화 과정을 위한 제도정비라는 측면에서 원칙적으로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법원의 조치는 그러한 조치로 가져올 사법 시스템의 운영절차의 실태나 결과에 눈감은 사법행정의 편의에 치중한 지극히 관료적인 조치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원칙적 항소기각의 훈령(?)에 의해 재판한다면 심금제도를 껍데기로 만들고 항소심을 통과의례로 만들 우려가 있고, 원심 판결 이후 시간의 경과로 인한 사정변경의 경우만을 판단해 주는 실질적 ‘사후심제도’로 운용되는 결과가 되어 군법회의에서만 가능한 단심제로 운영될 위험이 있다.


한편, 피고인 측으로서는 항소기각의 위험에 직면하는 반면 검사가 항소한 부분에 대해서 검사의 주장이 인정되는 경우 형이 더 올라갈 우려가 있어 불이익금지의 원칙도 사실상 침해될 위험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절차적인 이유 이외 운영실태를 보더라도 기존의 원심파기 자제 지침만으로도 일파 만파를 이루어 항소심 형해화가 초래되어 왔는데, 더욱 강화된 대법원지침으로 마지막 남은 싹을 자른 느낌이고, 15라운드에 와서 거의 패색이 짙은 권투선수에게 마지막 케이오 펀치를 날린 느낌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항소심 판사가 파기사유가 상당하더라도 명백한 파기사유가 있는 이외는 편의적으로 항소기각 판결을 선고할 가능성이 많아졌고, 피고인의 항소의지를 꺽어 항소율을 줄이겠다는 것도 지극히 위험천만할 뿐만 아니라, 항소기각률이 높다고 항소가 줄어들 것이라는 것은 실정에 맞지 않는 어이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둘째로, 지금 법원은 구술변론주의를 도입하여 최대한 피고인의 진술권을 확보해주고 있는 경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이는 겉으로는 최대한 자유로운 주장을 하라고 해 놓고서는 이면에서는 실질적 재판결과에 반영시키는 것은 항소심에서만은 일정하게 제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셈이어서 구술변론주의를 표리부동한 이율배반적인 제도로 전락시키고 있다.


셋째로, 이는 일제 강점기 이후 점차적이고 꾸준하게 발전된 법원 및 사회의 최근의 민주화경향에도 배치되고, 엄격한 법해석을 통해 집행유예기간 중인 피고인에 대해 집행유예가 가능하다는 획기적인 판례를 정착시키기에까지 이르고 있는 판례상의 피고인 인권보호경향과도 역행되는 것이다.


실질적 재판에서 단기간의 감형을 받는 다는 것은 막상 구금이 되어 있는 피고인으로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그러한 기회를 사실상 박탈하는 대법원의 지침은 철회되어야 한다. 물론 항소했으니까 얼마간이라도 형량을 내려 주어야 한다는 온정적 의미에서 감형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이유도 없지만, 항소심이 좀 더 열린 재판의 장으로 원심에서 못다한 주장, 증거 등이 자유롭게 제출되고 일응 원심재판결과가 깊이 있게 고려되지만 항소심 법원의 고유한 재판진행과 판단에서 나온 ‘지침에서 자유로이’ 법관이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항소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현 상황에서 우선 남상소 방지, 사법청결성 유지 등 다급한 문제가 해결된다는 의미에서 원칙적 항소기각이 계속 추진된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듯이 남상소 방지란 핑계로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 자체를 침해했고, 사법행정 편의를 위해 수많은 피고인의 권리를 향한 소리없는 아우성을 외면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먼 훗날 아니 10년 혹은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 시대를 돌아볼 때 사법야만의 시대로 기억될까 두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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