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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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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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3.0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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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IT와 2진법

 

정보통신부가 지난 달 27일 발표한 “IT기술수요 2020”을 보면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가상세계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이 산ㆍ학ㆍ연 전문가 3500명을 참여시켜 선정한 내용에 따르면, 2012년에 한 번의 충전으로 휴대전화를 두 달 가까이 사용할 수 있고, 신체상황인식시스템이 건강상태를 자동으로 평가해 피로가 쌓였음을 알려줘 건강관리를 할 수 있게 되고, 의대생들이 가상수술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해부학실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2014년에는 안경 없이 보는 3차원 영상을 볼 수 있게 되고, 2015년에는 홈쇼핑이나 티브이 광고에서 냄새를 전달할 수 있게 되고, 방탄 및 방수 기능을 갖춘 디지털 군복이 주변 상황에 따라 색깔이 자동으로 변해 은폐기능이 강화될 뿐만 아니라 부상을 당하게 되면 자동지혈까지 해주고, 고분자 인공근육에 탄소 등을 주입한 후 약간의 전기를 투여해 사람의 정상적인 근육보다 15배나 강한 초능력도 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IT기술이 실용화되면 우리 모두는 말 그대로 수퍼맨이 될 수 있게 된다. 점핑력이 향상되어 건물을 뛰어넘을 수도 있게 될 것이고, 눈의 투시력이 향상되어 사람의 알몸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이 일상화될지도 모른다. 모두가 터미네이터가 되거나 IT 솔져가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발표를 보면서 왠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러한 디지털 문명의 발달에 발맞춰 우리의 아날로그 의식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지나친 편리함의 추구에 의해 그렇지 않아도 과도한 문명의 발달로 혼돈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더더욱 혼란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사이버 보그도 탄생하게 될 것이고, 인간의 뇌를 지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장착된 칩 하나를 사람의 몸에 삽입함으로써 그 사람을 평생 노리개나 노예처럼 부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초능력 근육을 부착한 범죄자들의 극성이 더욱 심해질지도 모른다. 전반적으로 인간의 힘을 향상시킬 수 있는, 조작기능을 지배하게 되는 자는 그렇지 못한 자를 지금보다 더욱 강한 통제력으로 통제하게 될 것이고, 이 세상은 몇 몇 통제자들의 천국이 될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영화 아일랜드에서 우려했던 현상이 펼쳐져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사람의 생명조차도 인위적으로 처리되는 삭막한 세상이 오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밀조밀한 IT기술이 접목된 극소형 무기들이 대량으로 개발될 것이다. 파리만한 크기의 초정밀 날틀이 적진을 교란할 것이고, 레이저 살인광선을 쏘아대며 요인을 암살할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의 안방에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이동용 도청장치 뿐만 아니라 카메라가 침투하여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하여 인공위성으로 전세계에 생중계할지도 모르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사생활은 이미 사생활로서의 보호가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티브이 광고에서 향기가 전달된다면 우리의 식욕을 자극하여 시도 때도 없이 음식 먹기를 은연중 강요당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비만인구가 더 늘어나 의료체계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이 정도의 단계에 이르면 사람의 자연적 노동력은 의미를 상실하여 모든 것이 단추 하나를 누름으로써 해결이 되어버린다면, 인간이 땀 흘려 땅을 파야 하는 수고가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학생들의 공부 역시 칩 하나만 몸에 장착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이해하고 암기하는 공부가 무의미하게 될지도 모른다.


IT를 외면한 모든 문명은 장차 설 자리를 잃게 될지 모른다. 단순한 0과 1의 교합에 의한 2진법이 10진법의 세상을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겨우 시간의 계산에만 적용되고 있는 60진법을 무너뜨린 10진법이 수천 년 그 명맥을 이어온 것에 비하면 너무나 빠른 속도의 변화이다. 불과 30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2진법은 세상을 완전하게 바꾸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허둥거리다가 자아를 상실한 채 정신병자들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주체가 되지 못한 채 IT의 객체가 되어 끝없이 농락당하다가 폐기처분될지도 모른다. 시계가 일 분, 한 시간을 가기 위해서는 60개의 점을 지나야 하는 여유가 있다. 아니 10진법만 하더라도 한 단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열이라는 여유가 있다. 하지만 2진법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로 하여금 사색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예스 아니면 노의 대답을 요구한다. 그 앞에 망설임이 허용되지 않는다. 인문학에서 문ㆍ사ㆍ철이 위기라고 한다. 문학과 사학 및 철학이 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디지털 세상에서 어찌할 수 없는 하나의 현상일지도 모른다. 0과 1을 오가는 자들에게 철학적 사색을 어찌 요구할 수 있으며, 어찌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으라고 권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수천 년 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선조들의 정신을 되돌아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번개처럼 지나가는 0과 1의 천태만상의 교합 속에서 과거가 무의미하고, 사색이 무가치하며, 정신적 방황이 사치에 불과하다는 항변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디지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이를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정신적 사유를 넓혀나가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들이 인문학적 사랑과 사상의 소유자가 될 수 있도록 학계와 경제계들과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현실은 디지털에서 살더라도 가슴과 머리는 아날로그의 인간미를 잃지 않도록 혁신적인 프로그램의 개발에 앞장서야 한다. 종교계도 앞장서서 자성해야 하고, 종교지도자들의 이권을 위한 투쟁에 몰입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어쩌면 신의 영역조차 대신하려고 하는 과학문명의 거대한 포효 앞에 속수무책으로 인류를 방치해서는 아니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끝을 모르고 발전해 나가는 과학문명의 종말이 나는 두렵다. 언젠가는 신이 되어 버린 과학문명이 한 번쯤은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인간을 멸망시킬 것이 틀림없기에, 인간들이 스스로 만든 과학문명이라는 신을 통해 인간 종말의 심판을 받을 것이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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