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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률저널
  • 승인 2007.02.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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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누가 담배를 피우라 권했었나? 위자료!

 

지난 20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45년간 담배를 피운 것이 원인이 되어 폐암으로 제시 윌리암스라는 사람이 숨졌다며 그의 유족이 필립모리스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징벌적 위자료 청구소송을 5대4 의견으로 기각하였다. 제시 윌리엄스의 유족은 45년간 말버러 담배를 매일 두 갑씩 피운 결과 폐암에 걸렸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여 1차로 82만 달러의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오리건주 배상금 제한 규정은 위자료로 52만 달러만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돈만을 받은 후, 다시 1999년에 징벌적 배상금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오리건주대법원은 유족들에게 7,95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징벌적 배상판결을 내렸으나, 종래 흡연으로 인한 폐암환자에게 징벌적 배상금 청구 소송을 인용해 왔던 연방 대법원이 종래의 판결을 번복해 버린 것이다. 징벌적 배상금은 기업이 고의적이고 무모한 위반행위를 범했을 경우 일반적인 손해배상금 이외에 추가로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기업이 악의적으로 나쁜 결과가 나올 것을 예상하면서도 기업의 이익을 위해 그러한 행위를 감히 한 것에 대한 도덕적, 법률적 책임을 묻는 제도이다. 주로 식품이나 의약품 또는 기호품 등을 장기간 이용한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을 구제해주기 위한 제도로 기업들로서는 이러한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기업의 사활이 걸릴 정도로 심대한 타격을 받기 때문에 기업의 잘못된 행동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사회예방적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최근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7년 동안 끌어온 소위 담배소송에서 흡연자측에 패소판결을 내렸다. 흡연이 폐암의 직접적인 발병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곤란하다는 이유가 패소판결의 주된 내용이었다. 피해자측에서는 미국에서 주로 인용된 수많은 담배소송판결들을 참고자료로 제출하기도 하였지만, 원심에서는 이를 인용하지 않았던 것인데, 위 기각 판결에 대하여 피해자측에서는 항소하였지만 위 미국의 판결번복으로 항소심에서도 어려운 소송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사회는 대단히 체면을 중시한다. 예의와 염치를 중시해온 유교문화는 허례와 허식에 치우친 과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사회를 순기능으로 지배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국민들의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국민교육헌장이 그리도 부르짖었던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도록 교육받아온 까닭에서인지 모두들 실리추구에 매진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직업의 귀천이 없어졌고, 신분의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양극화로 인한 새로운 신분계급과 사회계층이 자본주의의 부정적 속성을 근저에 깔고 잉태되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양극화 속에서 정치권을 비롯하여, 노동계, 교육계, 문화예술계 등등 사회각계전반에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절제와 상호타협을 통해 해결하기 보다는 자기  주장만이 옳다는 이전투구식 투쟁양상으로 발전하면서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폭력에 대한 억제력으로의 사회의 공권력 행사조차 무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각한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잘못된 문제해결, 즉 언어폭력이나 물리적 폭력에 의한 사회질서파괴행동에 대하여는 사법부가 적정한 위자료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폭력이나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은 경우에도 법원에서는 약 6천만 원 정도의 위자료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도 나이에 따라 금액이 감액되기도 한다. 십 수 년 혼인생활을 하다가 이혼을 하는 경우에도 위자료로 기껏해야 3천만 원 정도가 인정될 뿐이다. 불법폭력에 의해 상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인정되는 위자료도 불과 몇 백만 원에 불과하고, 정신적 쇼크로 인해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만드는 언어폭력에 대하여도 불과 1,2백만 원에 불과한 위자료를 인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력통신사가 고객들의 신용정보를 부당유출한 사건에서 피해자 1인에게 인정한 위자료는 10만 원 정도였다. 이처럼 법원에서 인정하는 위자료가 현실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인색하다 보니 사람들이 사소한 법을 위반하는 것에서부터 중대한 잘못을 범하고서도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 증상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질서를 위반한 경우에 엄격한 제재가 가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제재가 경미하고 미온적이다 보니 별로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위자료를 통한 사법적 규제 이외에도 형사적 처벌을 통한 공법적 규제도 피고인에 대한 불구속재판이 확대되고, 그 경우 대부분 집행유예로 석방되기 때문에 체감적 징벌의 강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민들이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두는 것은 돈이다. 즉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갈 때 국민들은 피해에 대한 체감강도가 가장 높아진다. 경제적 제재를 통한 징벌에 대하여 치사하게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이 무식하다거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가져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돈이 많은 사람들의 법경시풍조를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일면 그러한 비판도 타당하다. 그렇지만 어설픈 집행유예보다는 잘못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가할 수 있는 벌금형이나, 사소한 욕설이나 폭력에 대하여도 그러한 행동을 제재시킬 수 있을만한 위자료 인정을 통해 모든 국민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학습을 기할 수 있고, 이러한 학습은 전반적으로 사회를 순화하고 부드럽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적 안정감이 어디보다 높은 서유럽의 경우 대부분 이러한 법치주의를 통해 사회적 질서의 기틀을 다졌고, 어설픈 인간미에 의존하는 것보다 법적으로 절제된 상호존중을 통해 오히려 사회적 따스함을 유지하는 사회로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다.


45년간 담배를 시도 때도 없이 무작정 피워대며 담배연기를 내뿜어 비흡연가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을까? 타인에 대해 수많은 고통을 준 사실에 대하여는 일체 침묵인 채 결과론적으로 담배 때문에 폐암이 걸렸다며 징벌적 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음이 신기할 뿐이다. 누가 담배를 피우라고 권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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