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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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1.2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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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순진한 역사, 낙선전에 걸린 달러

 

지금 유럽여행 중이다. 유로달러의 환율이 미국달러에 비해 인상되고 있지만, 원화 평가절상에 따른 효과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20만여 점의 미술품 앞에서 할 말을 잊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하여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등 수많은 명화 앞에서 눈이 포식하였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 많은 유화들을 스치듯이 구경하면서 자꾸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빈틈없는 유화의 밀도 앞에서 서서히 질리기 시작하면서 왠지 모르게 수묵화의 여유로움이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동양산수화에서 느껴지는 여백의 미학이 새삼 멋스럽구나 하는 생각을 한없이 하게 된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수많은 미술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이를 모으기 위한 그들의 노력 앞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중 상당수는 무력침탈에 의한 강탈이었으려니 하는 생각 앞에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앞에서, 여행오기 직전에 있었던 한국미술협회의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상비리가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미술협회장과 심사위원들의 제자와 친척 등이 1차 심사에서 낙선한 후 2차 심사에서 특선작으로 둔갑되고, 출품자격이 없는 자들에 대해서도 상이 주어지는 등 온갖 비리로 말썽이 많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여행을 떠나와서일까? 마네는 1863년에 풀밭 위의 점심을 살롱에 출품하였다가 낙선된 후 같은 해 낙선전에 출품하여 비난과 조소를 받았다. 마치 우리나라 미술계가 오래전 지금의 대한민국미술대전과 같은 선전에 미술작품을 내지 않고 별도의 발표전을 가졌던 것처럼 마네의 낙선전 출품도 부정으로 얽힌 살롱을 비난하기 위해 이루어졌던 것이니 어디를 막론하고 미꾸라지 몇 마리가 우물을 더럽히는 현상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올바르게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그 앞에 선한 자들이 통탄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고,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그게 한 치 앞을 제대로 내다볼 줄 모르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이기도 하겠지만, 진정한 실력을 가진 수많은 예술가들이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극은 어찌할 수 없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이라는 작품을 발표하였을 당시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맹렬한 비난과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나무가 우거진 풀밭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강렬한 빛의 대비 속에서 누부의 여인과 근엄한 양복을 걸친 한 남자가 점심을 먹고 있는 장면을 통해 마네는 겉으로만 근엄한 척 하며 규범 속에 위장된 삶을 사는 당세의 사회전반을 꼬집고자 했다고 한다. 인상주의가 탄생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든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나체의 여인 옆에 옷을 입은 남성을 배치한 극단적인 발상의 전환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전혀 알아주지 않던, 아니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었던 위 작품이 지금은 인상파 최고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니, 이 역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막말로 빽 없고 돈 없어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낙선자들의 작품 중에서도 먼 훗날 제대로 평가받는 훌륭한 미술작품이 나오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역사는 참으로 순진한 것이니까, 잔인한 역사를 만드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순진한 역사는 언제나 바로잡으니까, 다만 시간이 오래 걸려서 문제이지만.


유럽여행 중 다시 한 번 미국달러의 약세를 실감한다. 우리 원화의 평가절상을 통해 돈의 가치가 제법 묵직하게 느껴져 오니 내심으로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세계최대외환보유국가인 중국은 드디어 1조 달러가 넘는 달러를 보유하게 되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약 30% 이상 외환보유고가 늘었다니 미국이 엔간히 달러를 찍어낸 모양이다. 우리나라도 외환보유고가 3천만 달러에 이르러 국내에서 100억 달러 이상의 해외유출이 예상되는, 3년간 한시적이지만 세금면제를 통한 해외펀드의 활성화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재경부의 발표가 나왔지만, 중국은 넘쳐나는 달러에 대한 수익극대화 및 다변화를 위해 국영투자기관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금융개혁을 단행 중이다.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중국, 공산주의국가였기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기필코 망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서방자본주의국가들, 특히 미국은 지금 자기들 돈을 1조 달러가 넘도록 금고에 보관하고 있는 중국 앞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으니 참으로 역사는 재미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구소련 연방의 붕괴로 한때 힘을 쓰지 못했던 러시아조차 막대한 석유수출자금을 기반으로 이제 기사회생하여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건지 오래되었고, 미국은 아직은 강대국이지만 점차 그 발언권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여전히 세계경찰국가로서의 힘을 상실하고 있지 않지만, 계속되는 이라크 전쟁에 발목을 붙잡힌 채 자국 병사가 3천명이 넘게 전사하였음에도 여전히 전쟁은 끝날 줄 모르고, 2만 명의 병력을 증파하겠다고 부시는 발표하였지만,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반발은 물론이고 같은 당인 공화당 일부 의원들의 반발 앞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어떻게 하면 국민을 잘 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의 차이일 뿐 선악의 문제가 아님에도 우리는 지난 50여년 이를 선악의 문제로 인식하게끔 세뇌되어 왔다. 그렇지만 이제 국민들은 그런 세뇌된 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으니, 이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좌우이념대립의 시대를 극복하고 실물경제에 정통한 추진력 있는 실물가에 대한 선호와 공산주의국가였던 중국과 소련이 잘 살게끔 부자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부자가 망해도 삼대가 먹을 것은 있다는 옛말처럼 아직은 부자나라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서서히 자체적인 내부모순이 분출되고 있는 미국에 크로즈업되어 오는 것은 달러를 직접 쓰고 있는 데에서 오는 실감일까?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셀 수 없는 유화들 사이로 빛 하나 스며나오고 있다, 아, 수묵산수화의 은근함이여, 여유로움이여, 순진한 역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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