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개방과 고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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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시장개방과 고시제도
  • 서헌제
  • 승인 2001.09.1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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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를 겪고난 후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라고 한다면 우리의 모든 법과  제도를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되게 바꾸어가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세계화 국제화의 추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가부도의 위기상황에서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지켜오던 모든 기준과 제도들이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제는  각 분야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식 가치체계와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세종대왕께서 들으면 기절초풍할 소리도 버젓이 논의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법제도와 고시제도라고 그 예외일 수는 없으며 가까운 시일내에  법률시장개방과 영미식 사법제도로의 변화가 가시화될 것을 예상된다. 이는 이미 세계법률시장에서 미국식 사법제도의 우위가 증명되어 독일,  프랑스등 대륙법계의 종주국에서도 미국의 로펌들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면에서 가장 완고한 일본에서 조차 미국식 로펌과 로스쿨제도의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유독 한국만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법률시장이 폐쇄되어 있다. 즉 한국의 법률시장의 개방은 UR협상과 OECD가입협상을 거치면서 사법시험 응시자격으로서의 국적요건을 삭제한 것을 제외한다면 거의 완전무결하게 폐쇄되어 각국의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러나 IMF 사태로 인해 금융시장등 종래 폐쇄적인 한국의 서비스시장이 전면적인 개방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법률서비스시장에도 개방의 바람을 불어올 것으로 예견된다. 이는 외국인투자의 유입은 외국기업의 국내활동의 증대를 의미하고, 그에 따른 법률서비스시장의 개방요구가 한층 거세어 질 것으로 예견되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현황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WTO와 OECD등을 중심으로 변호사업을 포함한 전문사업서비스시장의 개방이 추진되고 있다. 이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각 회원국의 전문가 내지는 전문 사무소등을 다국적기업이 자유롭게 상호 출입하고 현지의 변호사나 전문가를 파트너나 고용인으로 하여 자국에서와 동일하게 자유롭게 활동하는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데 있다. 또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전문직의 자격자체를 완전히 상호 승인하려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능력있는 전문가에게 자유롭고 글로벌한 활동의 장을 보장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경영의 형태가 많은 자유직업서비스를 국제적인 경쟁에 몰아넣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법률시장개방에 대하여는 영미법계의 국가와 대륙법계, 특히 일본 및 한국은 근본적인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법률서비스의 공공성을 중시하고 서비스제공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일본과 한국에서는 서비스제공 형태가 기본적으로는 개인 사무소를 중심으로한 송무에 집중되고 있지만,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성을 일찌기 터득한 영미법계에서는 고도의 집단화, 기업화가 이루어졌다. 특히 세계최대의 로펌으로 간주되는 미국의 Baker & Mckenzie는 총 고용변호사수가 2,000명을 넘고 있으며 세계 10대 로펌의 대부분은 영미계통이다. 이들은 이러한 막강한 규모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법률시장의 상당부분을 잠식하고 있으며 한국도 그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우리나라도 수년내에 적어도 일본 정도의 개방은 불가피하며 결국은 전면적인 개방으로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률서비스시장 개방의 쟁점

 

이러한 국제화의 물결에 속에서 세계각국의 법률서비스시장은 빠른 속도로 개방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법조계를 중심으로 개방불가론을 고수하고  있다. 법률서비스시장 개방 불가론은 법률서비스의 공공성 훼손, 법조인양성제도의  왜곡, 법률서비스산업의 예속화, 국내기업정보의 해외유출위험 등을 근거로 하고 있다.

 

1. 법률서비스의 공공성 문제


변호사법 제1조와 제2조는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그 직무를 행한다”라고 규정하고 변호사의 사명이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변호사업무의 공공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러한 취지에서 법조사 양성수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법률서비스시장이 개방되어 외국의 변호사가 국내변호사와 경쟁하게 되면, 경제논리에 입각한 사건 수임경쟁이 벌어져 공공적 성격이 강한 우리의 법조윤리가 훼손될 우려가 크다고 한다. 이러한 법조의 공공성이 훼손되면 이를 기초로 짜여져 있는 우리의 사법제도 전반이 흔들리며 법치주의의 근간도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 개방불가론의 요지이다.    
우리나라가 속해 있는 대륙법계국가의 변호사제도는 서비스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상업주의적인 직업관을 가지고 있는 영미의 변호사제도와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미의 변호사들은 철저한 경쟁을 통하여 서비스정신을 발휘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의 서비스의 질은 오히려 대륙법계 국가의 변호사보다 높다고 한다. 나아가 동일한 대륙법계국가인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에도 법률서비스시장이 개방되어 많은 외국변호사들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 때문에 법률서비스의 공공성이 훼손되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폐쇄적인 독점시장하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많은 법조비리가 불거지고 있다. 이종기 변호사 사건의 예에서도 보듯이 변호사와 판사의 유착이라든가 전관예우의 폐습, 사건부로커의 고용 등은 법률서비스의 공공성을 앞세우는 우리나라의 변호사제도가 얼마나 공공성과는 거리가 먼 서비스를 제공하는가를 알수 있다.
따라서 공공성을 근거로 한 개방불가론은 폐쇄적인 독점시장을 유지하고자 하는 기득권보호논리가 근저에 갈려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하겠다. 오히려 법률서비스시장을 개방함으로서 철저하게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한 외국변호사들과의 경쟁을 통하여 법률서비스를 향상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2. 법조인 양성제도의 왜곡 문제


법률시장개방 불가론의 두번째 근거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법조인양성제도의 유지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좁은 사법시험제도를 유지함으로써 극소수의 인원만 선발하고 있으며 선발된 인원에 대하여는 2년의 사업연수원 과정을 이수하게 함으로써 법조인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법률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외국에서 자격을 용이하게 취득한 자가 이를 근거로 국내에서 변호사업무를 수행하게 되면 우리의 법조인양성제도 자체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1년에 약 3만5천명의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으며 상당수의 한국인 2세라든가 유학생들이 미국변호사자격을 취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변호사시장을 개방하게 되면 이러한 질낮은 변호사들의  유입으로 인해 법조인양성제도가 의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의 법조인양성제도가 최선이라는 전제하에서만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전체 응시생중의 불과 1~2%의 내외의 합격자에 대하여만 법조인자격을 부여하고 법과대학 졸업생들의 대부분을 비법률전문가로 만드는 현행 법조인 양성제도가 과연 그렇게 고수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나아가 사법연수원도 하루빨리 청산되지 않으면 안되는 대표적인 불합리한 제도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사법연수원 졸업생중 일부분만 법관이나 검사로 임용되며 나머지 대부분은 변호사로서 개인적인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되는데, 이들에게 준공무원의 신분과 급여를 주고 교육비를 국가가 전부 부담하는 것은 국민세금의 유용이고 조세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따라서 잘못된 법조인 양성제도의 유지를 위해 법률시장개방이 불가하다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3. 법률서비스산업의 예속화 문제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현재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영세한 법률서비스인력이나 제공구조로부터 볼 때 외국법률사무소 등에 예속될 우려가 많다는 것이 개방불가론의 중요한 논거가 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변호사수를 모두 합쳐도 약 4,000명도 채 안되는데 앞에서 본 바와같이 1,000명 이상의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는 미국의 대형로펌들이 부지기수이다. 특히 이들은 세계 각국의 중요한 경제중심지에 지사를 설치하여 글로벌화 된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많은 기업컨설팅 결과 전문 분야별로 노하우가 이미 축적된 상황이다. 따라서 이들이 이러한 대형조직과 전문인력 및 경험들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법무분야에 진출할 경우 우리의 영세한 수준으로 경쟁하기에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아가 국내변호사와의 동업이나 고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개방이 이루어지면 전통적인 국내송무 분야에서도 외국변호사의 시장잠식이 상당부분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외국의 대형 변호사사무소들이 국내변호사를 고용하거나 동업형식으로 하여 국내 송무를 이들에게 맡기게 되면 외국 로펌들의 송무분야 진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규모가 큰 송무사건은 대부분 기업의 법률자문과 관련성을 가지기 때문에 대형 외국계 로펌들은 법률자문시장에서 확보한 우위를 바탕으로 하여 송무시장도 석권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IMF 사태로 인해 외국인들의 국내기업에 대한 지분율이 늘어나거나 국내기업을 인수하는 경우가 대폭적으로 증대할 것으로 예상되는바 이들은 대부분 자국변호사들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에 법률시장의 잠식정도는 더욱 커질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개방에 따르는 불기피한 영향라고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개방의 피해를 사전에 줄이고 대비하기 위하여도 하루 빨리 극심한 진입제한장치로 작용하고 있는 사법시험 인원수를 국내수요에 맞게 대폭적으로 증대하고 이들간의 경쟁을 통하여 국제경쟁력을 배양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4. 국내기업정보의 해외유출 문제


기업에 대한 법률자문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변호사들은 기업의 비밀을 많이 알게되는데, 외국변호사들이 국내에 진출하게 되면 이러한 기업비밀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법률시장개방으로 이러한 가능성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법률시장개방뿐 아니라 우리경제의 개방화 세계화의 과정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부딪치는 문제이다. IMF 사태 이후 많은 외국자본이 국내기업에 자본 참여하거나 아예 기업을 매수하는 경우도 증대하고 있다. 또 외국인투자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제한을 철폐하여 국가 기간산업인 포철, 한전 등도 해외 매각을 고려하고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국내주요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경영참여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변호사들을 통한 기업정보의 유출을 걱정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기업비밀의 유지는 기업의 자체적인 노력과 판단에 맡겨야 할 문제이며 이를 이유로 한 시장개방불가는 설득력이 없다고 하겠다. 

이상 간단히 살펴본 대로 법률시장개방은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를 막아보려거나 개방의 속도를  늦추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개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개방의 환경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국내적으로는 법치주의를 앞당기고 능력있는 법률가를 양성하여 국제적인 경쟁에서 이길수 있는 사법제도와 법조인양성제도가 시급하다. 이를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사법시험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여 ‘시험을 통한 선발’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법률가 충원제도의 근본적인 방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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