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판사 2년차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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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판사 2년차를 마치며
  • 정현숙
  • 승인 2006.12.29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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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부산지법 예비판사

 

예비판사 2년차였던 2006년은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보냈던 해였습니다. 1년 동안 형사재판을 하면서 참 많이 고민하고 또 괴로워했었던 거 같습니다.


죄수복에 수갑을 차고 앉아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엄청난 부담이었고 그네들의 살아온 역사가 구구절절한 아픔이 묻어 있으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쏟아져 나오고, 법정에서 잘못했다면서 피고인이 고개 숙여 울고 방청석에 앉은 가족들도 같이 울면 저 역시 울음을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들에게 당한 피해자를 생각하자’하면서 혼잣말을 되뇌이기도 하고, 눈에 힘을 꽉 주기도 해보고 여하튼 안간힘을 다 썼드랬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그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범죄하고, 처벌받고, 또 범죄하고, 구속되고 처벌받고...


어떨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저 사람들은 내가 안타까워하는 것만큼 자신의 삶에 별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로 들어와 조선사람들을 바라보며 썼던 언더우드의 일기 속,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는 고백처럼...


자신의 삶을 저렇게 허무하게 살아버리는 사람들이 안타까웠고 그들이 삶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든 이 사회 구조도 원망스러웠습니다.


물론 뭐 저런 못된 인간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나쁜 사람들-자기들이 받아야 할 응당의 벌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재판하기도 편합니다-도 많이 보았고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들도 많이 다루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친딸을 수년에 걸쳐 강간하고 추행했던 사건, 돈 몇십만 원 뺏을려고 어린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아버지의 심장에 칼을 꽂아 죽였던 사건, 현직 경찰관이 내연녀와 말다툼 끝에 자신들이 타고 있던 자동차에 불을 붙여 내연녀를 소사케 한 사건, 오랜 세월 계속되었던 남편의 폭행을 참다못해 남편을 칼로 찔러 죽인 사건...


이런 사건들은 대부분 시신을 부검하게 되고 부검사진이 기록에 첨부되어 옵니다. 처음 형사재판하면서 멋도 모르고 기록을 넘기다가 그 부분 사진을 보고 기겁을 하고 난 뒤 강력사건들이 오면 목록을 보고 부검 사진 페이지를 먼저 확인한 뒤 그 부분은 조심스럽게 넘어가는 습관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엔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정에서 멀쩡히 살아서 잘못했다고 눈물짓는 피고인들을 보면서는 이렇게 같이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하면서 그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모습은 이렇게 외면해도 되는 것인가...


그런 마음이 들자 피해자들의 사진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진들을 들쳐보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보고 나면 마음이 좋지 않고 기분도 나빠지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형사판사로써 마땅한 것이라고 나 자신을 격려하면서 기록을 보다보니 지금은 많이 담대해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내가 형사판사가 되어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대견해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비판사 2년차의 시간들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저도 ‘예비’자 떼고 판결문에 제 이름 석자 쓰고 제 도장 꾹 눌러 찍을 날이 멀지 않았네요.


시간이 정말 화살과 같이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눈이 내려 꽁꽁 얼어붙었던 신림동 거리를두 다리에 힘 꽉 주어 걸을 때 느껴지던 발밑의 미끄러움과 귀밑에 스치던 차가운 바람, 밤마다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독서실에서 내 방으로 향하던 처량했던 발걸음이 아직도 분명히 느껴지는데 말입니다.


신림동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실 많은 분들...모두 힘내십시오.


푸른 하늘 바라보며 큰소리로 웃게 될 날들이 반드시 올겁니다.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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