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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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2.2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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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정신승리, 한 해를 마감하며

 

제럴드 포드 전 미국대통령이 93세의 나이로 지난 26일 타계하였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 대통령의 후임으로 부통령에서 선거 없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운 좋은 사나이였다. 특이한 것은 1973년도에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의 사임으로 공화당 하원의원이던 그가 그 부통령 자리마저도 승계받았다는 점이다. 부통령과 대통령이라는 중대한 직위를  모두  선거를 치루지 않고 전임자의 사임이나 사망으로 물려받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1976년에 치러진 지미 카터와의 대선전에서 패배함으로써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으니, 그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운이 나쁜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럴드 포드는 닉슨 대통령의 후임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하자마자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 등 범죄행위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여 자신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준 전임자에게 보은함으로써 국민 여론을 악화시키더니, 행정부의 요직을 강성인사들로 바꾸는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하여 할로윈의 대학살이라는 언론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당시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어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국방장관이던 제임스 슐레징거 등을 각각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브렌트 스크로포드,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딕 체니 부통령 등으로 물갈이 인사를 통해 현재의 조지 부시 대통령의 행정부를 구성하는 인적자원에 대한 밑거름을 제공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재직 중 인플레이션이 극심하여 국가경제가 어렵게 되자 미국민들로 하여금 “인플레를 퇴치하자”라는 배지를 달고 다니도록 하기도 하였으니 재임 중 경제나 정치 등 별로 커다란 치적을 내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1974년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당시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유신정권의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함으로써 유신체제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선고가 이라크 최고재판소의 판결로 확정되었다. 이라크 법에 의하면 30일 이내에 사형이 집행될 것이라고 한다. 이라크 대통령과 부통령의 제가를 받아 집행될 것이 예상되지만, 이라크 사법부는 대통령의 서명 없이도 사법절차에 따라 30일 이내에 사형을 집행할 수도 있다고 하니 실제 집행될지 지켜 볼 일이다.


이 사형확정판결을 두고 스콧 스탠절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판결은 정의를 추구하는 이라크인들을 위한 이정표”라고 환영한 반면 휴먼라이츠서치 등 국제 인권단체는 시아파 주도 정부에 의해 치러진 정치적 재판이라는 비난을 가하고 있다. 이라크의 수니파는 후세인의 사형확정에 대해 보복을 가하겠다고 경고하고 있고, 후세인의 반대파 사람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이라크의 최대종족으로 분리되는 시아파와 수니파, 이슬람교리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차이 때문에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갈등은 석유, 즉 돈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시아파 주민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라크 남부지역에는 개발 유전의 약 80% 정도가 자리잡고 있고, 쿠르드족 자치구인 북부에도 키르쿠크 유전지대가 있지만,  중서부 수니파 거주지역에는 제대로 개발된 유전이 없다. 그러다 보니 수니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라크 정권을 잡게 된 수니파 출신의 후세인을 같은 종족인 수니파 주민들이 지지하게 되고, 이로 인해 핍박을 받아온 대다수의 시아파 주민들이 자신들이 장악한 유전지대 및 경제적 부를 보전하기 위해 수니파 출신의 후세인을 몰아내고자 내부갈등을 겪던 중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마침내 전세가 역전되어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것이 현재의 이라크 실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선거를 통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가 심어놓은 사람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 그 뒤를 물려받은 현재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최고의 강성으로 알려지고 있는 현재의 딕 체니 부통령 등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은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을 확정지었지만, 그 뿌리를 제공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타계 소식을 접하면서 인생무상을 다시 한 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연말이다. 병술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그림자의 힘으로 사는 거야/그림자는 밟힘의 힘으로 사는 거고/어둠을 봐/그림자가 없잖아/걷는다는 것은 밟는다는 것이고 밟는다는 것은 나아간다는 것이고, 밟힌다는 것은 한순간 누군가의 대지가 되어준다는 뜻이야/그렇지만 그 누구라도 맨 먼저 자신의 그림자를 밟는 거야/맨 나중에도 자신의 그림자를 밟고 자신의 그림자 위로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쓰러질 거야/그러니까 그림자는 힘, 기댈 곳이야/어떤 이가 너를 밟고 지나간다면 그 순간 너는 그에게 힘이 되어주는 거지/너는 그를 자라게 할 거야/또 다른 이는 그를 밟고 지나갈 거고/모두들 그렇게 진화해 왔을 거야/조물주는 먼저 물을 흐르게 하거나 식물의 싹을 틔운 게 아니라 태양 속에 그림자부터 심으셨던 거야/태양조차도 그림자가 없으면 안 되었던 거지/너는 너 자신의 그림자야/그림자는 우리를 자라게 하고, 우리는 다시 그림자를 온전케 하고”(정숙자 시인의 “정신승리법” 전문).


모두들 타인을 짓밟고 혼자 승리하는 것 같지만, 저 시인의 말대로 누구라도 맨 먼저 자신의 그림자를 밟고, 다른 이의 그림자를 밟고, 자신 또한 남에게 밟히는 그림자가 되는 게 인생이다. 세계의 화약고로 2006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인의 의식을 괴롭혔던 이라크 전쟁, 그 중심축에 위치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확정과 그가 통치하던 이라크를 침범하는 전쟁개시결정을 내린 자들을 길러낸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의 자연사를 보면서, 모두가 스스로 그림자임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본다. 조물주는 태양 속에 그림자를 심으셨을 것이라는 시인의 저 말, 태양조차도 그림자가 없으면 안 된다는 시인의 저 말, 매일 매일 나의 그림자와 너의 그림자를 먹고 사는 우리 모두 역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한순간 누군가의 대지가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하루를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병술년 한해를 마감하면서, 다가오는 정해년 새해에는 돼지해가 상징하는 풍요와 부가 모두들에게 넘쳐나기를 기원한다. 있지도 않은 황금복돼지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피땀 흘려 노력하여 그 대가를 통해 행복한 하루하루가 될 수 있도록 정신승리를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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