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21세기에도 정부는 필요한가? : 아이티 사태와 북한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21세기에도 정부는 필요한가? : 아이티 사태와 북한
  • 신희섭
  • 승인 2024.04.05 0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아이티에서 교민들이 철수한다고 한다. 그만큼 카리브 해의 섬나라 아이티 상황이 심각하다. 멀리 떨어져 있고, 한국과 교류가 많지 않고, 뉴스를 틀면 참혹한 지진과 갱단만 나오다 보니 아이티는 관심 밖 지역일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신도 버린 땅’으로 불리겠는가!

고통스러운 아이티인들에게는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아이티 문제는 정치학적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2021년 대통령의 암살 이후 아이티의 갱단은 교도소를 습격할 정도로 활개 치고 있다. 수도의 80%를 갱단이 접수했다고 하니 중앙정부의 통치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자칫 소말리아 같은 무정부상태가 될 수도 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아이티는 도미니카 공화국과 같은 섬에 위치하고 있다. 콜럼버스가 1492년 신대륙으로 처음 발견한 히스파니올라 섬에 양국이 자리잡고 있다. 서쪽에는 아이티가 동쪽에는 도미니카 공화국이 있다. 정치학적으로 같은 섬에서 출발한 두 국가지만 현재는 매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가난한 아이티인들이 도미니카 공화국 국경 마을 시장에서 물자를 구하고 있고, 아이티 전체 인구 1천 2백만 명 중 50만 명이 이미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탈출한 상태다.

히스파니올라의 전체 면적 76,1927km²에서 아이티는 27,750km²이고, 동쪽의 도미니카 공화국이 48,442km²를 차지한다. 인구는 좁은 땅의 아이티가 1200만 정도(외교부)로 추정되며 도미니카 공화국은 1060만 정도(외교부)로 추산된다.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은 구글 지도로 볼 때 녹지의 차이가 확연하다. 민둥산의 아이티와 녹지의 도미니카 공화국.

양국의 차이는 수치로 확인하면 더 명확하다. 아이티의 1인당 GDP는 2022년 기준으로 1,247불 정도 된다. 아이티의 기대수명은 2020년 세계보건기구 통계로 남성 63.3세에 여성은 64.8세로 평균은 64.1세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156위다. 영아 사망률은 천명 당 60.5명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1인당 GDP가 2022년 기준 10,700불이다. 2021년에는 실질 국내총생산이 12.3%을 기록하기도 한 고성장 국가다. 세계보건 기구의 도미니카 공화국의 기대 수명은 남성 69.8세 여성은 76.2세, 평균은 72.8세로 세계 104위에 해당한다. 천명 당 유아사망률(영아 사망률보다 높음)은 33.8명이다.

물론 수치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문제는 아이티는 더 나쁠 수 있다는 것이다. 갱단이 장악한 국가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때는 숫자 뒤에 감추어진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언제 총에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진흙으로 과자를 만들어 먹어야 하는 허기, 자식과 부모가 어떤 처지에 놓여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무기력함, 국제사회의 방관 속 점차 사라지는 미래.

한 섬의 두 나라의 차이는 식민 지배 방식의 차이와 군사 쿠데타와 국내정치의 불안을 극복해냈는지에만 있지는 않다. 아이티는 2010년 7.2짜리 지진을 정통으로 맞아 3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300만 명 이상이 피해를 봤다. 그런데 2021년에도 7.2짜리 지진이 다시 덮쳤다. 이로 인해 다시 1200명이 넘는 이들이 사망했다. 2021년 대통령이 괴한의 공격으로 사망하고 중앙정부의 통치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식민지 지배방식과 국내정치와 자연재해가 맞물리면서 한 섬에 있는 두 나라의 차이를 극단화했다.

이런 사례는 미국과 멕시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MIT 경제학과 교수인 대런 애쓰모글루와 하버드 정치학과 교수인 제임스 로빈슨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미국 애리조나 주의 노갈레스 시와 멕시코 소노라 주의 노갈레스 시를 비교했다. 과거 멕시코의 같은 도시였지만 현재는 미국과 멕시코로 구분된다. 1인당 국민소득 등등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이런 논리는 한반도에서 남북한이 분단되어 사는 우리에겐 익숙한 소재다. 어떤 제도를 선택했는지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그런데 정치학적으로 더 심란한 질문은 따로 있다. 과연 정부를 갖춘 북한은 무정부상태로 가고 있는 아이티보다 나은가 하는 점이다. 이는 1인당 국민소득(940불에서 1300불 추정), 기대수명(유엔통계 남성 71세, 여성 76세, 평균 73.5세), 영아 사망률(천명당 26.4명)의 수치를 넘어서는 문제다. 주민들이 느끼는 미래 기대치 등을 감안할 때 과연 무엇이 더 나은지 판단하기가 참 어렵다. 한편으로는 참 마음이 아픈 질문이기도 하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