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앵무새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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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앵무새 죽이기
  • 박상흠
  • 승인 2024.03.2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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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스카웃! 단순히 변호사라는 직업의 성격으로 보면 모든 변호사는 말이다.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을 맡기 마련이란다. 내겐 지금, 이 사건이 바로 그래. 이 문제에 관해 어쩌면 학교에서 기분 나쁜 말을 듣게 될지도 몰라... 누가 뭐래도 화내지 않도록 해라.”

백인 우호사상이 강한 메이콤군에서 주민들로부터 집단항의에 시달리게 된 9살 어린 소녀 스카웃이 아빠 핀치 변호사에게 흑인의 무죄변호를 중단할 것을 요청할 때 돌아온 답변이다.

오른팔보다 30센티미터 정도 짧은 왼팔을 가진 흑인 톰은 목화밭의 일을 하면서 지나가는 길목에 피해여성 마엘라와 친해졌고 옷장을 쪼개어달라는 그녀의 말에 응해주기도 했다. 하루는 마엘라가 집 안으로 들어와 선반 위 옷장 상자를 꺼내달라고 해 의자에 올라갔다. 순간 피해여성은 톰을 끌어안고, 의자에서 넘어진 흑인 톰에게 키스하고 끌어안으려 했다. 그때 톰은 도망갔다. 딸의 잘못을 직감한 아버지는 주먹으로 딸의 오른쪽눈을 때렸다. 톰이 자신을 강간했다는 딸의 거짓말을 듣고 이에 분개한 그녀의 아버지는 톰을 강간죄로 고소했다.

그러나 톰은 무고(無辜)했다. 마엘라의 멍든 눈은 오른쪽눈이고 톰은 왼쪽팔이 짧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왼손잡이였다. 메이콤군의 노련한 변호사로 정평이 난 에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주도면밀한 증인신문과정으로 판사의 감탄을 자아냈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마엘라의 아버지는 딸이 상해를 입었음에도 의사를 부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정확히 답변하지 못했고 증인들은 모두 마엘라로부터 피해사실을 전해 듣기만 했다. 그러나 백인들로 채워진 배심원의 평결은 흑인 톰의 백인 여성 강간죄를 인정하였다. 반발심으로 구치소에서 탈옥하던 톰은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인간의 재판이 공정하게 수행되지 못하고 간혹 감성논리에 의해 작동할 수 있다는 잠재적 위험성은 언제나 내재해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불의한 재판과 여론에 맞서 용기 있는 변론을 하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사회에서 소수자였던 유대인 드레퓌스에게 간첩사건을 뒤집어씌울 때, 재판의 양심을 호소했던 에밀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며 프랑스의 왜곡된 여론에 항거했다.

옳고 그름은 정확한 사실확인에서 출발하는 법이다. 그러나 여론이 법정의 재판에 목소리를 높이고 재판정의 올곧은 소리는 침묵하게 된다면 법정의 기능은 마비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고난주간 중 예수의 재판을 떠올리게 된다.

유대인들은 신성모독, 민족반역, 납세거부를 하였다는 이유로 예수를 고소했다. 그러나 예수는 민족을 반역한 적도 없고 납세를 거부한 바도 없었으며 유대 종교가들의 색안경에 신성모독자로 보였을 뿐이다. 무엇보다 유대인들의 고소건은 로마법정에서 재판의 대상이 아니었다. 증인들은 예수의 무죄를 입증해 주고 있다. 무죄한 피를 팔았다고 후회한 가롯유다(마 27:4), 옳은 자를 풀어주라는 빌라도의 아내(마 27:19), 세 차례 무죄를 선고하려던 빌라도(눅 23:22), 십자가의 주님을 의인이라 고백한 백부장(눅 23:47). 그들 모두 무죄의 증인이다.

그러나 예수는 침묵했고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는 여론을 재판관 빌라도는 수용했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앵무새를 죽이는 것이 죄라면 침묵의 재판이 진행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변호사가 떠안을 죄가 될 것이다.

핀치 변호사의 말대로 나의 변호사 인생에, 평생에 한 번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무엇일지 오늘도 찾고 있다.

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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