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성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인권침해에 놓였지만, 국제적 보호는 요원하다
상태바
[칼럼] 여성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인권침해에 놓였지만, 국제적 보호는 요원하다
  • 박영아
  • 승인 2024.03.22 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유엔이 1951년 채택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은 원래 1951년 이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한 난민에게만 적용되는 시간적 제한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냉전시대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유럽 내 난민들의 처우를 규율하는 것이 당시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적 보호의 필요성은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1967년 의정서 채택으로 난민협약의 시간적 제한은 폐지되었다. 한국은 1991년 유엔 회원국이 된 후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난민협약이 처음 채택된 날부터 어느덧 73년이 지났다. 그동안 국제법적으로는 물론, 여러 가입국 국내법적으로도 난민협약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법리가 축적되어 왔다. 가장 큰 발전 중 하나는 1951년 난민협약 채택 당시 크게 고려되지 않았었던 젠더 관련 박해가 난민사유로 포섭되고 난민사건에서 젠더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로 자리 잡은 점이다(유엔난민기구가 발간한 ‘국제적 보호에 관한 지침 제1호: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 제1조 제A항 제2호 및 1967년 의정서의 맥락에서 젠더와 관련된 박해’ 참조). 젠더 관련 박해의 대표적 사례로 여성할례, 강제결혼과 가정폭력 등을 들 수 있다. 구조적 차별에 근거한 심각한 가해에 대해 국제적 보호가 필요한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실무적으로 젠더 관련 박해를 이유로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한국의 경우 난민인정률 자체가 기록적으로 낮다 보니 난민인정을 받기 어렵다는 것은 모든 난민사건에 해당하는 수식어이기는 하다. 그러나 젠더 관련 박해의 경우 또 다른 장벽들이 존재한다. 가장 큰 이유는 박해의 양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난민지위에 관한 판단에 일반적으로 고려되지 않는 데 있다.

젠더 관련 박해의 경우 직접적 가해자가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인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때 여성이 처한 박해상황은 가족 간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고, 이는 사법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살면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론이 선험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난민신청인이 실제로 처한 위험을 간과하기 쉽다. 난민신청인이 경험한 폭력이나 위협이 해당 사회와 문화에 뿌리 깊게 박힌 성차별적 관습이나 관행에 기반을 두는지 여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이러한 확인은 추측이 아닌 객관적 국가정황정보를 근거로 이루어져야 한다. 강제결혼이나 여성할례와 같은 심각한 인권침해가 성차별적 관행에 기인 한다면 사법기관이 그러한 사회적·문화적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는 추정은 오히려 픽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헌법과 법률에서 남녀평등을 규정하거나 여성할례나 강제결혼 등을 금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확인되어야 하는 사항은, 위험에 처한 여성이 실제로 사법기관에 접근하고 실효적 구조 및 구제를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가해자가 실제로 처벌되는지 여부이다. 특히 국가의 법 집행력이 낮고, 부족 등을 중심으로 한 비공식적 또는 관습적 규범들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경우 법률이 있다는 이유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거나 박해의 위험이 없다는 결론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성차별적 제도와 문화로 인한 열악한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여성이 가해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이 되는 점 또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현저히 낮은 국가일수록 자신을 박해하는 가족이 바로 여성이 가진 유일한 자원이고, 조력자가 있다 하더라도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여성이 박해자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지역으로 피신하여 안전하게 살 수 있는지 여부는 해당 국가에서 자신이 속했던 사회관계망을 완전히 벗어난 여성이 일반적으로 독립적으로 생계를 일굴 수 있는지 여부, 그리고 난민신청인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는지 여부에 대한 구체적 확인이 필요하다. 박해자로부터의 도피를 대가로 생존의 위협을 받거나 성착취 등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국제적 보호에 대한 적절한 대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래에서 소개하는, 공감이 지원하는 두 사례에서 위와 같은 검토가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A국은 군주가 다스리는 절대왕정 국가다. 해당 국가의 국법상 여성은 남성의 후견을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은 남성후견인제도 하에서 여성은 평생 미성년자로 취급된다. 남성후견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피후견인인 여성이 남성후견인을 변경하는 것 역시 어렵다. 남성후견인의 의사에 반한 경제적 독립 역시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성의 삶의 질은 남성 후견인의 선의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이러한 상황은 국가제도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그 결과 여성은 남성후견인과 갈등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남성후견인에게 대항하거나 후견을 벗어날 방법이 없어 손발이 묶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A국 출신 여성 S는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S와 남성후견인인 부친과의 갈등은 사적 이유로 생겨난 것이었지만, S가 그로 인해 처하게 된 상황은 남성후견인제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S가 본국 정부기관에 보호를 요청할 수 있고, 본국 정부가 효과적 보호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S의 난민신청을 거부하였다. S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자신을 학대하고 유기한 부친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국가가 시행하는 남성후견인제도 때문이었음에도 단순히 가족 간 갈등으로 치부된 것이다.

B국은 A국과 같은 남성후견인제도가 없지만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매우 낮다. 법적으로는 결혼 강요를 금지하고 있지만, 신뢰할만한 국가정황정보에 따르면 여성의 63퍼센트가 강제로 결혼을 당하고 있으며 결혼 강요로 실제로 처벌받은 사례는 알려져 있지 않다. 15-49세 여성 중 할례를 받은 비율은 전국적으로 94.5%에 달한다. 여성할례를 받지 않은 여아와 여성은 사회적으로 배척 당한다. 법은 여성할례를 금지하고 있지만 높은 여성할례율이 방증하듯 전혀 실효성이 없다. 독일 정부가 발간한 B국 국가정황정보에 따르면 가족의 지원 없이 고향 외 다른 지역에서의 정착을 기대가능하게 하는 최저생계의 유지는 홀로 사는 여성에게 거의 가능하지 않다. Y는 B국 출신으로 부친의 사망 후 어린 나이에 숙부에 의해 나이가 많고 이미 2명의 부인이 있는 남성과의 결혼을 강요받았고, 그 과정에서 감금, 폭행과 강간을 당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B국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온 Y는 한국에서 만난 사실혼관계에 있는 남성과 사이에 딸 W를 낳았는데, W는 B국으로 돌아갈 경우 여성할례를 강요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Y 역시 본국에서 여성할례를 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Y가 받은 결혼강요는 사인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국가기관의 보호를 요청할 문제라고 보았다. B국 국가기관이 강제결혼을 용인하고 있다고 볼 근거가 없으며, Y가 본국 내 안전한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고려할 수 있다는 이유로 Y가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W의 모친인 Y가 여성할례를 반대하고 있어 B국 여성이 일반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위험을 넘어 W가 여성할례를 당할 개별적,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W 역시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B국 여성들이 국가기관으로부터 실효적 보호를 받지 못하며, 여성에게 가족의 지원 없이 고향 외 다른 지역에서 홀로 정착하는 것이 거의 가능하지 않다는 국가정황정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특히 여성할례 비율이 90%가 넘는 상황에서(Y가 속한 부족은 그중에서도 여성할례 비율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자신의 강제결혼도 막지 못한 Y가 딸의 할례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W가 여성할례를 당할 개별적·구체적 위험이 없다는 판단은 무모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위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1950년대 이후 축적되어 온 난민법 법리와 국제기준과 달리 적어도 한국에서 젠더 관련 박해를 이유로 난민인정을 받는 것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이는 관습과 관행 등을 이유로 심각한 인권침해에 놓인 여성들에 대해 국제적 보호가 거부되는 상황이 계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4년 2월호 제공>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