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의사를 늘리면 한국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의사를 늘리면 한국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 신희섭
  • 승인 2024.03.14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외국에 거주하는 지인이 치과 치료가 필요해 압구정동에서 치과를 찾았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갖춘 이 치과는 성형과 관련된 치과 진료만 한다고 다른 병원을 가라고 한다. 압구정동의 그 많은 병원을 돌다 돌다 결국 지인은 다른 곳으로 갔다.

의대의 증원 문제의 본질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화려한 압구정에서 성형외과나 피부과나 성형을 하는 치과는 넘쳐난다. 하지만 이를 때우는 치과는 골목의 구석진 곳이나 다른 동네로 가야 한다. 비싼 임대료를 내려면 돈이 되는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대의 정원을 늘린다고 모든 지역에 모든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지방 소멸과 인구절벽의 한국의 지방에서 산부인과를 개원하는 의사를 기대하는 것은 반자본주의적이다. 많은 의사는 서울로, 강남으로, 성형외과로 온다. 압구정동이 그 성지(였)다.

경제학의 낙수 효과 이론처럼 의대 정원을 2,000명 더 늘리면, 더 많아진 의사들은 압구정동을 포기하고 지방 병원으로 가서 심장 수술을 하고 아이를 받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의사 본인이 원치 않을 뿐 아니라 배우자가 거부할 것이다. 대치동 교육을 포기한다고. 그리고 투자자인 부모도 결사반대할 것이다. 들인 돈이 얼만데!

우리가 의사 정원증대에 집중할 때 더 큰 문제가 있다. 이공계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급격히 줄고 있다. 우리의 미래 먹거리는 식량, 바이오, AI, 자원, 우주 등에 있다. 이 분야는 유능하고 창의적인 이들이 세부 분야를 개척하고 발굴해야 한다. 자원이 없고 인구는 세계 1등으로 줄고 있는 한국이 그나마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조건이다.

한국의 인재들은 대부분 의사가 되기를 원한다. 이공계에서 과학 분야에 종사하려는 인재들은 빠른 속도로 적어지고 있다. 사회는 ‘공돌이’처럼 의사를 ‘의돌이’라고 하지 않는다. 문과는 뭐….

이유는 단순하다. 같은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해 졸업했는데, 연봉 차이가 이건 뭐다. 또 이공계는 중간에 잘릴 걱정이 크다. 의사처럼 안정적인 노후는 남 얘기다. 유사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자본주의에서 계층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능력 있는 사람이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문제는 개인적 합리성이 집단적 합리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의사만 존재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은 의대를 간다. 종로학원이 낸 <1985년 이후 전국 자연계 최고 상위 20위 학과>는 이를 정확히 보여준다. 1985년과 1990년에는 20개 과 중에서 의대는 4개(이 중 1개는 약대)였다. 2023년과 2024년에는 20개 중 20개가 의대다. 2022년에는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가 있어 19개가 의대였다.

입학할 때 의대 포기각서를 쓰고, 의대 진학 시 장학금을 토해내는 영재고등학교조차 의대로 진학하는 학생이 8%를 넘는다. 또 이들이 이공계 대학에 입학해도 자퇴하고 다시 의대 입시를 준비한다. 의대 정시의 경우 합격자의 78.6%가 재수 이상이라는 통계는 이공계에 진학하는 이들이 그리는 암울한 미래를 명확히 보여준다.

뛰어난 이가 의사가 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자원 중 인적 자원이 중요한 한국에서 모두가 의사만 되려고 하는 것은 문제다. 우주, AI, 식량 분야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이들이 모두 메스만 들고 있는 상황은 한국 사회에는 인적 자원 배분의 실패다.

현 상황에서 의대 정원증대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명확하다. 2023년 의대 평균 경쟁률은 7.26대 1이었다. 의대 진학을 위해 초, 중, 고에서 너무나도 치열한 경쟁을 하는 의대 정원 3천 명의 7배에 달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런데 5천 명으로 정원 확대가 되면 5천 명의 7배에 달하는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유치원과 초등학교부터 목을 맬 것이다. 게다가 소수 의사정원의 마지막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현재 의대 열풍을 광풍으로 만들 것이다. 의사만한 다른 일자리를 사회가 제공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부의 일반병사 월급 인상을 보라. 월급 인상은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지만, 부사관들의 사기를 꺾는다. 또한, 9급 공무원들의 이직을 고려하게 만든다. 여기서 경험한 것처럼 정책 이면의 부작용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