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숨 쉬고 심장이 뛰는 기적을 지키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그 오해와 진실을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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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숨 쉬고 심장이 뛰는 기적을 지키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그 오해와 진실을 풀어봅니다
  • 강은희
  • 승인 2024.03.08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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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강은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작년 7월부터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의 일원으로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한 법률들의 개정을 감시하고 개악을 막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공동행동은 작년 겨울부터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유예하자는 주장에 맞서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50억 미만 공사를 적용하는 규정을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비록, 저는 현장에서 참여하지 못했지만,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활동가들 그리고 산업재해 피해 유족들을 포함한 공동행동의 다른 동료들은 작년 연말과 연초를 국회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여러 우여곡절 끝, 중대재해처벌법은 올해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그리고 50억 미만 공사에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1월 26일 제정되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실제로 사업장의 안전 보건 관련 인력과 예산을 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사장과 같은 경영책임자가 노동자의 안전에 관해서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이상 매년 사고 또는 질병으로 일을 하다 사망하는 사람이 2,000명가량 발생하는 비극이 반복될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이상 사업장, 50억 이상 공사에는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22년 1월 27일 시행되었고, 올해 2024년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50억 미만 공사에 적용될 것을 3년 전부터 예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 시행 몇 달 전, 갑자기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 법을 다시금 유예하자는 법안이 국회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법이 시행되기까지 법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두고 여러 매체에서 다뤘습니다. 이런 오해 중 일부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한국 노동현장에서 산업재해는 주로 재래식 사고입니다. 흔히 미디어에서 재래식 사고, 또는 후진국형 사고는 안전시설과 조치들을 기본적으로 갖추면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들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지금 기소가 되어 공소장을 보게 된 사례 중에는 안전난간이 없는 작업장에서의 추락 사망사고, 신호수가 없어서 건설장비 치여서 발생하는 사망사고, 고장 난 기계를 고치지 않아서 발생한 머리 끼임 사고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 사고는 그리 복잡할 것도 없는 상식선에서의 조치들이 이루어지지 않아 누군가가 생명을 잃은 사례들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원래 안전보건 조치를 정한 법이 없었을까요? 사실 원래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현장의 여러 상황에 대해서, 필요한 안전보건 조치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40년 넘게 존재해 왔지만, 사실상 기능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까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다쳐도, 처벌을 받는 것은 사업주가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조치를 직접 실행하지 않은 현장의 관리자들이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원청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근데 노동현장에서 안전, 보건에 관하여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주로 경영책임자 또는 원청입니다. 현장의 관리자들과 하청에게만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현장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직접 경영책임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이 지켜지는지 확인할 의무를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가 이행할 안전, 보건 의무는 새로운 내용의 의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지켜지는지 확인하는 것에 더해서 안전에 관한 사내 목표를 정하고, 종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할 의무 정도를 추가합니다. 또 중요하게도,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을 기준으로 두고 있으므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사업장 규모별로 정해 놓은 의무를 주로 이행하게 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으로 소규모 사업장에 새로운 의무가 부과되거나, 대형 사업장과 같은 수준의 의무 이행을 해야 될 것이라는 주장들은 그래서 과장입니다. 가령 5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와 안전보건 전담조직을 두지 않아도 됩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구성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무조건 사업주를 처벌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있거나, 직업상 질병자가 1년 동안 3명 이상 발생했는데 조사 결과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재해가 발생하였다면, 그제야 비로소 사업주를 처벌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모든 산업재해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사고가 다수에게 반복해서 일어나야 겨우 적용되는 법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로 식당, 카페에 타격이 있다는 주장들이 뉴스에서 제기되었지만 사실 2022년 기준 식당과 제과점, 카페 등이 해당되는 ‘숙박·음식점업’ 사업장은 86만 4천 개이고, 숙박, 음식점업에서 일하다 숨진 사람은 5명입니다. 영업점 중 0.000005%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5인 이상 사업장에 해당하고, 산업안전보건법 등 의무 위반이 확인되는 경우에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됩니다. 식당 또는 카페업을 영위하는 사람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받을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깝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관련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영세·중소기업 사업주가 처벌받으면 사업장이 문을 닫고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노동자는 생계와 생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 주장은 일하는 사람에게 일자리 대신 죽음의 위협을, 또는 내 동료의 죽음을 감수할 것을 강요합니다. 생계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기를 바라는 것, 일자리를 위해서 목숨을 담보로 잡는 것보다는 더 나은 삶을, 더 나은 경영방식을 법이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활동 소식은 또 다른 연초, 설을 코앞에 두고 발송될 것 같습니다. 가족의 형태가 무엇이든, 소중한 사람들과 안부를 전하는 명절은 소중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시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마주하게 된 산재 유족들의 염원을 담아 만든 법입니다. 그래서 올해의 소원은 노동자의 안전을 비는 데 쓰고자 합니다.

올해는 법의 확대된 시행으로 눈앞에서 한꺼번에 사라졌으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을 2,000명의 목숨이, 죽지 않고 살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내년 설에는 안타까운 빈자리를 누구도 마주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언젠가는 아무리 큰 이윤이라도, 어떤 경제논리보다도 한 사람의 생명의 무거움이 우리 사회의 가치가 되어 중대재해처벌법이 지금은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되기를 바랍니다.

2024년에는 숨 쉬고 심장 뛰는 기적인 우리의 안전과 안녕을 돌보며 한 해 무탈하기를 바랍니다.

강은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4년 2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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