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비례대표제도, 넌 진짜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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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비례대표제도, 넌 진짜 뭐니?
  • 신희섭
  • 승인 2024.03.08 10: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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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2024년 2월 29일, 2024년도 총선의 선거구가 획정되었다. 선거 41일을 앞두고 선거구가 획정되면서 지역구 의석수는 253석에서 254석으로 바뀌었다. 서울 –1석. 경기와 인천 +2석. 의석수의 변화는 서울과 경기지역의 인구변동을 반영한다. 그러면서 비례대표 의석은 기존 47석에서 46석으로 줄었다.

이번 선거구 획정의 몇 가지 문제점 중 비례대표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는 계륵이 되었다. 먹기에는 작지만 남 주긴 너무 아까운 계륵.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비례대표제의 원래 존재 이유는 사라지고 제도 공학적 계산만 남았고, 그 결과 복잡한 새로운 생태계가 탄생한 것이다. “위성 정당 깃발 아래 다 모여라!!” 2023년 국회가 실시한 선거제도 공론조사로 시민들의 의견과 전문가들의 의견 청취는 왜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한국은 독일과 일본이 쓰고 있는 지역구와 비례제도 두 가지를 사용하는 혼합형 선거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다수결주의를 선택한 미국이나 영국은 비례선거제도를 사용하지 않는다. 혼합형 선거제도는 이론상 주로 거대 정당을 통해 지역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지역구 의원과 정당에 던진 표가 의석으로 전환되는 비례대표제를 통해 소수 가치의 정당을 결합한 제도다. 논리적으로는 유능한 (다수당) 대표의 ‘지역 이해 반영+다양한 소수 가치 반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거대 정당과 소수 정당의 상생인 것이다.

비례대표제는 유럽산이다. 종족과 종교와 언어 등의 정체성이 다른 유럽 국가에서 특정한 세력만을 다수 세력으로 의회에 보내지 않기 위해서 도입된 제도다. 즉 철학적으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다수 세력과 소수 세력이 같이 사회를 구성한다는 다원주의에 기초한 것이다.

한국의 비례대표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비례대표제의 철학을 따르지 않고 있다. 첫째, 소수를 반영하기에는 비례의석 수가 너무 적다. 비례대표제의 전신인 전국구선거제도는 박정희 정부에서 도입되었다. 이때 전체 의석 175석 중 44석이 전국구였다. 25% 정도다. 그런데 2024년에는 전체 300석에서 46석뿐이다. 전체 의석은 125석이 늘었는데 비례의석은 단 2석 늘었다. 민주화 이후인 1988년 선거도 전체 299석에서 비례는 75석이었다. 25% 정도다. 그 뒤는 어떤가! 1992년 62석, 1996년 46석, 2004년 56석, 2008년 54석, 2016년에 47석, 그리고 2024년 46석. 민주화부터 의미 있게 분석한다고 해도 비례의석 수는 대체로 갈팡질팡하면서 줄어왔다.

둘째, 비례를 통해 반영하려는 가치나 철학은 잘 보이지 않고 의석수 계산이 주를 이룬다. 다수를 정하는 것이 익숙한 대의민주주의에서 소수가치 보호는 다원성 차원에서 필수적이다. 비례대표제는 다양한 세력에게 의석을 보장하여 다수의 횡포를 막을 뿐 아니라 사회가 특정한 가치로만 편향되는 것을 보정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비례대표제가 이런 역할을 할까!

3공화국에서 전국구 선거제도를 도입한 이유 중 하나가 지역구의 연고가 없는 북한지역 출신 정치인들을 등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김종필 전 총재가 밝힌 적이 있다. 한편 3공화국에서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선거에서 정당이 가진 의석별로 배분되었다. 그래서 33.5%를 득표한 민주공화당이 전국구 44석 중 22석 즉 50%를 차지했다. 최초부터 비례선거제도는 전략적 계산에 따라 여당에 유리한 제도 공학으로 도입되었다.

현재 위성 정당을 운영하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역시 핵심은 지역구 선거와 별개로 정당이 받을 수 있는 지분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다만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짜증 날 정도로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당마다 국민의 손가락질을 피하고자 위성 정당 내 다양한 소수 세력을 포함하는 무지개 연합을 구성하는 방안 등으로 면피를 꾀한다. 하지만 이 역시 소수 정당으로서 거대 정당의 은혜에 의해 의석을 얻는 것일 뿐, 유권자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복잡한 비례선거제도도 기능적으로 유용한 측면이 있다. 유권자들의 계산을 복잡하게 만들어 정신 줄을 빼놓는다. 두 개의 표를 사용해 선거라는 게임의 흥미를 북돋울 수 있다. 정당 간 흥정의 패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비례대표제의 원래 목표인 비례성이나 직능대표성은 어디 있단 말인가! 쪼그라지는 비례대표제. 남 주긴 아깝고 그렇다고 대놓고 지역선거만 하자고 말은 못 하겠고…. 참 안타까운 제도로 전락해가고 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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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2024-03-11 23:41:40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참으로 훌륭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희섭 님, 항상 응원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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