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348)-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알게 되는 역사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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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348)-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알게 되는 역사적 사실
  • 강신업
  • 승인 2024.02.1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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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영화 <건국전쟁>은 이승만에 대한 진실을 담은 영화다. 1875년(고종 12년) 조선에서 태어나 구한말 나라를 잃고 박영효의 황제퇴위 모의에 가담했다가 사형을 선고받고 5년이 넘게 한성 감옥에 갇혔으며, 가까스로 사면받아 목숨을 건진 후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귀국하여 나라를 세우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여러 업적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고 외국(하와이)으로 떠났다가 사망한 후에야 조국에 돌아온 풍운의 인물, 이승만에 대한 영화가 <건국전쟁>이다.

이승만의 삶은 극적이다. 그의 삶이 그대로 드라마고 영화다. 감독 김덕영이 말했듯 이승만의 삶을 그대로 나열한 게 바로 이 영화다. 영화는 지나칠 정도로 팩트만을 쫓는다. 영화는 조금도 흥분하거나 들뜨지 않는다. 다만 시청자들에게 조용히 사실을 얘기할 뿐이다. 영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오로지 시청자의 몫으로 남는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본 독자들은 영화가 끝나고도 바로 일어나지 않는다.

감독은 영화에서 이승만을 다루되 객관적 이승만을 다룬다. 주관적 이승만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역사적 자료와 사진 그리고 역사학자나 기자들의 인터뷰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다. 대역도 없다.

영화는 해방 전후 우리 근대사,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과 비화, 그리고 6.25 전쟁과 정전협정,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거쳐 결국 망명길이 된 이승만 대통령의 하와이 출국,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장례 행렬 등을 비춘다. 물론 4·19의 직접적인 발생 원인, 그리고 3·15 부정선거와 4·19를 대하는 이승만의 태도도 담겼다. 4·19 시위 중 다친 학생을 병문안하며 학생들을 안아주는 이승만의 모습은 나직한, 그러나 분명한 울림을 준다.

백범 김구가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김구는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나고 북한의 군사력을 파악하고 당시 남한 경제력의 40배 달했던 북한이 남한을 침략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도 남한에 와서는 북한 김일성에 의한 남침은 없을 것이라는 강연을 하고 다녔다는 내용도 나온다.

​6·25 때 한강 다리 폭파로 인해 많은 민간인이 죽고 다쳤다는 유언비어가 있고 이승만을 ‘런승만’이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다리 폭파로 민간인이 죽거나 다친 것은 없고 정부의 지속성을 위해 전쟁지휘부를 후방으로 옮겼을 뿐이라는 것, 전쟁 중 이승만은 거의 300여 차례 전방부대를 방문하며 군인들을 격려하였다는 사실, 정작 도망간 것은 김일성인데,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키고는 막상 가족과 함께 만주로 도망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친 얘기, 특히 남녀 구별하지 않고 기숙사까지 지어 교육에 힘쓴 내용, 여성 인권을 위해 노력한 내용, 특히 우리나라 여성 투표권이 스위스나 프랑스보다 빨랐던 것도 이승만 덕분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고조선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존재했던 ​소작농 타파,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농부가 직접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한 토지개혁 얘기, 그리고 이 토지개혁이 6·25 때 나라를 지키는 신의 한 수가 되었음을 듣게 된다. 토지개혁이 없었다면 내 땅이 없는 머슴이나 소작농들이 오히려 김일성의 진주를 환영하였을 것이라는 얘기는 우리에게 공연히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

이승만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실천했다. 이렇게 교육받은 학생들이 3·15 부정선거를 참지 않고 4·19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들의 요구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승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54년 이전 70년 동안 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 등 수많은 전쟁이 발생하고 그때마다 수만에서 수백만 명의 우리 국민이 죽었으나,​ 1954년 세계 최대강국인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이후 70년 동안 우리 국민이 100명 이상 죽은 전쟁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러나 좌파들의 끈질기고 치밀한 반대 공작 때문에 우리나라나 미국 본토 또는 하와이에 이승만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도 우리는 영화에서 알게 된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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