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57-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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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57-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손호영
  • 승인 2024.02.1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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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책을 내었습니다.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이 제목입니다. 10년 만에 대중 교양서를 다시 한번 써보았습니다. 10년 동안 실무를 하고, 공부를 더 하고, 나름 스스로 열심히 채워 넣은 뒤, 다시 쉼표를 찍어보았습니다. 쉼표를 찍는다는 의미는, 돌아본다는 뜻입니다. 첫 책을 냈을 때는 이제 실무에 첫발을 내딛은 저의 시선으로 ‘법’의 이론적 모습과 지난 10년간의 공부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판사로서 일을 본격적으로 해온 나의 시선으로, ‘판결’의 속뜻과 지난 10년간의 경험과 생각을 돌아보았습니다. 이번 책은 10년 전보다 분명 조금 더 한걸음 나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판결도 하나의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은 진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합니다(Based on a True Story). 그리고 갈등의 종착지인 법정에 올 만큼 치열해진 당사자의 다툼이, 날 선 공방으로 이어집니다. 판사는 오랜 고민 끝에 결단합니다. 판결은 이 모든 ‘이야기’를, 오롯이 정성스레 판사의 언어로 갈무리해 담습니다. 판결은 판사가 고민한 과정과 결론을 알려주는 ‘목소리’이자 이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판결에 대해 재잘거리며 거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야구 경기를 볼 때 찾아 듣는 해설처럼. 저는 이 책을 통해 판결의 객원 해설을 자처하고자 합니다. “솔직히 이 판결은 제가 봐도 놀랐어요. 기존 문법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들여다보니…”라든지, “이 판결, 이슈였죠. 그런데 정작 판결에서는 세상과 다르게 바라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이라든지, “이 판결에서는 판사의 감정이 묻어나옵니다. 저도 의아했어요. 그래도 되나요? 근데, 곰곰 생각해 보니…”라든지 등등 가끔 제가 알거나 겪은 썰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판결을 여러 방식으로 다채롭게 풀어내 보고자 했습니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판사는 판결을 쓸 때 무엇을 신경쓰는지(제1부), 판사는 무엇에 기대어 판결을 쓰는지(제2부), 판결에서 엿볼 수 있는 판사와 판결의 의외의 면모는 무엇인지(제3부)를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단어(keyword)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모두 판결의 실제 문장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실마리 삼아, 판사로서 내가 가지거나 느낀 판결에 대한 관심, 의문, 고민, 당황, 의아함, 놀라움 등을 이야기하고, 판결의 속뜻을 탐색해 본 다음, 이를 토대로 법, 판사, 사람, 사회 등 외부까지 시선을 넓혀 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 책을 지금까지 법률가들이 쓴 책과는 조금 다르게 하고자 했습니다. 법이나 판결을 교과서처럼 ‘설명’하는 것에 치중하지 않고, 저를 주인공 삼아 경험을 ‘윤색’하거나 주장과 신념을 ‘피력’하지 않고자 했습니다. 책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판결’입니다. 저는 판결을 전면에 내세우며, 판결에 담긴 판사의 고민과 성찰, 판사가 택한 의외의 파격 같은, 판결의 색다른 이모저모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요컨대, 판결의 ‘속살’을 이야기하고자 했달까요.

이번 돌아봄과 갈무리는 저에게도 새삼스러운 자극이었습니다. 판사의 언어로 갈무리된 여러 판결을 28개의 키워드로 살펴보면서, 저조차도 지나쳐 왔던 판사의 생각과 고민을 다시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문장과 단어로 정제되기까지 있었던 판사의 고민과 성찰을 새삼 짚어보는 과정은, ‘판사란 누구이고, 판결이란 무엇인가’란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덧붙여, 책에서 살펴본 판결을 쓰신 대법관님, 판사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이 지면을 통해 다시 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스스로를 새삼 돌아보며 다시금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법원은 제가 일하는 곳이자 성장하는 곳입니다. 법원에 계신 선후배, 동료들과 같은 일을 하고,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정말 저의 큰 복입니다. 무한한 신뢰와 존경,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새삼스레 보냅니다.

지난 10년, 이번 10년은 ‘옳은 법’, ‘좋은 판결’을 이야기해보았습니다. 다음 10년은 ‘좋은 판사’를 이야기할 수 있으면 합니다. 물론 저부터 시작입니다. ‘좋은 판사’가 되는 길은 무척 고될 것이고, 저는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더 나아지기 위해 용기 내어 정진하고자 합니다.

사건을 미리 파악하는 성실함, 기록에 드러나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면밀함, 당사자와 서로 소통하며 사건의 해결 방향을 이야기하는 개방성 등, 마치 군자(君子)를 보는 것처럼, 좋은 판사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많습니다. 이러한 덕목을 골고루 갖춘 판사가 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이 있기에 추구할 만한 일이겠습니다. 아마 이러한 덕목이 사람 판사와 AI 판사의 가장 큰 차별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저는 2.19.자로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책 발간과 함께 저의 소식 두 가지 전해드렸습니다. 올 한해 모두들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랍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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