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처럼 사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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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처럼 사소한 것들”
  • 최용성
  • 승인 2024.02.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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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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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매체의 시대를 살면서 손이 안 가는 것이 소설이다. 제대로 소설을 읽은 게 얼마나 되었을까. 그러다 우연히 구글을 검색하던 중 한국일보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최저 부수 판매 예상했던 소설의 반전, 국내 서점가 휩쓸다”라는 식으로 기사 내용에 관하여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아 클릭을 유도하는 그런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클레어 키건(Clare Keegan). 처음 들어보는 아일랜드 작가이다. 모두 다섯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는데, 국내 번역판으로는 두 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다. 도대체 무슨 책들이기에 이처럼 요란한 반응일까. 만약 두꺼운 장편소설이었다면 내 호기심은 거기서 그쳤을 것이지만, 마침 분량도 짧으니 오랜만에 읽어도 부담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 책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클레어 키건/ 홍한별 옮김, 다산북스, 2024). 사유의 결이 섬세하고 심오한 문학평론가 신형철 선생이 추천하는 책인 점에서 믿음이 생겼다. “처음 접해본 다정함”에 눈 뜨는 소녀의 마음을 섬세히 다룬 <맡겨진 소녀>도 매력적인 작품일 것 같지만, 우리 현실과도 연결되는 절박한 인권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고 제멋대로 짐작하고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책을 사서 한 번에 다 읽고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하였다. 본문이 110여 쪽에 불과한 작은 책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진짜 내용은 짐작과는 달리 인권 문제를 한참 넘어선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야기 자체는 평범하기 짝이 없다. 아일랜드의 뉴로스 타운에서 석탄과 땔감 등 연료 판매상으로 하루하루 고된 노동에 종사하며 아내와 다섯 딸을 부양하는 빌(윌리엄의 애칭) 펄롱이 주인공이다. 별다른 거 없는 평범한 사람 펄롱이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마주하는 일상의 흐름을 보여주다가 막 중요한 사건이 생길 것 같은 대목에 이른다. 다른 작가라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할 바로 그 지점에서 클레어 키건은 소설을 끝낸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독자를 전율하게 할 만큼 완결된 감동을 주기에 진정한 끝이고, 또한 독자인 내가 그 감동의 울림을 따라 깊은 사유를 하게 하기에 진정한 시작이다. 그래서 소설을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사소한 것들이 절대 사소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는 물론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의 중요한 선택과 행동이야말로 여러 사소한 것들, 작은 것들, 중요해 보이지 않는 평범한 것들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것이 모여 절망에 빠진 누군가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그로 말미암아 나 자신도 함께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깨닫는 진귀한 순간을 체험한다.

그 깨달음을 내 삶 속에서 온전하게 구현하려면,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이처럼 사소한 것들>, 56쪽)라는 관념을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결과는 두렵지만 떳떳하고 희망찬 무엇인가를 내게 안겨준다.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가슴속에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이처럼 사소한 것들>, 120∼121쪽) 고통에 눈물 흘리는 이들과 함께하는, 약한 이를 돌보고 살피는 아름다운 세상은 절로 오지 않는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만들어주는 용기와 결단에서 아름다운 세상은 싹튼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의 영혼을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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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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