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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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 신희섭
  • 승인 2024.02.0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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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2024년 1월 28일 두 명의 환경운동가가 '지속가능한 농업'을 외치면서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그림에 수프를 뿌렸다. 세계적인 작품에 대한 테러로 이들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며칠 사이 국제뉴스에서는 프랑스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시위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프랑스 정부의 기름값 지원 정책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파리와 수도권을 트랙터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수프 테러나 트랙터 시위의 공통점은 프랑스 농업 문제다.

그런데 이런 뉴스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식량자급률이 평균적으로 150%에서 320%에 달할 정도로 높은 국가다. 또 농산물 수출국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농업 분야에서 별걱정이 없어 보이는 프랑스에서 왜 저런 극단적인 행동을 할까?"

프랑스와 한국농업의 구체적인 비교를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자료와 맥락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자 한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농업 강국이다. 프랑스의 영토 넓이는 643,801km²로 10만 제곱킬로미터인 남한의 6배가 넘는다. 그런데 국토의 52%가 농지이고, 좋은 기후 조건으로 프랑스는 다양한 농작물과 축산물을 생산하고 수출한다. 프랑스의 농민은 90만으로 인구 전체에서 1.5% 정도 된다. 이들이 경작하는 경작지는 평균 30헥타르(1헥타르=1만 제곱미터=3,000평 정도)로 한국 기준으로는 9만 평 정도다. 프랑스 농부의 평균 연령은 50세 정도고 이들의 평균 농업소득은 3만 유로 정도 된다. 현재 환율 1400원으로 계산하면 4,200만 원 정도 된다.

한국하고 비교하면 프랑스 농민들이 시위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한국은 영토의 15%만 농지다. 한국 농민은 2022년 기준 100만 가구가 좀 넘고 인구로는 216만 명을 조금 넘는다. 전체 인구의 4% 정도 된다. 농민의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어 2021년보다도 2.4%가 줄었다. 농민 중 65세 이상이 49.8%가 넘는다. 농가 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68세다. 국가 전체에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5.7%인 것과 비교하면 농촌의 고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2000년의 평균 연령이 58.3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승 속도 역시 매우 빠르다. 2022년 한국 농업인이 농사로 벌어들인 수익은 1년에 949만 원으로 천만 원이 안 된다. 2012년에 천만 원 미만이었는데 10년 만에 다시 이 수치로 떨어진 것이다. 평균 가구원 2.2명의 농가소득은 4,615만 원이다. 이중 1920만 원은 다른 곳에서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과외 소득(농업 외 소득)이고, 1520만 원은 직불금이나 국민연금(이전소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즉 농사로는 1년 두 사람이 넘게 일해도 1천만 원의 소득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농사 규모도 1헥타르 미만 농가의 전체 농가의 73%나 된다. 그러니 프랑스는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으로 보인다.

그럼 프랑스 농민들은 탐욕스러워서 시위를 할까? 그렇지 않다. 프랑스 농업도 중·대규모의 전문농업인(74%에 해당)과 소농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전문농업인 위주로 농업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농업보조금이 전체 80%에 이른다. 즉 유럽연합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직불 보조금을 나누어 지급하는데 이것이 결국 농업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기름값 보조 등의 지원 정책이 바뀌면 소농의 경우 피해가 더 커진다. 단순화하면 국가가 직불금을 지급하여 농촌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유럽연합은 식량 주권을 강조하기 때문에 유럽 내 농업의 자급자족을 강조하면서 농업보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농업 강국 미국이나 우크라이나를 상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보조금은 직불 보조금의 50%에 해당할 정도다. 그런데도 유럽 국가들은 농업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프랑스와 같은 농업 강국마저 흔들고 있는 농업 위기의 이유가 있다. 첫째, 엘니뇨에 따른 기후변화와 그에 따라 불안정해진 작황 때문이다. 둘째, 높아진 환경기준과 그에 따른 보조금 축소다. 셋째, 소비자들의 소비 습관 변화도 한몫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인들의 포도주 소비량은 과거보다 1/4로 줄어들었다. 넷째,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흑해가 막히자 폴란드를 통한 육로 공급망으로 전환했는데 러시아가 흑해 공급망을 열어버린 것이다. 폴란드에 들어온 막대한 식량 때문에 식량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프랑스는 사회적 경제운영원리를 사용하고 있다.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 시민을 직접 연결하는 공급망을 만든 것이다. 또한, 두 달에 한 번씩 학교가 방학을 하면 지역 농촌을 찾는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경제를 살려주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시장에 맡기면 농업은 도태된다. 도태된 자리는 미국의 거대농업기업이 차지할 것이다. 식량의 과도한 의존은 전쟁이나 물류대란과 같은 일들이 발생하면 시민의 식량안보가 직격탄을 맞는다. 따라서 시민과 시민 간의 연대 의식과 유대감을 이용해 농업을 공동체 차원에서 살리는 것이다. 이것을 보장해주는 것이 정부의 주된 역할이다.

사회민주주의의 대명사인 독일 역시 농업을 '문화경관 직불금'이라는 이름으로 보호하고 있다. 농민은 전통문화와 농촌의 경관을 살리는 역할의 대가로 보조금을 받는 것이다. 극단적인 자유주의가 가정하듯 농업이 시혜적인 부자들이 낸 세금을 받아서 기생하는 것이 아니다. 농업이 사라지면 공동체의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농민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공공재를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실제 이들 국가에서 소농들은 직불 보조금을 받아도 농업소득으로는 적자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사회계약이다. 시민들은 세금을 내고 이 세금을 정부는 농민들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해준다. 지급의 이유는 식량안보와 환경을 보호하는 농업을 실시하여 식품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농민은 이런 사회계약을 통해 일정한 소득을 유지하면서 농업 활동을 지속한다. 독일 농민이 만약 이를 위반하면 800만 유로의 징벌적인 벌금을 물게 된다.

이러한 사회계약이 특별한 점은 '시민적인 유대'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식량안보와 안전이라는 자유를 위한 계약이 될 수도 있지만, 프랑스와 독일이 강조하는 부분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시민적 유대가 미국의 거대 농장과 거대 농업회사에 맞서며 자신의 농업을 지키는 힘이다. 최근 미국에선 2066㎢(제주도 크기 1849㎢) 크기의 왜거너 농장이 1조 원에 매물로 나왔다. 미국의 이런 농장과 맞설 수 없기에 유럽은 시민들의 연대를 바탕으로 로컬푸드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2019년 한국의 농업보조금 제도가 바뀌었다. 농지 면적 중심에서 실제 농사를 짓는 농가를 좀 더 고려하는 방향으로 부분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식량자급률 47.7%와 곡물 자급률 21%라는 조건과 빠르게 고령화하면서 인구가 감소한다는 조건을 고려하면 한국도 농업에 대한 대대적인 성찰과 인식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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