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will drive good money out of circulation). 16세기 영국의 금융가였던 토머스 그레셤(Thomas Gresham)이 한 말이다. 시장에 좋은 품질의 화폐와 나쁜 품질의 화폐가 동시에 존재할 때 품질이 떨어지는 화폐만 남고 좋은 화폐는 시장에서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쁜 게 좋은 걸 몰아내는 게 비단 돈만은 아니다. 어디든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게 더 나댄다. 정치계도 다르지 않다. 악인이 선인을 내쫓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쓸만한 사람 찾기란 낙타 바늘구멍 들어가기다. 품질이 좋은 정치인은 시장에서 퇴거당하고 품질이 낮은 정치인만 남는다. 자질이 높은 사람은 사라지고 자질이 낮은 사람들만 남는다.
사실 이게 새삼스러운 것도 없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는 벌써 오래전부터 난장판이 되었다. 우열을 가리는 정책대결 같은 건 생각도 할 수 없고 오로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극한투쟁만 판칠 뿐이다. 나쁜 정치인들이 자기들만의 진지를 구축하고 스크럼을 짜고 이권을 추구하는 일은 이제 너무나 흔한 일이 되었다. 옛말에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고 했지만, 오늘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살아남으려면 까마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백로가 되어서는 도저히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아니 까마귀도 완전 흑 까마귀가 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정치인은 ‘풍부한 식견, 본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애국심, 그리고 돈에 초연함’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런 자질을 갖춘 사람은 현 대한민국 정치판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다. 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취하는 정치인도 보기 어렵고 투철한 국가관으로 정치에 임하는 사람도 찾기 어렵다. 돈에 깨끗한 정치인을 발견하기란 더욱 어렵다. 대한민국은 어느새 일부 기득권들이 모든 기회를 독점하는 나라로 변했다. 사실상의 신분 국가, 부 세습국가가 되어 버렸다. 청년들이 결혼을 꺼리고 아이 낳기를 꺼리는 이유도 바로 이렇게 자기 노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 고통은 내 대에서 끊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에 악화가 판치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바로 언뜻 보기에 분명 악화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의회가 대통령 선거를 인증하던 날 의사당 앞의 지지자들을 선동해 폭도가 되도록 조장 내지 방조했던 것도 트럼프고, 여배우 입막음을 위해 자금을 유용한 혐의를 받는 것도, 국가 기밀문서 유출 혐의를 받는 것도 트럼프다. 결국 트럼프는 조지아주의 대선 방해 혐의까지 포함해 지난 5개월 동안 모두 네 차례나 기소됐다. 그렇지만 특이하게도 기소된 이후의 트럼프 지지율과 모금액은 되레 급등했다. 사생활 문란에 민주주의 훼손 등 독불장군 스타일인 트럼프가 여전히 건재한 것이다. 왜 그럴까? 미국도 부가 일부 사람들에게 집중되며 일부 기득권층이 미국의 부와 권력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민주당 성향이다. 이들 기득권층이나 부유층에 대한 대다수 서민층의 뿌리 깊은 반감을 대표하고 결집해 낸 정치인이 다름 아닌 트럼프다. 세계를 지키고 돕는 착한 국가 노릇은 그만해야 한다는 미국민들의 생각을 담아 비개입주의를 표방한 것도 트럼프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지지자들의 성향과 딱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사실 트럼프가 열광적으로 지지를 받는 것은 기존 질서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역시 국민의 분노에 편승해서 자기 권력을 내쫓는 냉혈한이다. 트럼프가 과연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할까?
정치가 위험해지는 때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은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것이다. 좋은 정치인들이 배척되고 나쁜 정치인들,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것이다. 이성과 설득이 통하지 않는 극단적 유권자들의 등장은 민주주의 실패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결과물일 수도 있다. 정치가 위기에 빠졌다. 세계 정치가 위기에 빠졌다. 대한민국 정치가 위기에 빠졌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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