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프랑스민법전 완전 번역본 출간에 대한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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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프랑스민법전 완전 번역본 출간에 대한 소회
  • 오시영
  • 승인 2024.01.1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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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변호사(전 숭실대 법대 학장)
오시영 변호사(전 숭실대 법대 학장)

우리나라 법체계는 통상 대륙법계라고 불리며 영미법과 구별하고 있다. 1958년에 제정 공포되어 1960년부터 시행된 우리 민법은 부끄럽게도 일제 강점기에 조선민사령에 의해 시행되어 온 일본 민법을 상당수 계수하였다. 그런데 우리 민법이 시행 70여 년이 흐름에 따라 국가적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국민의 법의식이나 법 감정이 엄청나게 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가족법 관련 규정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제정 당시의 오래된 민법이 기본법으로 기능하고 있음은, 그 결과 1896년에 제정된 일본 민법의 영향력에서 우리가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완성된 민법전 체계는 한 국가의 독립성과 정체성, 국민 의식의 완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법률 하나가 우리의 삶 전체, 일상을 지배하는 힘을 발휘하는 잠재력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법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일본은 1890년에 프랑스민법전(1804년 제정)을 모법 삼아 민법을 제정하였으나 시행해보지도 못한 채 폐기한 후 제국주의 길을 걷게 되면서 1896년에 독일 민법을 계수하여 새로이 일본 민법을 제정하여 일부 개정 절차를 거치며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다. 광복 후 우리 정부는 법전편찬위원회를 구성한 후 우리 고유의 민법 제정에 나섰고, 다른 나라의 선진 법제를 다수 참고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본법제 하에서 교육받은 법학자들이 편찬위원 다수를 구성하다 보니 시간적, 재정적, 법률지식적 한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일본 민법의 영향을 과중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독일법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으나, 다행히도 같은 대륙법계인 프랑스민법의 일부 조항을 우리 민법이 받아들임에 따라 지나친 편중을 막을 수는 있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두 법체계의 불균형이 종합적이고 통일적인 민법 해석에 장애를 불러일으켜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연말 한불민사법학회(한국앙리까삐땅학회)가 프랑스민법을 전문 번역하여 박영사를 통해 “프랑스민법전”을 출간하는 대단한 수고를 하였다. 2,500여 조문에 이르는 방대한 프랑스민법을 전문 번역하여 1,000여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한 권의 법전으로 완간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작업에 대하여 프랑스 앙리까삐땅학회가 “최고의 메달인 베르메이(Vermeil) 금상”을 한국앙리까삐땅학회에 수여하면서 “아름다운 번역 완성”을 격찬하였다. 소르본느 법과대학(파리 제1대학)의 교수이자 위 학회 회장인 필립 뒤피쇼 회장은 “베르메이(Vermeil)상은 우리 학회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확고부동한 방식에 맞춰 공인된 학회의 규약에 적합하게, 법전화의 혜택을 공유하게 된 법률가들 사이의 지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학회 목적에 탁월한 공헌을 한 경우에 수여”된다는 수상 취지를 밝히기도 하였다.

1804년 3월 21일 “프랑스 국민의 민법전”이라는 이름으로 공포된 프랑스민법은 나폴레옹법전이라고도 불린다. 나폴레옹법전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대왕의 함무라비법전, 동로마제국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로마법대전과 함께 세계 3대 법전으로 불릴 정도로 법률로서의 영향력이 크다. 법 제정 당시 통일된 법이 없어 고대로마시대로부터 전해져 온 로마법의 잔재에 지역과 상황에 따라 중구난방식으로 교회법 및 관습법을 적용함으로써 통일성이 상실되어 혼돈과 분열 상태이던 프랑스를 순식간에 통일시켰다고 평가되는 프랑스민법전의 완성에 대해 나폴레옹 황제 스스로 “나의 진정한 영광은 마흔 번에 걸친 전쟁의 승리보다도 나의 이 민법전을 말살할 수 없다는 데 있다”라고 자화자찬할 정도였다고 하니, 완성된 민법의 위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사법학계에서 독일법과 일본법의 득세에 밀려 연구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소수일 수밖에 없었던 프랑스법 분야에서 1세대 학자라 할 수 있는 서울대 남효순 교수가 중심이 되어 뜻있은 젊은 프랑스민법 연구 학자 몇몇이 모여 2007년 초 소규모로 “프랑스민법 연구모임”을 결성하여 프랑스민법을 연구해오다가 2008년 한국민사법학회 소속 프랑스민법연구회로 정식 인정되어 계속 연구하며 자료를 축적해 오던 중 2017년 법무부와 정식으로 프랑스민법 번역 프로젝트 협약을 체결하고 5년여의 작업 끝에 마침내 프랑스민법 번역 완성이라는 대단한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다.

총 25명의 번역진이 5년여라는 절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수많은 토론과 의견 교환 과정을 거쳐 상호 비교와 분석을 통해 완성한 프랑스민법전(번역)은 직역을 원칙으로 하되 우리 민법과 최대한 일치하도록 번역에 유의하였고, 우리 어순과 다른 프랑스어의 특색을 참작하여 프랑스어 순을 최대한 존중하여 번역하였고, 조문에 항 번호를 붙이는 방식이 우리와 다른 프랑스민법의 항 계산방식을 우리 민법의 마침표 방식에 따라 번역하였고, 로마자가 표기된 프랑스민법 조항에 대하여는 이를 그대로 구별하여 번역하였고, 항을 표시하지 않은 프랑스민법 조항에 대하여도 마침표 방식에 따른 항을 표기하는 방식을 번역 기본원칙으로 정하여 번역한 점이 특징이라고 할 것이다.

“Ce qui n’estpas correct n’est pas français!(정확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어가 아니다!)”라는 프랑스 속담을 마음에 새기며 번역하였다는 번역진들의 얘기 속에 권철(성대), 남궁술(경상대), 박수곤(경희대), 송재일(명지대), 이은희(충북대), 이지은(숭실대) 교수와 정윤아 부장판사, 황재훈 변호사 등 낯익은 모습들이 보이기도 한다. 남효순 서울대 명예교수를 포함한 25명의 번역진 모두 수고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어 격려를 보내며, 많은 이들의 수고와 노력 끝에 출간된 “프랑스민법전”이 많은 법률가에게 사랑받는 비교법학적 측면의 귀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200여 년 이상 시행되어 오던 민법을 최근 들어 대거 개정한 프랑스나 100여 년 이상 시행되어 온 민법을 역시 대폭 개정한 일본에 비추어 2000년대 초기부터 20여 년 가까이 개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 정부도, 특히 10여 년 전 민법 개정안이 우리 민법학자들의 오랜 연구 끝에 힘들게 마련되었음에도 개정 절차가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음은 아쉬움이 크다고 하겠다. 우리 민법도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진정한 규율이 가능한 시대에 맞는 민법으로 종합적인 개정 절차를 밟아 살아 있는 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오시영 변호사(전 숭실대 법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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