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인들로부터 출판기념회를 한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연말 모임에 가면 현역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당협위원장이라는 사람, 지역에 이름이 어느정도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악수를 청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많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한다. 특히, 현역 국회의원이 아닌 정치 신인에게는 이름이라도 알리고 눈도장 한 번 찍는 기회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다.
내년에 있을 제22대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이 지난 12일부터 시작되었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은 선거기간개시일부터 선거일 전일까지에 한하여 할 수 있지만, 예비후보자로 등록하면 선거사무소 설치, 명함 배부 등 일정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현역의원들은 의정활동 보고 금지 기간(선거일 90일 전)까지 현수막 걸기, 공보물·명함 나눠주기, 문자메시지 보내기 등을 통한 선거운동을 사실상 제약 없이 할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늦게 예비후보자로 등록한다. 그러나, 정치 신인들은 일정한 선거운동이라도 해보고자 예비후보자 등록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예비후보자로 등록하면 선거사무소를 설치하거나 그 선거사무소에 간판·현판 또는 현수막을 설치·게시하는 행위, 자신의 성명·사진·전화번호·학력·경력, 그 밖에 홍보에 필요한 사항을 게재한 명함을 직접 주거나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 선거구안에 있는 세대수의 100분의 10에 해당하는 수 이내에서 자신의 사진·성명·전화번호·학력·경력, 그 밖에 홍보에 필요한 사항을 게재한 인쇄물을 우편발송하는 행위, 선거운동을 위하여 어깨띠 또는 예비후보자임을 나타내는 표지물을 착용하는 행위 등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예비후보자가 할 수 있는 선거운동 중에서 ‘선거운동을 위하여 어깨띠 또는 예비후보자임을 나타내는 표지물을 착용하는 행위’와 관련하여 최근에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예비후보자이던 피고인이 표지물을 양손에 잡고 머리 위로 들고 있는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함으로써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방법 이외의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위반으로 기소된 사안이었다.
사안의 쟁점은 표지물을 양손에 잡고 머리 위로 들고 있는 행위가 공직선거법에 의하여 허용되는 ‘표지물을 착용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표지물을 착용하는 행위’는 ‘표지물을 입거나, 쓰거나, 신는 등 신체에 부착하거나 고정하여 사용하는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며, 단순히 표지물을 신체의 주변에 놓아두거나, 신체에 부착・고정하지 아니한 채 신체접촉만을 유지하는 행위나 표지물을 양손에 잡고 머리 위로 들고 있는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하면서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50만원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표지물을 목에 두르면 허용되고, 손으로 들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등 대법원이 허용되는 선거운동의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공직선거법의 입법취지와 각 규정 간의 체계적 의미에 비추어 보면, 표지물에 관하여 허용되는 선거운동 범위를 입법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해당 조항의 ‘착용’이 가지는 의미를 해석으로 확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한다.
이제 예비후보자들은 표지물을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때 대법원 판례에 어긋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행 공직선거법은 현역에 비해 정치 신인이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기 어렵도록 높은 장벽을 만들어 놓고 있을뿐만 아니라 선거운동기간을 정하고, 사전선거운동 금지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항시적인 유권자의 의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기득권이 고착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공정한 룰 마련과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 자유 확대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
신종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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