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 27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이는 재판의 지연이 소송 당사자에게 부담을 가중하고 범죄 피해자의 구제를 늦출 수 있음을 인지한 조치이다. 실제로, 민사소송법(199조)은 소 제기 후 5개월 이내의 선고를 규정하고 있으며, 소송촉진법 21조에는 형사 사건은 ‘1심 기소 후 6개월 내’에 선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법원에서는 강제가 아닌 ‘훈시 규정’이라고 설명하지만, 법에 명시돼 있는 이상 취지를 고려해서라도 최대한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법적 요구와 거리가 멀다. 재판의 지연은 사법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며, 심지어 재판이 너무 늦어져 소송 당사자가 사망하거나 경제적으로 파탄에 이르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선출직 공무원들이 이러한 지연된 정의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재판 지연을 통해 임기를 마치거나 재선 준비를 하는 등, 이들은 사법 정의를 조롱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는 국민에게 법의 존재 의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법 사건 1심은 기소 후 6개월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 임기 4년을 83% 채운 시점이었다. 1·2심에 2년 4개월이, 대법원에서 1년 3개월이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3부는 지난달 29일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사건의 1심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 12명에 유죄를 선고했다. 문제는 재판이 시작되고 1심 선고까지 무려 3년 10개월이 걸렸다는 점이다. 그 사이 송철호 전 울산시장은 임기를 마쳤고, 황운하 의원도 항소심 일정 등을 고려하면 국회의원 임기를 채울 공산이 크다. 재판 결과가 확정되더라도 결국 ‘지연된 정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유례없이 지연된 재판은 ‘지체된 정의’를 넘어 ‘불의를 방조’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중앙지법이 이재명 대표의 측근인 김용 전 부원장에 대한 징역 5년의 선고를 내린 것은 빠른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는 기소 후 1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와 관련된 다른 사건들의 재판 진행은 상대적으로 더디다. 대장동·백현동 비리 사건과 같은 복잡하고 방대한 사건의 경우, 재판에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 사건과 같이 비교적 간단한 사건에서도 재판이 1년 2개월이 넘도록 지연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윤미향 의원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횡령 등 혐의) 1심이 1년 5개월 걸렸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자녀 입시 비리 등 혐의로 기소된 지) 3년 9개월인데 2심에 그냥 있다. 의도적 지연 아니냐는 말이 나오게 돼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는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재판 지연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결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국민이 사법부에 기대하는 것이 바로 재판의 신속한 해결임을 강조했다. 특히 사회적 중요성이 높은 사건일수록 재판 지연이 국민에게 정의롭지 않게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재판 지연 문제는 속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의 해결책으로는 취임 후 장기 미제 사건에 대한 특별 관리를 강조했다. 조 후보자는 “현재 법원장은 재판하지 않는데 (앞으로) 법원장에게 최우선으로 장기 미제 사건의 재판을 맡길 생각”이라고 했다. 조 후보자의 이러한 발언은 사법부의 존재 이유를 재확인하는 것이며, 신속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그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사법 시스템의 개선이 절실히 요구된다. 재판 지연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하며, 신속한 재판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재판 지연에 대한 명확한 책임 소재를 두고, 필요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재판의 신속함은 단순히 시간적 효율성을 넘어서, 사법 공정성과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를 통해 모든 국민이 동등하고 공정한 사법 절차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