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제3지대론 즉 제3당의 창당이다. 한국은 정당정치에서 의미 있다고 규정되는 유효 정당 수로 보면 양당제다.
문제는 거대 양당에 만족하지 않는 유권자 즉 무당파층이 35%에서 40%나 된다는 점이다. 또 양당 지지 유권자들도 적극적 지지자보다는 소극적 지지자가 더 많다. 그러다 보니 발 빠른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제3지대를 찾는다.
지금까지 제3지대는 ‘대체로’ 실패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만든 정당들은 두 가지다. 인물 아니면 지역주의. 인물 중심으로 결집한 통일국민당(정주영), 신정치개혁당(박찬종), 국민신당(이인제), 국민통합 21(정몽준), 창조한국당(문국현)은 잠깐 돌풍을 만들었지만, 정당의 생명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단명하기는 지역주의에 기초한 정당도 마찬가지다. 15대 총선에서의 자유민주연합이나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명멸하는 제3지대는 부나방을 유혹하는 화려한 불꽃일까? 아니면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일까? 선거마다 무한 반복하는 제3지대가 도대체 뭐길래 이러는지 궁금하다.
이 시점에서 제3지대에 대해 정치학적으로 분석해본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첫째, “양당제는 나쁜가?”와 둘째 “제3지대는 가능한가?”이다. 우선 “양당제가 나쁜가”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제3지대를 만드는 명분이 거대 양당이 유권자들의 정치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양당제와 다당제가 좋고 나쁜 것은 없다. 다만 제도론 관점에서는 두 가지 조건이 따라붙기는 한다. 하나는 정치학자 레이파트의 주장처럼 그 사회의 사회균열(갈등)과 정당체제가 맞아야 한다. 가령 스위스는 언어, 종교, 종족이 다르다. 이렇게 타협 가능성이 없는 사회적 갈등을 가진 국가는 비례선거를 기반으로 다당제를 만든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처럼 산업화의 갈등으로 자본과 노동을 중심으로 갈등하는 경우는 양당제가 유용하다. 한국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보여준 사회균열은 이념, 지역주의, 세대, 젠더다. 이들 복합적 균열은 타협 가능성이 없지 않고, 거대 양당이 포괄적으로 이슈를 흡수해서 해결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제는 다당제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국가 사례에서 민주주의 체제가 가장 확실하게 붕괴한 것은 대통령제와 다당제가 결합한 국가들이었다. 한국은 대통령제의 선호가 강하다. 따라서 다당제를 만드는 것이 다양성을 확보하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에 큰 부담이 된다. 다당제는 여당의 의회 과반수 의석 확보를 어렵게 할 것이다. 게다가 한국정치의 이념적 양극화 심화는 더 부담스럽다.
둘째 질문인 “제3지대는 가능한가?”로 돌아가 보자. 제3지대가 성공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첫째는 정당 요인이고 둘째는 유권자 요인이고 셋째는 제도 요인이다. 정당이 새로운 고지를 점령하려면 참신한 인물이나 먹히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또한, 제3지대를 대표할 수 있는 이념이나 추구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인물을 구하기 어렵다. 게다가 요즘은 새로운 이슈 발굴도 어렵다. 더 문제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가치가 막연하다. 지금까지의 제3당의 당명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망에 오를 수 있는 가치는 ‘개혁’ 혹은 ‘통합’이지만 중도 진영에서 개혁과 통합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극단적으로는 거대 양당의 도덕성이나 인물을 공격하는 네거티브전략으로 표를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막상 선거 끝나면 다시 지지는 얼어붙을 것이다.
유권자 측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제3지대가 노리는 유권자는 40%의 무당파층과 15% 정도 되는 각 정당의 소극적 지지자들이다. 수치상으로는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이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듀베르제가 지적한 대로 상대 다수제에서는 유권자가 사표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심리도 작동한다. 또한, 무당파층은 합리적 선택 차원에서 성과투표(경제투표 혹은 업적투표)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제3정당이 엄청나게 획기적인 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성과투표에서 선택받기 쉽지 않다. 네거티브 선거는 이들 유권자가 아예 투표를 기권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253석의 소선거구제 상대 다수제는 유권자들이 최종적으로는 거대 양당 후보를 지지하게 만든다. 최근 여론 조사를 봐도 제3당을 지지하겠다는 유권자는 10% 내외다. 만약 국회 의석수를 360석 정도로 늘리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면 제3지대 정당은 비례투표를 통해 꽤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거대 양당이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는다. 2020년 선거에서 마지막에 위성정당을 만든 것을 생각해보라!
제3지대의 정당이 의석을 확보하는 데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선거제도 개편이다. 그리고 정책이나 가치로 승부를 봐야 한다. 하지만 양당이 자기 살을 도려내는 선거제도 개혁을 주도할 리 없다. 그래서 제3지대는 부나방처럼 뛰어들지만 언제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시지프스의 운명인 것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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