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18)-건전한 상식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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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18)-건전한 상식을 생각하며
  • 박준연
  • 승인 2023.11.1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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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몇 년 전 지금은 은퇴한 선배 변호사와 함께 미팅에 참석했을 때 글로벌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반부패, 경쟁법 컴플라이언스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질문이 있었다. 그때 선배는 구체적인 답을 한 후, 변호사가 아닌 임직원으로서는 기업의 내부 지침과 관련 법규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건전한 상식에 근거해서 비즈니스 과정의 판단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 이후로 가끔 이 건전한 상식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기술적인 법적 지식에 비해 중요성이 많이 간과되는 부분이 바로 변호사의 상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로스쿨에 입학한 후 시험 답안은 IRAC의 구성으로 작성한다고 배웠다. 시험 답안뿐 아니라 변호사로서 리걸 메모를 작성할 때도 이렇게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사실관계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을 찾아(issue), 관련된 법률과 판례를 정리, 서술하고(rule), 사실관계를 고려, 이슈에 대해 원칙을 적용하여(application), 결론을 내리는 것(conclusion)이다. 이 IRAC 구성은 이슈만 찾으면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막상 시험 답안을 쓰거나 리걸 메모를 작성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법률도 판례도 내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이슈를 완벽하게 커버하는 형태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로 적용되는 법 원칙이 분명한 경우라면 굳이 변호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미국에서 로스쿨을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문제가 있다. 공원에서 차량(vehicle)을 금지하는 규칙이 있는 경우, 그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규칙 위반인가 하는 문제이다. 딱히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고, 로스쿨 신입생이 법적 사고를 배우는 연습 문제이다. 규칙은 자전거를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으므로, 결론을 어떻게 내리든 IRAC 구성의 A, 규칙 적용에서 일종의 논리적 비약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비약(왜 차량이 자전거를 포함하는지, 포함하지 않는지)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건전한 상식이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스터디그룹에서 농을 섞어 ‘내추럴 본 고시생’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일 한결같이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는 아르바이트하면서 보냈다. 외골수 기질이 없지 않고 혼자서 진득하게 무언가를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내 성향 탓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로서 일상적으로 IRAC의 A를 고민하면서 이런 성향이 원칙을 적확하게 적용하는 데 있어 혹시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A가 사회 전반의 상식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우려이다.

뉴스에서 형사 피고인에 대한 정상 참작이나 양형이 사회의 일반 상식과 많이 괴리되었다는 비판을 접할 때가 있다. 판검사를 비롯한 변호사들이 단순한 ‘법 기술자’가 아니고 이 A의 과정에서 재량권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나도 종류와 성격은 다르지만, 재량을 가미해 직업적 판단을 내릴 때가 있다. 항상 땅에 발을 굳건하게 디디고 있는(down to earth) 사람, 그리고 직업인이 되려고 한다. 판단을 내릴 때 케이스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물론이고 여가가 생기면 영화, 드라마, 픽션 등 간접 경험을 가능케 하는 매체들을 의식적으로 접하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절대 당연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라 생각한다.

박준연 미국변호사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 ‘Latham & Watkins’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로펌인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 도쿄 오피스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hs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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