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39)-이중배상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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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39)-이중배상금지
  • 신종범
  • 승인 2023.11.1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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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군에 입대하여 복무 중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간혹 발생한다. 고(故) 홍정기 일병 사건도 그랬다. 고인(故人)은 2015년 8월 입대하여 복무 중 몸에 멍이 들고 구토를 하는 등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었지만, 부대에서 상급 병원에 보내지 않았고, 제때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해 입대 7개월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사인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따른 뇌출혈이었다. 유족 측은 군이 고인(故人)에게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월 재판부는 국가가 유족에게 2천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화해권고결정을 내렸지만 국가를 대리한 법무부는 이중배상금지 규정을 근거로 수용하지 않았고, 지난 10월 재판부는 유족 측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군 의료체계에 문제가 있음이 증명되었지만, 법무부가 화해권고결정을 불수용하면서 근거로 제시한 것과 같이 현행법이 이중배상을 금지하고 있는 이상 유족 측의 청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와 재판부가 제시하고 있는 이중배상금지는 헌법과 국가배상법이 각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29조 제1항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제2항에서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ㆍ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라고 하여 군인 등의 경우에 국가배상청구권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29조 제2항에 근거하여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는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또는 예비군대원이 전투·훈련 등 직무 집행과 관련하여 전사(戰死)·순직(殉職)하거나 공상(公傷)을 입은 경우에 본인이나 그 유족이 다른 법령에 따라 재해보상금·유족연금·상이연금 등의 보상을 지급받을 수 있을 때에는 이 법 및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헌법과 국가배상법의 규정은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또는 예비군대원과 같이 업무 자체에 내재한 본질적 위험성이 높은 특정 직무종사자에 대하여는 개별 법령에 사회보상적 보상제도를 별도로 마련하고, 그와 경합되는 의미에서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금지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라고 설명되는데, 이를 ‘이중배상금지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중배상금지는 1965년 베트남 전쟁 파병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군인들은 전사 여부나 부상 정도에 따라 보상금은 물론 소송을 통한 별도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국가의 재정 부담을 우려한 박정희 정부가 1967년 국가배상법을 개정해 군인은 보상만 받고 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국가배상법 규정에 대한 위헌 논란이 있었고, 1971년 대법원은 이중배상을 금지한 당시 국가배상법 규정이 위헌이라는 결정(당시에는 헌법재판소가 존재하지 않았고, 대법원에서 법률의 위헌여부를 심사하였음)을 하였다. 그러자,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이중배상금지 규정을 아예 헌법에 명시하였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71년 대법원이 위헌결정을 내렸듯 이중배상금지는 군인 등의 국가배상청구권을 합리적 이유 없이 제한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으나, 헌법에 직접 규정되어 있다보니 위헌심사대상 조차 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이중배상금지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기도 했지만 헌법 개정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헌법 개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유족의 별도 권리인 위자료 청구권까지 이중배상금지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과 법률상 보상금 산정에 유족의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위자료를 포함하지 않고 있어 별도의 위자료 청구권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반영하여 국가배상법 제2조 3항을 신설해 전사하거나 순직한 군인 등의 유족이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배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개정안 부칙에는 개정법 시행 당시 본부심의회·특별심의회 또는 지구심의회에 있는 사건, 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 사건에 대해서도 이를 적용하기로 하는 규정이 담겼다고도 한다. 고(故) 홍정기 일병의 상소심이 끝나기 전에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1심과 달리 유족 측의 청구가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조속히 심사에 나서 주었으면 좋겠다.

신종범 변호사
http://blog.naver.com/sjb629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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