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44-가압류에 신중해야 할 이유
상태바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44-가압류에 신중해야 할 이유
  • 손호영
  • 승인 2023.11.10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가압류는 상대의 재산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하는 보전처분이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임시’로 하는 것이니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본안에서 가압류할 권리가 없었다고 차후 판정되는 경우, 그러한 가압류를 과연 정당하게 볼 수 있을까요? 실무적으로 ‘가압류’는 일단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운데, 그 리스크는 없을까요?

당연하게도 그러한 가압류는 ‘부당’ 가압류라고 하여, 법리가 있습니다. “비록 가압류가 법원의 재판에 의하여 집행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부당한 가압류에 관하여 고의 또는 과실이 있는 가압류채권자는 그 가압류집행으로 인하여 제3자가 입은 위와 같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대법원 2006다24872 판결).”

하지만 이런 법리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장님께서는 저에게 이러한 ‘부당 가압류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지 않다면서, 언젠가 이 부분이 쟁점이 될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최근 부당 가압류에 대한 판결이 하나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피고 반도체 회사의 레이저 장비 제조를 위한 프로그램 기술 등 여러 기술정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시스템제어 연구부에서 근무하던 근로자 4명이 퇴사한 뒤, 원고 회사에 전직합니다. 이때 근로자 중 일부는 피고 반도체 회사의 기술정보가 기재된 여러 파일을 허락 없이 복사한 뒤 원고 회사의 업무용 컴퓨터에 저장해두었습니다. 이에 피고 반도체 회사는 근로자 중 일부를 고소하였고, 일부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피고 반도체 회사는 이제 원고 회사와 근로자 4인을 상대로 ‘영업비밀과 저작권을 침해하여 손해를 입혔다.’며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1심 판결 선고 전에 ‘영업비밀 침해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하여, ‘원고 회사가 삼성전자에 대하여 가지는 물품대금청구권 중 51억 원 상당’에 대해 채권가압류를 합니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그에 대한 금액 상당을 집행공탁하였습니다.

이후 1심 법원은 4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선고하였는데, 모두 항소하였고 2심 법원은 손해액을 3,000만 원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원고 회사는 3,00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변제공탁한 뒤, 가압류취소를 받아냅니다.

결과를 받아들고 돌아보니, 피고 반도체 회사의 원고 회사에 대한 정당한 손해배상액은 ‘3,000만 원’입니다. 그런데 피고 반도체 회사는 원고 회사에 대하여 그의 채권을 ‘51억 원 상당’을 가압류했습니다. 이제 원고 회사는 피고 반도체 회사의 가압류가 ‘부당’했다며, 손해배상청구를 합니다. 공수가 바뀌는 순간입니다.

대법원은 부당가압류 법리를 원용해 피고 반도체 회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합니다. “채권자가 가압류신청에서 진정한 채권액보다 지나치게 과다한 가액을 주장하여 그 가액대로 가압류 결정이 된 후 본안소송에서 피보전권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부분의 범위 내에서는 채권자의 고의·과실이 추정된다. 다만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에 손해부담의 공평을 기하기 위하여 가해자의 책임을 제한할 수 있으므로, 보전처분과 본안소송에서 판단이 달라진 경위와 대상, 해당 판단 요소들의 사실적·법률적 성격, 판단의 난이도, 당사자의 인식과 검토 여부 등 관여 정도를 비롯한 여러 사정에 비추어 채권자에게 가압류 집행으로 인하여 채무자가 입은 손해의 전부를 배상하게 하는 것이 공평의 이념에 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면 채권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 “피고가 자신이 주장하는 손해의 일부에 관하여 상당인과관계가 부정되거나 기여율이 감경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그 부분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가압류신청 및 집행을 한 결과 최초 가압류한 금액이 정당한 채권으로 확정된 3,000만 원의 약 170배에 달하였다. 그럼에도 상당인과관계나 기여율의 판단이 어렵다는 사정을 들어 그로 인한 불이익과 손해를 모두 원고에게 감수하도록 하는 것은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담 및 자기책임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으므로 피고의 과실 추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액수는 어떨까요? 여기에도 법리가 있습니다. “금전채권에 있어서 부당한 보전처분으로 인하여 그 채권액을 제때에 지급받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통상의 손해액은 그 채권액에 대한 민법 소정의 연 5%의 비율에 의한 지연이자 상당액이라 할 것이고, 이 채권이 공탁되었다면 그 공탁금에 딸린 이자와의 차액 상당액이 손해액이 된다고 할 것이다.” 이 법리를 적용한 결과 ‘부당 가압류’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약 5억 원을 지급할 의무가 발생하였습니다(이후 책임제한까지 고려).

피고 반도체 회사는 오랜 송사 끝에 원고 회사의 영업비밀 침해로 인해 3,000만 원을 배상받을 수 있었는데, 부당 가압류로 인해 원고 회사에 5억 원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 송무에 있어 법리에 밝아고 리스크 관리를 잘 해야 하는 이유를 새삼 새겨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