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규 칼럼] 6. 국가정보학을 발전시킬 3가지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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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진규 칼럼] 6. 국가정보학을 발전시킬 3가지 방안
  • 민진규
  • 승인 2023.11.10 10: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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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정책결정권자를 보좌할 학문적 리더십 확보에 실패
퇴직자의 경험·직책은 국가정보학 연구할 역량과 무관해

1901년 제정된 노벨상(Noble Prizes)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이 남긴 유산으로 상금을 지급한다. 매년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경제학, 문학, 평화 등 6개 부문에서 인류 문명의 발달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 중에서 선정한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120년 동안 학계에서 노벨상을 받은 한국인은 1명도 없다. 매년 연말이 되면 우리나라 언론은 한국인 중에서 누가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 호들갑을 뜬다, 하지만 세계의 높은 벽에 좌절감만 느끼게 만든다.

국가정보학은 학문으로 정립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주류 학문의 변방에 머물고 있다. 우수 인재가 모이고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정보기관의 발전에 꼭 필요하지만 성과는 미진하다. 정보 관련 업무에 30년 이상 종사한 전문가의 관점에서 국가정보학을 발전시킬 3가지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국가정보학을 발전시킬 3가지 혁신 방안 [출처=iNIS]
▲국가정보학을 발전시킬 3가지 혁신 방안 [출처=iNIS]

참고도서조차 없는 도서가 출간되며 학문적 신뢰 추락

미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중앙정보국)의 창설을 지도했던 예일대 셔먼 켄트(Sherman Kent) 교수는 국가정보기관의 구성, 임무, 발전 방향을 포함한 국가정보학을 정립해 국가정보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국가정보원과 정보직 군무원 시험과목에 포함됐다. 침체된 국가정보학의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아보자.

첫째, 국가정보학 관련 양질의 도서·논문의 발간이 늘어나야 한다. 지난 18여 년 동안 국가정보학 관련 전문도서는 10여 권도 채 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비슷비슷한 내용이 대부분이며 선진 정보기관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내용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국가정보학을 연구하려는 학자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심도 깊은 논문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단순 조사결과나 현상에 대한 개략적인 서술로 학술적 가치가 없는 논문이 다수다. 정부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논문도 질적으로 나은 점이 없다.

미국 CIA처럼 분기별로 계간지를 발간해 국가정보학을 연구하기 위한 각종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양질의 책과 논문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국가 비밀이 아닌 내용이라 비밀로 보호할 가치가 낮은 자료를 대폭 개방하고 자체 연구결과를 공개해 마중물을 부어줘야 한다.

둘째, 공허한 이론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학문이 되도록 연구 방향을 잡아야 한다. 시험문제는 현장에서 정보요원이 부딪힐 수 있는 상황을 해결할 지식을 평가하도록 설계돼야 한다. 시험성적이 뛰어난 사람이 업무수행을 잘 하는 것이 당연한 데 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간다.

국가정보학은 정보활동, 비밀공작활동, 방첩활동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치학, 행정학, 국제정치학, 군사학, 보안학 등이 융·복합돼 있다. 특히 정보분석, 비밀공작활동, 방첩활동 등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미진해 현장 실무자가 활용할 지식은 부족한 실정이다.

민간 전문가와 협력을 강화해 민관에 공통으로 적용할 이론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펼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게 정보역량을 강화할 정보와 이론을 제공하는 것이 정보기관과 정보전문가의 임무다. 지난 60년 동안 민간과 괴리된 것도 이 부문도 소홀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셋째, 양질의 도서나 논문이 발간되려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강화돼야 한다. 정보현장 경험이 없거나 연구역량이 부족한 내·외부 전문가가 국가정보학을 연구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선행 연구결과를 베끼는 수주에 머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존 책의 목차를 일부 통합 혹은 순서를 변경해 발간하는 책이 대부분이다.

일부 책은 수백 페이지에 달하지만 참고 도서가 한 권도 없어 황당함을 감추기 어렵다. 몇 페이지짜리 소논문을 작성하려고 해도 수십 권의 참고도서, 수십 편의 논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연구자는 없다. 시험문제가 공개되지 않는데 20여 년에 걸친 다양한 기출문제를 어떻게 확보했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유형의 도서를 출간해 전문가로 행세한다니 한심하다 못해 참담한 심정이다. 국정원이나 군 정보기관에서 30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했다고 해도 학문적 기반을 갖춘 것은 아니다. 어설픈 전문가가 넘치면 국가정보학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학계 전체가 리더십을 잃고 고사된다.

종합하면 국가정보학이 최고정책결정권자의 보좌하는 국가정보기관을 발전시킬 주춧돌이 되려면 고도로 정제된 지식을 통한 이론 정립이 우선돼야 한다.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뛰는 3류 운동선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해외 자료를 연구해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보유해야 정보전문가

정보기관에서 퇴직한 이후 후학을 양성하겠다며 국가정보학 책을 출간하고 강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직업의 선택은 자유이고 학문을 연구하며 가르치는 노년의 삶은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선행 연구결과를 베끼며 연구자로서의 양심마저 져버린다면 존경을 받을 수 없다. 국가정보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우선 국가정보학 관련 도서나 논문을 집필하려면 해외의 연구결과를 광범위하게 공부해 지식 기반의 리더십(leadership)을 확보해야 한다. 국내에 출간된 유사한 책이나 논문으로 특색이 있는 산출물을 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으로 된 자료는 많이 읽어야 한다.

정보기관에서 퇴직할 당시의 직급 혹은 직책은 좋은 학자가 될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장기간 쌓은 현장 경험은 학문을 연구하는 기초자료에 불과하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해외 전문 서적을 읽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하지 않으면 공허한 지식이며 쓸모가 없다.

다음으로 과거의 사례를 나열하는 연구방식을 넘어 문제해결(problem-solving) 능력을 갖춘 전문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반복적인 업무 처리에 최적화된 경험으로 새롭게 생성되는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민간이든 공조직이든 정보전문가는 정보소비자의 고민을 해결해줘야 한다.

간혹 퇴직자 중 민간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며 정보환경의 변화를 탓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일수록 환경이 아니라 정보활동의 주체인 자기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화려한 과거를 술안주로 읇조리며 허망한 노년을 보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픈마인드(open minded)로 다양한 학문과 교류하는 연구 태도가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디지털 혁명, 글로벌화, 경제 블록화 등 치열한 생존 경쟁의 한복판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다. 정책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려면 경제학, 경영학, 심리학, 보안학,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등을 수용해야 한다.

정보기관에서 퇴직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풍부한 지식을 갖춘 엘리트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꼰대 기질을 버리지 못해 다른 분야와 융화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국가정보학은 아직 최고정책결정권자를 보좌할 훌륭한 정보전문가를 육성할 이론을 정립하지 못했다.

- 계속 -

<strong>민진규</strong>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민진규 교수
現 국가정보전략연구소(www.inis.kr) 소장
종로국가정보학원 국정원·대통령경호처 논술/면접/국가정보학 전임 교수
종로국가정보학원 국립외교원·외무영사직·출입국관리직 면접 전임교수
공시마 공기업 자소서/면접 전임교수
前 국방부 정보부대 정보분석관(예비역 공군 대위)
칼럼 내용 문의 : 민진규 교수(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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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2023-11-13 03:40:31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훌륭한 글입니다. 갈수록 정보가 중요해지는 세상에서 민진규 님의 칼럼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국가정보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유익한 글 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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