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59, 별들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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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59, 별들의 이름
  • 최용성
  • 승인 2023.11.0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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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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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오랜 시절부터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숙고하여 왔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알아야 교육과 법, 정치, 경제 등 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틀을 제대로 설계할 수 있으므로 이것은 현실과 연결된 물음이다.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보면, 엄격한 규율을 정하여 악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훈육하고 위반자에게는 엄한 제재를 하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반면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보면, 선한 본성이 발현되어 더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이끄는 방향이 강조된다. 역설적인 것은, 인간의 악함을 억제하기 위하여 억압적인 강경 수단을 선호하는 성악설조차, 그 목표는 선(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창궐하면 공동체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성악설의 맹점이 있다. 인간이 본래 악하다면 본성대로 살지 말아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성이 악하면, 선을 가르쳐도 결국 헛수고가 될 것이다. 따라서 실제 인간의 본성이 어떻든 적어도 사회·국가 공동체, 나아가 인류라는 종의 존속을 위하여 성선설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한다.

현대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맹자(孟子)는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보았다. 인간에게는 네 가지 마음의 씨앗 또는 싹(四端)인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있고, 이 싹이 발현되어 네 가지 덕(四德)인 인, 의, 예, 지를 이룬다. 모든 덕의 으뜸이라 할 인(仁)은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나온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선하여도 그것이 제대로 싹터 자라지 못하고 이기적 욕망과 충동으로 불의를 저지를 위험이 있다. 여기서 맹자는 특별히 의(義)를 강조한다. 의롭지 못함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불의에 분노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에서 의(義)가 자라난다. 의를 실현하는 길에는 의롭지 못한 군주를 끌어내리는 저항권 사상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인과 의만으로 인간은 완성되지 않는다. 겸손하게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성장하여 사람다운 예(禮)를 이루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을 통하여 잘못된 길을 피하는 지(智)가 구현된다. 무릇 사람이라면 사단과 사덕을 고르게 가져야 한다는 맹자의 사상은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인권, 인본주의, 자유민주주의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경이로운 정신적 유산이다.

참담하게도, 지금 이 땅에 측은지심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이 보인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고통스럽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하던 현장 바로 옆에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으며 조롱하고 모욕하면서 낄낄대던 이들이 있었다. 은폐된 진실을 두고 희생자들을 가슴에 묻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유족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게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의 도리이지만, 그럴 수 없다고 하면 사양지심으로라도 거리를 두고 지켜보기만 하는 정도의 선을 지켜야 그래도 사람이다. 그런데 짐승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행태는 2022년 10월 29일 대참사 이후에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서양 귀신놀음' 축제에 놀러 간 것을 두고 희생자를 비난하는 그들의 마음을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바로 그렇기에 오히려 더 일어나서는 안 될, 더 슬픈 사고였는데 말이다. 놀고 싶을 때 놀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자유를 맘껏 즐기는 세상이야말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개인의 행복 추구를 으뜸가는 인권으로 보장하는 대한민국헌법이 추구하는 세상이고 그럴 때마다 안전을 보장하라고 국가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사단과 사덕의 어느 하나도 갖지 못한 이들이 내뱉은 짐승의 언어는, 불행히도 귀하게 생존했던 고등학생 이재현 군을 159번째 희생자로 만들었다. 그렇게 빛나던 우주,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는 159명이 황망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전에는 애도를 그칠 수 없다는 것이 어찌 과도한 요구란 말인가? 당연한 존중받아야 할 정당한 요구이다.

쉽게 방지될 일을 막지 못한 참사, 권한을 가진 자 중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현실, 희생자들을 공격하는 언행에 부끄러워하고 분노하는 것이 수오지심이고 의로움이다. 용산에 옮긴 대통령실 경비에 집중하느라, 대대적 마약 단속에 시민 안전은 뒷전으로 미루느라 경찰 인력배치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용산구청장이 숙련된 공무원들을 갈아치우고 방치한 잘못은 없는지, 행안부 장관이 사고 발생이나 사고 후 수습과정에 잘못한 일은 없는지, 사고 후 왜 시신을 멀리 떨어진 여러 곳에 분리해 놓았는지, 어째서 유족을 배제한 채 위패와 영정 없는 추모공간을 만들었는지 등등 의문이 너무 많다. 그래서 정확한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전에 유족들은, 생존자들은 그리고 그에 공감하는 우리는 희생자 159명을 떠나보내지 못한다. 그래서 2023년 10월 29일 서울광장 앞에서 피해자 159명, 별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 우리는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목놓아 외쳤던 것. 159명의 별을 기억하지 않으면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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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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