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17)-다언어 업무 환경과 외국어 학습에 대한 소회
상태바
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17)-다언어 업무 환경과 외국어 학습에 대한 소회
  • 박준연
  • 승인 2023.11.03 1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준연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요즘에도 이런 표현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로스쿨에 진학할 때는 ‘토종’ 유학생이라는 표현을 썼다. 영어권 국가에서 생활 경험이 없이 미국 로스쿨에 진학한 나 같은 경우를 토종이라고 했다. 영어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운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나 역시 미국 로스쿨에 유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고 있는지 전전긍긍해오고 있다. 하지만 영어, 우리말, 일본어를 함께 쓰는 업무 환경에 있으면서 남뿐만 아니고 나 자신의 외국어와 언어 구사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외국어 학습과 우리말 학습은 근본적으로 다른가?

한국을 떠나 업무상 한국어를 접하다 보면 글과 말의 변화를 더 민감하게 느낄 때가 있다. 신조어, 처음 보는 약어, 원래 있는 말이라도 용례가 변하는 경우 등등. 인터넷에서 새로운 우리말을 접하면 일단 검색하기 전에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짐작부터 해 본 다음 검색을 해 보려고 하는데, 생각해 보면 이건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많이 썼던 공부법이었다.

또 업무상 우리말을 쓰다 보면 구어에서도 미묘한 변화를 느낄 때가 있다. 특히 불합리한 권위주의에 대한 비하로 ‘꼰대’라는 표현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조직 내에서, 또 조직 밖에서 권위에 대한 우리말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외국어뿐 아니라 우리말 역시 이런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예전 코미디에서나 나오던 외국서 오래 살아서 우리말 어눌한 한국인 모습과 다를 게 뭐가 있나 싶어서 우리말이라고 해서 방심하지 않으려고 한다.

‘네이티브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로스쿨 3년 과정 동안 가장 힘들었건 시기는 처음 미국 생활을 시작했던 1학년 1학기였다. 다들 여행가고 싶어 하는 뉴욕 맨해튼이었지만 낯선 생활 환경이었고 미국인 클래스메이트들 역시 출신 지역에 상관없이 힘겨워하던 시기였다. 첫 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시험공부야 우리나라에서 많이 했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말고사 후 몇 주 후에 나온 성적은 실망스러웠다.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타지에서 외국어로 공부를 하다 보니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 의기소침하게 보낸 후 정신을 차려 예상보다 성적이 실망스러웠던 과목의 교수님들을 찾아갔다. 그중 하나가 계약법이었는데, 교수님께 한국에서 유학 왔는데 영어로 수업 듣고 시험을 보는 게 힘들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운을 떼면서, 나 같은 케이스에 대해 조언이 있으면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교수님은 내 답안지를 꺼내서 보시면서 나는 네가 유학생인지도 몰랐다고 하셨다. 그리고 시험 점수 계산과 성적 산정에 관해 설명해 주셨다. 요컨대, 중요한 요점을 빠뜨린 것이 있어서 감점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영어 네이티브가 아니라는 것을 변명으로 삼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언어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은 글과 말을 되도록 많이 접하려고 하고, 내가 나중에 써먹을 만한 표현이 있으면 따로 적어두었다가 활용한다. 하지만 좋은 글, 말을 결정하는 제일 중요한 요인은 기교나 유려한 표현보다는 좋은 내용과 탄탄한 구성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은퇴한 선배 변호사가 외부에 팀을 소개할 때 나는 브로큰 잉글리시 밖에는 못하지만, 우리 팀원 변호사들은 똑똑해서 몇 가지 언어를 한다고 농담 섞어 설명하곤 했다. 그런데 이 선배는 전혀 못 하는 외국어라도 통역을 듣다가, 번역을 보다가 이렇게 영어로 옮기는 게 맞냐는 예리한 지적을 하곤 했다. 내용에 천착하는 것이 언어의 기교를 배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준연 미국변호사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 ‘Latham & Watkins’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로펌인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 도쿄 오피스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hsf.com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