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구도 죽지 않는 일터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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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구도 죽지 않는 일터를 간절히 바라며
  • 강은희
  • 승인 2023.10.3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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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건강정책포럼의 ‘사내하청의 산재 예방 실태와 개선 과제 토론회’에 참여했습니다
강은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강은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2023년 9월 1일에 노동건강정책포럼의 ‘사내하청의 산재 예방 실태와 개선 과제 토론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대재해 기소 사례를 중심으로 한 도급인의 산재예방의무 법률 분석 파트의 발제를 맡은 덕분에 지금까지 기소된 중대재해 사례들과 선고된 판결들을 볼 기회가 생겼고, 발제자 또는 토론자로 초대된 공공운수노조 발전 비정규직 대표와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장, 현장 안전관리자, 그리고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위원 덕분에 현장의 고충과 노력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23년 6월 말을 기준으로 올 한 해에만 벌써 392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고를 당하여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 숫자인지는 한국의 사고 사망자 수를 한국보다 조금 더 인구가 많은 영국의 사고 사망자 수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021년 기준 한국보다 무려 천만 명이나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영국에서는 2021년 산재 사망자 수는 1년을 통틀어 142명이었습니다. 사고사망자의 대다수는 하청업체 근로자입니다. 국정감사를 통하여, 통계가 존재하는 2022년 1월 27일부터 2022년 9월 30일을 기준으로 봤을 때,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446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 70%가 하청 근로자였습니다. 통계는 산업재해에 있어 원하청 관계를 들여 다 볼 필요가 있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날 토론을 맡은 현장 노동조합원들과 안전관리자는 경험으로 통계에 나타난 사실을 확인하며, 구체적으로 하청 노동자의 사고 사망 비율이 높은 이유 그리고 사고 사망을 줄이기 위하여 필요한 일들을 정리해주었습니다. 특히 현대중공업지부에서는 원청이 50인 미만 소규모 업체와 단기 하도급 계약을 맺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단기계약업체는 1~3개월 단위의 물량을 계약 기간 내에 처리하는 업체로, 짧은 시간 안에 계약된 물량을 쳐내야 하므로 안전에 소홀합니다. 또한 현장의 안전감시자에게 담당 업무 외에 청소 등의 작업을 추가로 부여되고 있어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공공운수노조 발전 비정규직 대표는 고 김용균의 사망 이후, 발전산업 안전강화 대책을 소개하였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안전보건 관련된 원하청 논의기구의 운영, 2인 1조로 일할 수 있는 인력의 일부 충원, 사업장 위험 요인의 확인하고 개선, 계약기간 연장과 적정노무비 지급 등 노동조건 개선 그리고 안전관련 원청의 내부평가 지표를 개선하고 노동환경 개선 노력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포함한 것 등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조치는 긍정적이었다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청업체 산업안전보건 관리감독을 위한 충분한 인력이 충원이 되지 않고 있고 하청노동자들의 약속된 정규직 전환은 미이행되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발제를 맡으며 중대재해처벌법 기소 사례의 공소장들과 지금까지 선고된 다섯 건의 판례를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수립할 의무를 부여합니다.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노동자의 사망과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는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통하여 보호해야 하는 대상을 ‘종사자’로 설정하고 이 종사자에 하청노동자를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가 이루어진 사건에서는 사망한 노동자가 하청 노동자인 경우에는 원청의 경영책임자가 기소 되어,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음이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사례의 공소장을 읽다 보면 참담하고 슬픕니다. 고소작업에서 안전난간조차 설치하지 않아 노동자가 추락하거나, 중장비를 사용하는 공사현장에서, 공사기계 뒤에 신호수가 없어 기계 운전수가 노동자를 치거나, 낡은 장비가 끊어져 무거운 물건이 노동자 위로 떨어지는 등 너무나도 예방 가능한 일로 사람이 죽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위 사업장들에서는 종사자의 의견 청취 절차, 위험 요인 확인 작업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외형조차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무엇보다 존재하지 않으니 공소장의 유죄 주장도 간단해지더랍니다.

사고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주로 충분한 안전보건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서, 안전관리 매뉴얼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서, 도무지 안전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듯한 작업기한이 주어져서 등 경영책임자들의 이윤을 앞세운 결정에 있었습니다. 원하청 관계에서는 원청의 작업기한과 작업 비용을 맞추려는 하청의 욕구와 최대한 가성비를 추구하려는 원청의 욕구가 하청노동자의 안전을 더욱 사각지대로 몰아놓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에는 구체적인 안전관리 행동의무를 부여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1982년부터 존재하였으나 이 법을 통해서는 원청 그리고 하청의 대표가 아닌 현장의 관리소장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주로 처벌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산업안전보건법의 원인과 처벌의 괴리는 높은 산재 사고사망자 수가 계속되는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법으로라도 경영 판단을 함에 있어 안전을 고려하도록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할 직접적인 책임을 부여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꼭 필요합니다.

토론회는 사내하청의 산재 예방을 위하여 우리 모두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끝이 났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진정으로 무엇보다 소중한 일터가 만들어지기 위하여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겠지요.

강은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3년 9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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