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20세기는 전쟁의 시대이고 21세기는 평화의 시대인가?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20세기는 전쟁의 시대이고 21세기는 평화의 시대인가?
  • 신희섭
  • 승인 2023.10.20 1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이 끝났을 때 인류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 6만 개가 넘는 핵탄두를 발아래 깔고 일상생활을 하던 인류가 더는 강대국 간 전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탈냉전. 이것은 너무나도 큰 변화를 의미했다.

소련 붕괴와 함께 21세기도 시작되었다. 1차 대전이 시작된 1914년에 시작된 20세기는 1991년으로 끝났다. 20세기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과 냉전으로 채워졌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여기에 좀 더 보태면 20세기는 파괴의 시대이자 폭력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가 20세기와 완전히 다를 수 있을까? 21세기 초반은 20세기와 달랐다. 미국의 패권과 중국과 러시아의 세계 시장경제로의 유입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있었다. 확실히 평화로운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국제정치학계의 미국 패권의 변동 가능성과 안정성 논쟁일 것이다. 전쟁 가능성이 그만큼 현실적이지 않으니 이론으로 논쟁을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눈을 돌려 보면 21세기는 폭력과 무력투쟁 그리고 전쟁으로 얼룩져있다. 1990년대의 소말리아 사태나 르완다 사태 그리고 유고의 붕괴과정은 무정부상태나 마찬가지인 국내정치의 위험성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아프리카 곳곳에서 내전이 발생했고 이들 내전은 긴 시간 동안 길고 어두운 살육전으로 이어졌다.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파키스탄은 인도와 카르길 전쟁을 강행했다. 러시아는 체첸인들과 전쟁을 했고, 그루지야에 평화유지군을 보낸다는 명분으로 영토를 점령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그러는 사이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추구하는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했다. 이 흐름 속에서 2022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2023년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했다.

그렇다. 21세기는 강대국 간 전쟁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 시기다. 하지만 전쟁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국가 내 종족 집단과 종교집단은 여전히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또 현상타파적 강대국은 주변 약소국에 군사적 개입을 감행하고 있다. 핵무기로 무장하고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강대국에 전쟁은 남는 것이 없는 장사다. 하지만 적개심이 강력하고 상대방을 인정할 수 없는 집단들에게 내전이나 전쟁은 언제든 가능하다. 이것은 21세기라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많은 국제정치학자의 분석대로 국제정치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동시에 작동한다. 원심력은 국가와 정치공동체를 분리하고 갈등하고 극단적일 때 전쟁도 불사하게 만든다. 유고연방의 분리가 대표적이다. 반면 구심력은 국가들이 협력하게 만들고, 정치·경제적 통합을 이루게 만든다. 유럽의 통합이 대표적이다.

원심력과 구심력의 논리를 적용하여 20세기는 원심력이 크게 작동한 시대이고, 21세기는 구심력이 크게 작동한 시대라고 구분하는 것은 곤란하다. 20세기의 원심적인 투쟁에서도 몇몇 특출난 지도자는 국제관계에서 구심력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싸우던 유럽을 통합시킨 장 모네와 같은 지도자가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원수가 된 미국과 중국이 만나게 만든 키신저 같은 지도자도 있었다. 이들은 20세기의 대표적 악당인 히틀러와 스탈린에 대비되는 인물들이다.

21세기도 원심력과 구심력이 작동한다. 통합의 시대를 종식하려고 유럽 연합 탈퇴를 이끈 영국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미국이 만든 질서에서 이탈하겠다던 트럼프 같은 지도자도 있다. 그러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탈냉전의 이단으로 몰아갈 것은 아니다. 큰 틀에서는 원심력을 강화하는 사건들인 것이다. 상처가 생기면 아물 듯 또 구심력을 수호하는 지도자들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를 더 깊게 팔 수도 있다.

21세기에도 적개심과 권력욕을 가진 인간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20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군사력은 여전히 중요한 권력 자원이고, 경제력과 연성 권력에 의해 대체되지 못할 것이다. 교육수준의 확대와 기술발전과 무기의 정교화가 21세기를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원심력과 구심력을 둘러싼 인간 세상의 투쟁은 21세기에도 지속할 것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