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41-함께 가야 빨리, 멀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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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41-함께 가야 빨리, 멀리 간다
  • 손호영
  • 승인 2023.10.2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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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서울회생법원에 근무하면서 회생, 파산 업무를 맡게 되면서, 함께 근무하는 판사님들과 스터디를 만들었습니다. 2년째에는 최신 판례, 법조문 읽기를 하다가, 3년째에는 <도산판례백선>이라는 교재를 잡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가며 발제를 하는 방식인데, 4명이니 한달에 한번쯤 준비를 하니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최근 <도산판례백선> 교재를 다 보아서 일단락을 했는데, 그 감상을 한마디로 하자면 “보람찼다.”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보람을 느꼈을까?”

스터디는 무척 실속 있었습니다. 과거의 사건을 반추해보고, 다툼의 대상이 된 쟁점을 살펴보며, 이미 고민된 지점을 확인한 뒤, 지금 우리가 하는 실무에도 대입시켜보고, 또 혹시 내가 놓치는 부분이 있는지 보완하는 과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보람찼다고 느끼는 것일까?”

하지만 왠지 이보다는 더 깊은, 어떤 본질적 감정이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스터디를 하고 나서의 감정은, 스터디를 시작할 때의 동기와 맞닿아 있지 않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돌아봤습니다. “나는 왜 스터디를 하고자 했지?”

스터디를 하고자 했던 마음은 무엇일지 생각해봤습니다. 어쩌면, “더 나아지고 싶다.”는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잠정적인 답을 내놓아봤습니다. 이런 마음을 우리는 ‘향상심(向上心)’이라고 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향상심을 스터디가 조금이나마 채워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향상심만으로는 조금 설명이 부족한 듯했습니다. 더 나아지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굳이 스터디가 아니어도 됩니다. 그렇다면 스터디가 아닌 것과 스터디의 차이는 무엇일까 돌아봅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스터디원이 있고 없고가 큰 차이네요. 아마 보람의 정체는 조금 과장하자면,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벽을, 동료와 함께 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료 판사님들과 하는 스터디는 ‘언제나’ 유익합니다. 법원의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인적 구성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가끔 망각하고 편하게 대하기는 하지만, 판사님들만한 사람들을 만나 서로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큰 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혼자였다면, <도산판례백선>을 다 읽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깊이 있고 다양한 측면에서 공부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하지만 스터디는 함께 하는 스터디원 덕분에 여러모로 더 통찰이 더해집니다.

예컨대, 스터디를 하던 중 서로 활발히 논의를 한 주제가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회생절차에 알지 못해 참여하지 못한 채권자의 회생채권이 실권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적이 있습니다(대법원 2012. 2. 13. 자 2011그256 결정). 하지만 이 판례는 미실권 회생채권을 어떻게 구제하는지에 대해서까지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구제방법이 채권확정소송인지, 이행소송인지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습니다.

최근 대법원 판례는 이행소송이라고 명시하기는 했지만, 채권확정소송을 취한 항소심의 판단을 수긍하기도 해서, 명확하지 않았는데, 저희는 이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논의했습니다. 그때 각각의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뭐가 있을지 브레인스토밍하면서, 추가적으로 더 살펴보고 공부했습니다.

저는 이때의 논의가 뜻깊었고, 저희의 논의를 더 정제한 뒤, 추가 연구를 진행하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논의는 어떠한지, 과거 실무의 사례는 어떠한지, 다른 연구자의 견해는 어떠한지 등을 덧붙이면 제법 의미 있는 연구가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회생절차 종결 후 미실권 회생채권의 구제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하나 작성해봤습니다. 스터디원이 없었다면 논문은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스터디원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대상판결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논의한 OOO 판사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사법시험을 공부하던 대학생 시절에는 스터디라는 것이 필요 없다 여겼는데, 사법연수원 이후부터는 스터디를 곧잘 해왔습니다. 더 나아지고 싶은데, 혼자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도산스터디에서도 이렇게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희 스터디는 <도산판례백선> 이후에는, 실무에서 쟁점이 된 사례를 공부할 예정입니다. 2023년부터 역순으로 살펴볼 예정인데, 이것도 무척 유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후에는? 미정인데, 그 이후를 생각하는 것이 벌써부터 즐겁네요.

언젠가 인터넷에서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어느 나라의 속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 말은 틀렸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혼자 가면 빨리도 못갑니다. 함께 가야 빨리 가고 멀리 갑니다. 수험을 하시든, 실무에 계시든, 혼자 모든 것을 하기보다는 서로 논의를 하면서 함께 가시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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