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헌법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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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헌법이 말하는 것
  • 최용성
  • 승인 2023.10.0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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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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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은 한반도에서 최초로 시작된 국가인 단군조선의 개국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하늘을 여는 날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군왕검이 천제(天帝)의 손자라는 신화에 딱 맞는 말이다. 물론 하늘의 자손인 왕이라거나 곰 토템사상과 연결된 단군신화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단군의 존재가 허구라고 볼 수는 없다. 단군왕검이 한반도 최초의 왕이라고 믿는 역사와 전통은—현재 남아있는 문헌으로는 일연의 <삼국유사> 이래—연면히 내려왔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도, 명칭은 달랐지만, 개천절을 국경일로 기념하였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는 여러 나라가 존재하였지만, 그 뿌리는 단군이 세운 고조선부터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이어진 모든 국가의 역사에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존재함을 선언한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전문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한반도에 존재하였던 모든 국가를 계승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 국가이지 갑자기 세워진 신생국가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돌연 생겨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럼 대한민국의 법통 즉 규범적 정당성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대한민국헌법은 이 점도 명확히 선언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하여 대한민국의 규범적 정통성, 규범적 출발점이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한반도 최초의 공화국인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있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규범적 정통성이 항일독립운동에 연원한다는 선언이다. 이처럼 헌법 전문의 내용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대한민국 건국절이 1948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현행 대한민국헌법은 물론이고 1948년 제헌헌법에도 맞지 않는다.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하여, 비록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의 출발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절로 보는 주장은 대한민국헌법에 정면으로 반한다. 이에 관한 헌법의 문구와 표현은 너무나 단호하고 간결하여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누구나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있지만, 국가 고위직에 오르려는 사람이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의 해로 확신한다면 헌법위반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심각한 임용 결격사유가 된다.

한편 대한민국헌법 전문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하여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 즉 불의한 정권에 대한 저항권을 발동하여 불의를 무너트린 민주화운동을 대한민국의 가치적 정통성으로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4·19 민주이념이 항거한 불의는 바로 이승만 정권이었다. 1960년 3월 15일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정권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하여 개표 조작을 하였다. 대학생들이 앞장서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며 시위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마산 시위에 참여한 중학생 김주열이 실종 27일째인 4월 11일 아침, 마산 합포만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올랐다. 부산일보의 허종 기자가 어렵게 촬영하여 보도함으로써—이승만 체제는 정치깡패의 백주 테러가 횡행하던 시대였지만 지금과는 달리 허종 기자처럼 진짜 기자정신을 가진 분들도 있었다—시위는 대규모로 확산하였다.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 후 귀교하다가 정권이 동원한 깡패들의 습격을 당했다. 4월 19일에는 경찰이 당시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서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들어섰다. 결국 이승만은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하고 망명길에 올랐고, 이인자로 무소불위의 악행을 일삼던 이기붕 일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것이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의 역사적 전개이다. 왜 헌법 전문에서 “불의”라고 규정하였는지 명백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불의”의 최종책임자인 이승만을 기념하는 사업에 국가보훈처가 나서서 지원한다고 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헌법의 문언에 정면으로 반하는 명백한 위헌이다. 개인이 이승만을 존경하는 문제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심각한 일이다.

대한민국헌법은 항일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이라는 양대 축을 계승함을 헌법 첫머리에서 아주 명쾌하고 간결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외면하고 서슴없이 헌법에 반하는 언동을 하면서 “헌법과 법”을 내세우는 기이한 인지부조화가 공적 영역에서 되풀이되는 이 시대는 불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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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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