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15)-서비스 제공자로서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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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15)-서비스 제공자로서의 변호사
  • 박준연
  • 승인 2023.10.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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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주니어 변호사 시절 선배들이 해준 이야기 중 지금도 곱씹어보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으면 클라이언트가 높은 비용을 부담하여 굳이 우리 같은 로펌에게 일을 맡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같은 선배가 그런 이야기도 했다. 변호사 중에 안 똑똑한 사람이 있겠니, 다들 어렸을 때부터 수재 소리 들으며 컸지, 그래서 더욱 일을 잘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거야. 늘 생각하지만 한 마디로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이 어떤 서비스가 좋은 클라이언트 서비스인가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내 경험을 반추해본다. 흔하지는 않지만, 클라이언트가 수임하는 로펌을 교체하거나, 교체하지는 않더라도 업무의 비중을 조정하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 일본의 공휴일이라 좀 떨어진 곳으로 운동하러 가 있는데 회사에서 지급한 휴대전화로 회사 시카고 오피스의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급한 일이 있으니 도와줄 수 있겠냐고 했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급하게 회사 중역을 만나 사실관계 조사를 해야 하는데, 이미 일을 맡긴 로펌 변호사가 벌써 미팅을 진행했지만, 클라이언트 측에서 그 미팅 보고서 내용에 대해 의문이 많아 미팅을 한 번 더 진행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당장 관련 자료를 받아서 읽어보니 법적으로도 다소 복잡한 분석을 해야 하는 동시에 임직원들의 컴플라이언스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는 사생활도 포함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미팅은 영어가 아닌 언어로 진행하고 보고서를 일단 그 언어로 작성한 후에 영어로 번역하여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했기 때문에 번역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도 영어로 읽으면 내용이 100%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카고 오피스의 동료들과 상의하여 면밀한 준비를 한 후 회의를 진행했다. 컴플라이언스상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사생활에 관한 질문도 있는 만큼 그 중역께는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회의를 마치자마자 뛰어서 회사로 돌아가 미국에서 기다리는 클라이언트에게 회의 내용을 요약해서 보고했다. 질문과 응답을 그대로 요약하는 대신 사실을 왜곡하지 않되 ‘이야기’가 있도록 내용을 정리했고, 법적 조언을 제공할 단계는 아니었으나 내 인상도 곁들였다. 클라이언트에게선 인제야 사실관계의 전말이 어느 정도 보인다는 답을 받았다.

그리고 안건이 진행되면서 회사 측과 그 중역분 사이의 논의가 교착상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던 차에 그 중역분께 이메일을 받았다. 요컨대 회사와의 논의를 나와 함께 진행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이번 일로 많은 내외부 변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편견과 예단 없이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설명과 함께. 그래서 클라이언트의 허락을 받아 원래 다른 로펌이 담당하던 후속 논의도 내가 마무리하게 되었다.

내가 이 일을 가끔 생각해 보는 것은 내가 잘났거나 대단해서 일이 나한테 몰렸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나는 내게 온 일의 자초지종만 알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그 내용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클라이언트 서비스는 단순히 올바른 법적 조언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 생성 AI가 미국 변호사 시험을 쉽게 합격했다는 뉴스를 봐도, 변호사의 핵심적인 업무의 범주는 시대에 따라, 클라이언트의 필요에 따라 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적확한 법적 조언은 당연하고 거기에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좋은 클라이언트 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 플러스알파는 어떻게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이 계속될 것 같다.

박준연 미국변호사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 ‘Latham & Watkins’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로펌인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 도쿄 오피스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hs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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