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미국 하원의장 해임의 정치학 : 권력분립, 소수의 지배, 정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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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미국 하원의장 해임의 정치학 : 권력분립, 소수의 지배, 정치 양극화
  • 신희섭
  • 승인 2023.10.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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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미국 하원이 자신의 수장을 해임했다. 이전에도 두 차례 해임건의를 한 적은 있었지만, 실제 하원의장을 자리에서 내려 앉힌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216대 210표. 전체 하원 의석수 435석에서 416명이 투표해 과반수를 넘겨버린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현재 미국 하원 구성은 공화당 221석과 민주당 212석이다. 과반수인 218석에서 6석이 모자란 민주당이 공화당 의원인 하원의장을 해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런데 공화당 강경파들이 반란표를 던진 것이다.

중도성향이 강한 매카시 의장은 공화당 강경파들의 위협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은 듯하다. 9월 30일 임시예산안을 처리해주면서 상대적으로 바이든 정부의 예산안을 지지했고, 민주당이 주장한 것 중에서 우크라이나 관련 예산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찬성을 했기 때문에 민주당이 자신의 편에 설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공화당의 자중지란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듯하다. 민주당 의원은 4명을 제외한 208명이 모두 당론에 따라 해임 찬성에 나선 것이다. 그래서 미국 의회정치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매카시 의장이 당내입지가 약한 것이나, 의회 내 의원들 사이에서도 리더십이 약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사태는 미국정치를 하나의 ‘교과서(textbook)’로 만든다. 교과서가 반드시 좋은 이야기만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말이다.

미국의 이번 사태는 분점 정부 시기 거대 야당이 자당의 하원의원을 해임했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권력분립의 사례다. 미국이 정부를 수립할 때 가장 큰 걱정은 예산과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강력한 의회의 권한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는 선출직 제왕을 만들어 의회를 견제하게 했다. 이것도 모자라 의회를 상하 양원으로 나누어 상원이 하원을 견제하게도 만들었다. 그런데 현대 미국 정치인들은 의회는 공화당이 행정부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지만, 같은 하원 내에서도 권력은 얼마든지 분립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권력은 집중되지 않을 때 자유를 확보할 수 있다.” 몽테스키외의 이 명제는 현시점에서 한편은 타당하지만 다른 한편은 타당하지 않다. 권력이 집중되지 못하게 만들어 전제적인 지배구조를 피하고, 미국이란 공화국이 공화국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권력의 분산은 정부의 교착과 마비를 가져오고, 이는 다른 측면의 자유를 제한한다. 즉 국가가 나서서 사회의 부조리를 교정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강조하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는 약해진 것이다.

교과서의 또 다른 정치적 측면이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다. 하지만 미국 하원의장 해임 사례는 공화당 내의 강경파들이 해임안을 내고, 이들이 해임을 찬성하면서 이루어졌다. 즉 20명 내외의 강경파들이 미국정치를 주도한 것이다. 나머지 200명이 넘는 온건파 공화당 의원과 이들을 선출한 미국 국민 다수의 의사는 소수 강경파가 주도한 정치에 의해 무시된 것이다. 일본 정치에서 ‘파벌’이나 독일 정치에서 ‘제3당’의 역할을 공화당 내 강경파들이 구현한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시민은 동일한 발언권을 가진다. 하지만 모두가 동일한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한다. 소수이면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의 영향력은 여러 가지 경로에 의해 커진다. 문제는 다수를 침묵시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정치를 더욱 양극화(polarization)로 내몬다. 정당과 정치인이 양극화하고 유권자가 양극화되는 악순환이 발생하면서, 기존 미국정치의 장점이 약화되고 있다. 정당 기율이 약한 온건 양당제에서 정치적 타협이 미국정치를 상징화했다면, 이제 그런 미국은 역사책 속에 있다.

미국정치의 양극화는 패권 국가 미국의 역할에 대한 논쟁에도 투영되고 있다.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어 미국의 역할,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지원에 대해 민주당과 공화당 그리고 공화당 강경파들의 주장은 각기 다르다. 이번 사태 역시 미국의 대내외적 지향점을 둘러싼 갈등에서 벌어진 것이다.

대통령제를 미국에서 수입해서 쓰고 있는 한국정치는 미국정치를 따라가는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 미국은 확실히 정치 교과서이다. 좋든 나쁘든 간에.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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