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9-대신 용서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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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9-대신 용서가 가능한가?
  • 손호영
  • 승인 2023.10.0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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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본인’의 의사는 본인이 표시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어떠한 사정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그 의사를 표시할 수도 있습니다. 대리, 후견 등 제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의식불명이 된 경우, 가해자를 용서(법적으로는 ‘합의’라고 하겠지요)하는 것도 피해자의 후견인이 해도 될까요? 머뭇거리게 됩니다. 피해자는 과연 가해자를 용서(합의)할 마음이 있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떨지 고민이 되는 지점입니다. 최근 대법원 판례는 이에 대한 답을 담고 있는데,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피고인이 자전거를 운행하던 중, 69세의 피해자를 들이받았습니다. 전방주시의무를 소홀히 한 탓입니다. 피해자는 뇌손상 등의 중상해를 입게 되었고 의식불명이 되었으며 결국 ‘식물인간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피고인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으로 기소되었습니다. 피해자에 대해서는 가정법원의 심판으로 배우자가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되었습니다. 가정법원은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 범위에 ‘소송행위’를 포함시켰고, 대리권 행사에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배우자는 피고인 측으로부터 합의금 4,000만 원을 받았고, 1심 판결 선고 전 1심 법원에 “피고인의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서면을 제출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는 무척 중요합니다. 주지하시다시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제3조 제1항에서 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인하여 형법 제268조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면서, 같은 조 제2항에서 “차의 교통으로 제1항의 죄 중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를 범한 운전자에 대하여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라고 정하여 차의 교통으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이른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연 성년후견인인 배우자가 한 서면의 제출, 즉 합의의 의사표시는 유효할까요? 원심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명문의 규정이 없으면 소송행위의 법정대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대법원도 같은 의견입니다 (대법원 2023. 7. 17. 선고 2021도11126 전원합의체 판결).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하여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이는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 범위에 통상적인 소송행위가 포함되어 있거나 성년후견개시심판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성년후견인이 소송행위를 할 때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첫째, 문언 때문입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에 따르면, 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인하여 범한 형법 제268조의 업무상과실치상죄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므로, 문언상 그 처벌 여부가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달려 있음이 명백하다. 따라서 제3자가 피해자를 대신하여 처벌불원의사를 형성하거나 결정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의 문언에 반한다.”

둘째, 피해자의 의사가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형사사법의 목적과 보호적 기능, 국가소추주의 내지 국가형벌독점주의에 대한 예외로서 반의사불벌죄의 지위 등을 감안하면, 반의사불벌죄에서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하여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처벌희망의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의사결정 그 자체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피해자 본인이 하여야 한다.”

셋째, 친고죄와의 구별 때문입니다.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에 대하여는 대리에 관한 근거규정을 두지 않았고, 대리에 의한 고소 및 고소취소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236조를 준용하는 근거규정도 두지 않았다.”

넷째, 성년후견의 한계 때문입니다. “민법상 성년후견인이 형사소송절차에서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대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피해자 본인을 위한 후견적 역할에 부합한다고 볼 수도 없다.”

다섯째, 양형인자로 고려하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양형기준을 포함한 현행 형사사법 체계 아래에서 성년후견인이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피고인 또는 피의자와 합의를 한 경우에는 이를 소극적인 소추조건이 아니라 양형인자로서 고려하면 충분하다.”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은 이 결론의 정당성을 합의만능주의에 대한 우려에서 찾기도 합니다. “우리 형사법이 국가형벌권의 행사에 관한 당사자처분권주의를 원칙적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칫 ‘범죄를 저질러도 합의만 하면 된다.’라는 합의만능주의 및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실질적 비범죄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의사불벌죄에서 본인의 의사를 대신 표현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담고 있는 주요한 판례여서 함께 들여다보았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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