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대북전단 살포 금지·처벌, 표현의 자유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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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대북전단 살포 금지·처벌, 표현의 자유 침해”
  • 이성진 기자
  • 승인 2023.10.04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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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 재판관 “과잉금지원칙 위배...위헌” 결정
김기영·문형배 재판관 “과잉·책임 위배 아냐”

[법률저널=이성진 기자] 접경지역에서의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는 ‘대북전단 금지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다.

입법목적은 정당하나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심판청구 2년 9개월 만에 나온 결정이다.

헌재는 지난달 26일 대북전단 금지법으로 불리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24조 1항 3호 등에 대해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남북관계발전법 24조 1항은 북한을 향해 특정한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어기면 최대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이중 헌재 심판대에 오른 것은 3호가 정한 ‘전단 등 살포’ 행위를 금지한 부분이다.

재판관 7명은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한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26일 오후 헌법소원 사건 선고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재판관석에 앉아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헌법소원 심판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 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26일 오후 헌법소원 사건 선고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재판관석에 앉아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헌법소원 심판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 연합뉴스

유남석·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책임주의원칙에는 위반하지 않지만 과잉금지원칙에는 위반한다고 봤다.

이들 재판관은 “북한의 특성상 북한을 자극해 도발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표현의 내용은 상당히 포괄적”이라며 “심판 대상 조항에 의해 제한되는 표현 내용이 광범위하고 그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심판 대상 조항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 보장은 중대한 공익에 해당하고 국가는 남북 간 평화통일을 지향할 책무가 있으나, 표현 행위자가 받게 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그 표현의 의미와 역할의 중요성에 비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신체의 안전 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은 전단 살포를 일률적으로 금지하지 않더라도 경찰관이 경우에 따라 경고·제지하거나 사전 신고 및 금지 통고 제도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대안 수단이 있는데도 표현의 자유를 일괄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취지다.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나아가 과잉금지 및 책임주의 원칙에 모두에 위반하는 것으로 봤다.

이들 재판관은 “심판 대상 조항은 북한의 도발로 인한 책임을 전단 등 살포 행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비난 가능성이 없는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는 것은 북한인데 위해 유발에 대한 책임을 전단 살포자에게 묻는 것은 ‘책임 없이는 형벌도 없다’는 헌법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해당 조항이 과잉금지, 책임주의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아 헙법 위배가 아니라는 반대 의견을 남겼다.

두 재판관은 “심판 대상 조항은 표현의 방법만을 제한하고 있다”며 “청구인들의 견해는 전단 살포 외의 다른 방법, 예컨대 기자회견이나 탈북자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충분히 표명될 수 있다”고 봤다.

또 “심판 대상 조항에 따른 처벌은 남북합의서의 유효한 존속을 전제로 한다”며 “북한이 남북합의서를 준수하면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은 물론 한반도 전체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 바 이러한 공익을 고려하면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된다”고 의견을 냈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라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은 이날 즉시 효력을 잃게 됐다.
 

[심판대상조항]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2020. 12. 29. 법률 제17763호로 개정된 것)

제24조(남북합의서 위반행위의 금지) ① 누구든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국민의 생명ㆍ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아니 된다.

3. 전단등 살포
 

제25조(벌칙) ① 제24조 제1항을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제23조 제2항 및 제3항에 따라 남북합의서(제24조 제1항 각 호의 금지행위가 규정된 것에 한정한다)의 효력이 정지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제1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한편, 남북 접경 지역에서 각종 선전물을 풍선에 달아 띄워 보내는 대북 전단은 남북 간 지속적인 갈등 요인이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4년 고위군사회담 합의서, 2018년 판문점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은 상호 비방과 전단 살포 중단을 여러 차례 약속해왔다.

문재인 정부와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남북 긴장 완화 분위기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기 위해 야권의 반대를 뚫고 2020년 12월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큰샘·물망초 등 북한인권단체 27곳과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 위헌이라며 개정안이 공포된 같은해 12월 29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번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표현의 내용을 제한하는 법률에 대해 위헌 여부를 심사할 때는 더 엄격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선례의 입장에 기초한 것으로서,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헌법적 가치라는 점과 그 보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판결”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다만,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 따라 접경지역에서 대북 전단 등을 살포하는 행위에 대한 일반적 제한은 철폐됐다”면서도 “위헌의견에서 제시된 대안처럼 전단 등 살포 현장에서는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접경지역 주민의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특히, 입법자는 향후 전단 등 살포가 이루어지는 양상을 고찰해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보장을 위한 경찰 등의 대응 조치가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단 등 살포 이전에 관계 기관에 대한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입법적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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