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 정도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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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 정도 완화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3.09.25 18: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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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 요하지 않아”
‘신체에 불법한 유형력·공포심 일으킬 정도의 해악 고지’ 변경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강제추행죄의 성립을 위해 요구되는 폭행·협박의 정도를 완화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피고인 A는 자신의 주거지 방안에서 4촌 친족관계에 있는 15세 피해자의 손을 자신의 성기 쪽으로 끌어당기고 이를 거부하고 집에 가려는 침대에 쓰러뜨려 위에 올라탄 후 피해자의 속옷을 걷어 올려 가슴을 만지거나 끌어안는 등으로 강제 추행했다.

1심은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인정되며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추행행위를 했다며 성폭력처벌법 위반,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의 유죄를 인정하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원심은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인정된다면서도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성폭력처벌법의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은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공소장 변경을 통해 추가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아동·청소년 위력 추행 등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는 다시 정의될 필요가 있다”며 종래 입장을 변경함과 동시에 원심을 파기 환송(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했다.

종래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기습추행형과 폭행·협박 선행형의 두 가지로 나눠 강제추행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했다. 기습추행형의 경우 폭행행위 자체가 곧바로 추행에 해당하는 경우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만 있었다면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하고 강제추행죄가 성립된다.

이와 달리 폭행 또는 협박이 추행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그 수단으로 행해진 폭행·협박 선행형의 경우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요구된다고 판시해왔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폭행·협박 선행형 강제추행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제한 해석한 종래의 판례를 유지할지 여부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 다수 의견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일 것이 요구되지 않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봤다.

그 이유로 항거 곤란을 요구하는 종래의 판례 법리는 폭행·협박의 정도를 명시적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은 형법 제298조 및 성폭력처벌법 제5조 제2항 등 강제추행죄에 관한 현행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아울러 항거 곤란을 요구하는 것은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인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도 부합하지 않으며,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는 형법상 폭행죄 또는 협박죄에서 정한 ‘폭행 또는 협박’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돼야 한다는 점도 이유로 제시됐다.

이에 반해 이동원 대법관은 “강제추행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에 관하여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요구된다고 판시한 종래의 판례 법리는 여전히 타당하므로 유지돼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결론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 행사가 있었다는 이유로 다수 의견과 같이 유죄로 판단했다.

이번 판결을 통해 40여 년간 유지돼 온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한 판단 기준이 변경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보호법익, 근래 재판실무의 변화에 따라 해석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성 등에 비추어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 것”이라고 의의를 전했다.

다만 “이번 판결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을 법문언 그대로 해석하자는 취지이지, 법해석만으로 ‘비동의 추행죄’를 인정하자는 취지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의 쟁점은 폭행·협박 선행형의 강제추행죄에 관한 것으로 기습추행형 강제추행죄에 대해서는 다수법정의견에서 쟁점으로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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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2023-10-06 10:40:05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오랜 고민 끝에 강제추행죄의 판례법리를 변경했군요. 이를 통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더욱 잘 보호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기념비적인 판례 변경을 이끌어낸 전원합의체 구성원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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